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킴 May 09. 2021

추억 일기 : 중학생 이야기 27

놀라운 기적을 바라면서


중학교 시절 남성다운 솔직한 성격으로 공부도 쌈치기도 잘하고 승부욕이 강한 친구가 있었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스포츠형 머리’ 스타일을 선호하는 세련미가 있었고 축구와 주산에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인이 된 후 안부 전화라도 하면 ‘프렌드’라는 별칭으로 친근감을 표현하던 녀석이 최근 갑작스럽게 병상에 누워 있다.

부디 기적처럼 병상을 딛고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녀석과 즐거운 중학생 추억을 들춰보고자 한다.

혹시라도 나의 추억 이야기가 그 녀석에게 전달된다면 기적의 작은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중학생 시절 우리네 엄마들의 특선 반찬들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를 펼쳐야 그 후 이야기가 부드럽게 진행된다.

다른 집 아이들과 조금은 차별화된 맛의 기억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계란 후라이

여유가 있었던 집 아이들은 도시락에 계란 후라이가 올려져 있었다.

용기가 있는 놈들은 후라이 주인에게 반띵을 제안하지만 순한 놈들은 눈으로만 지켜보며 친구 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젓가락 사이에 집혀 들어간 야들야들하고 유달리 샛노란 색의 노른자가 단번에 시야에서 사라지면 친구의 맛있는 입놀림을 따라서 같이 계란의 풍미를 상상으로 만끽하곤 했었다.

후라이는 이내 잘게 씹어져서 흰쌀밥과 잘 져미어지는 맛의 세계는 현실적인 미각보다 풍부한 상상력을 작동시킨다. 지금이야 계란 후라이가 흔해서 먹다가 남기는 아이들이나 잘 안 먹는 아이들이 있어도 탓하지 않는 어른들이 많지만 당시로서는 있을 수 없는 사치였다.

‘감히 계란 후라이를 남긴다고’


현재의 닭 양식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공장형 계란들은 우리들의 식단을 결정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었다.

어느 선배는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라나 매일 아침 계란 후라이를 1개만 준비해서 큰 형에게만 주던 어머니가 무척이나 야속했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지금의 후라이와 비교될 수 없는 분명한 정서적인 상징성이 있었다.

지금 먹어보면 당시와 같은 계란이지만 내가 먹고 싶었던 시절의 감성과 지금의 정서와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급기야 점심시간에 혹시 다른 친구들에게 강탈당할 수도 있는 후라이를 도시락 밑에 깔아서 자식의 온전한 취식을 돕던 엄마들의 노력들을 누가 탓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렇지만 엄마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젓가락질로 친구들의 도시락 밑판을 헤집던 신공들이 있었다. 정말로 날랜 솜씨들이 있었다.


하루는 추운 겨울에 계란이 얼어 난로에 불을 지펴서 계란을 녹이며 후라이를 한참 동안 만들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옆에 놓인 덜 녹은 계란을 만져 보았는데 제대로 얼면 돌처럼 단단하게 변한다.


한 번은 나무 사이에 낳아 놓은 계란이 채 식기도 전에 위아래로 구멍을 뚫어 즉석해서 먹기도 했다. 엄마 닭이 알면 뜨거운 눈치를 받았을 텐데 별다른 사건 없이 지나간 것을 보면 다행스럽게 발각이 되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엄마 닭의 성난 추격은 없었다.

그대는 날계란의 비릿한 고소함을 느껴 보았는가?


콩밥

제재소였던 외가에 가면 일하시던 아저씨들과 외가 식구들의 식사를 해결하던 식당 방이 있었다.

식수인원은 평소 약 10명 내외로 늘 충분한 밥과 반찬이 있었기에 외가 방문은 내게도 다양한 맛의 기억을 선물해 주었다.

검은 콩밥이 유난히 기억이 나는데 검은콩에서 나온 검은 물들이 주변 쌀밥에 드리워져 수채화 같은 느낌의 밥 한 공기는 내게도 건강한 추억을 남겼다. 씹다가 보면 콩의 고소함이 쌀의 달콤함과 잘 어울렸다.

검은 콩밥은 나에게 외할머니가 계셨던 외가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외할머니의 영향인지 엄마도 가끔은 쌀밥 대신 다양한 식감을 주는 잡곡을 섞어서 주셨는데 예를 들자면 땅콩, 수수, 옥수수가 기억이 나고 한 번은 수수밥의 독특한 향과 찰진 느낌이 좋아서 엄마한테 수수로만 도시락을 싸 달라고 했더니 정말 그날 점심 도시락은 쌀은 한 톨도 없이 수수밥만 담아 주셨다. 내가 봐도 핑크빛이 찬란한 수수밥은 한 알씩 보석들로 보였고 노란색 양은 도시락을 배경으로 대비되는 절묘한 색감이 있었다.

수수밥 한 젓가락을 입안에 넣으면 눈과 코와 입이 즐거웠다.

이 친구도 함께 그 수수밥을 맛있게 같이 먹었다.

참으로 호사스러운 기억이다.


외할머니의 검은 콩밥과 엄마의 핑크 빛깔 수수밥은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내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친구야! 조만간 같이 계란 후라이에 수수밥을 먹자구나.

작가의 이전글 추억 일기 : 중학생 이야기 2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