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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조 Mar 05. 2016

위로 #1

세상에 누가 이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2013년 겨울이었다. 친애하는 박창순 배우님께서 연극에 출연한다고 하길래 기대(걱정)를 안고 연극을 보러 갔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해피투게더라는 연극이었다. 

혹시 모르는 분들은 형제복지원을 검색해보기 바란다. 27년간 수많은 사람이 끌려가고 500명이 넘게 희생된 범죄다.


연극을 보며 사람이 어쩌면 사람에게 이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며 여전히 세상엔 이런 사람이 많겠지 하고 씁쓸해했다. 다 보고 나서도 사건에 대한 안타까움 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화와 슬픔 같은 것들이 엉켜 마음이 복잡했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기억하게 된 건 나중에 카스테라(친구)와 술을 마시면서다. 연극은 아무런 희망도 기대할 수 없는 그곳에 눈이 내리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만이 가득한 사람들 위로 눈이 내릴 때, 눈은 잠시나마 그들의 현실을 덮어준다. 아주 잠시.  




시간이 흘러 2014년 가을, 유자 사무실에서 기타를 잡고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유자사운드 두 번째 앨범을 목표로 곡을 만들던 때였다. 이런저런 코드들을 연결하다 무심코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졌을 때, 이 노래는 슬픈 노래가 될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코드를 대강 정리하고는 어떤 슬픔을 이야기해야 할까 고민했다. 불행히도 슬픔을 떠올리는 데는 아주 잠깐 밖에 걸리지 않았다.


2011년 여름 '제주 피스보트'에 참여했었다. 큰 여객선을 타고 인천에서 제주를 오가며 평화와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였다. 나와 동료들은 음악 공연을 맡아서 같이 배를 타게 됐고, 인천항에서 저녁에 ‘오하마나'란 이름의 큰 배를 타고 출발했다. 


이런저런 일정을 소화하고 밤이 깊었을 무렵, 잠을 자기 전에 잠시 바다를 보러 나갔다. 사방은 껌껌한 가운데 안개가 가득해 배의 앞부분 조차 보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보이는 것은 저 아래 바다였다. 난간에 기대어 잠시 아래를 보니 시커먼 물결이 밀려와 배를 때리고 있었다. 너무나 깊고 검은 바다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무서웠다. 누군가 그 아래 있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해서도 안 되는 그런 거였다. 


2014년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건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 아래 있었고 바깥의 가족들도 있을 수 없는 슬픔 아래에 있었다.




과연 세상에 누가 이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해피투게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눈이라도 내려 잠시 그분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나는 대로 가사를 써보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 공연에서 유자사운드로 이 노래를 같이 연주했었다. 아쉽게도 음원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다음 해 2015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다.


원래 이번 겨울에 - 좀 전에 막 지나가버린 추웠던 겨울에 - 음원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또 놓쳐버리고 말았다. 얼마 전 2월 마지막에 내린 눈을 끝으로 당분간 눈이 오지는 않을 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방에서 연습을 하다가 그냥 아이폰으로 녹음한 거라도 일단 공개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오늘은 눈 대신 3월의 봄비가 내리고 있지만. 


그대가 두고 간 날이 너무 길어

아무도 채울 수 없네

그대가 두고 간 밤이 너무 길어

새벽은 오지를 않네

낡은 빛이 드는 작은 창에 기대어

사진 속에 담긴 노래들을 부를 때

하얀 눈이 내려 우우우

하얀 눈이 내리네 우우우

하얀 눈이 내리네 우우우

우..




시간은 사납게 지나갔지만 세상은 그대로다. 슬픔도 바닷속에 사람도 그대로다. 누군가의 아픔을 가지고 창작의 재료로 이용해 먹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스스로 해본다. 사실 나는 그들을 위해 제대로 된 목소리도 행동도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소심한 청년이고 내가 아끼는 노래일 뿐인 게 맞다. 그래서 나에게 뭐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이 노래를 부르면서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말 밖엔.  


덧. 2018년 버전으로 편곡한 버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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