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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조 Mar 11. 2016

헬조선 청년이 덴마크를 만났을 때 #8

차이는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걸까

덴마크 탐방 두 번째 날, 전날 방에서 보물 찾기를 한 덕에 기대감이 더 오른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날은 아침 식사로 삶은 계란을 주로 먹었는데, 덴마크 계란이 더 맛있는 건지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반숙으로 나온 삶은 계란이 너무 맛있었다. 전용 계란 컵에 담아 놓고 껍질을 깨서 파먹는다는데 나는 한국식으로 그냥 들고 먹었다.


맛있는 계란!

오늘도 버스를 타고 가면서 가이드 욱님의 설명이 시작됐다. 오늘의 일정은 덴마크의 초중고 공교육 과정을 살펴보러 가는 거였다. (어제 본 에프터스콜레는 선택적 대안/보조 교육이다.) 욱님은 덴마크 교육의 특징으로 PBL (Project based Learning)을 이야기해줬다. PBL은 교과서에 있는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제 혹은 문제를 중심으로 스스로 탐구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배우는 방식이다. 아마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미 들어보거나 경험해봤을 수도 있다. 


마침 우리가 방문하기 얼마 전 EBS에서 덴마크의 교육방식에 대한 취재를 나왔었다고 했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방송을 했었는데 유튜브에도 올라와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보시길 바란다. 여러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PBL의 모습과 그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덴마크는 4, 5, 6 학년 아이들이 함께 모여 난민이라는 어른에게도 쉽지 않아 보이는 주제를 가지고 같이 고민하며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는 과정이 나온다.  


제일 앞에 10분만이라도 보시라! 덴마크는 2부 뒷쪽에 나온다.


우리가 간 곳은 코펜하겐에서 서쪽에 있는 로스킬데(Rosekilde)라는 도시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수원과 비슷한 거리이다. 로스킬데에서 처음 방문한 곳은 이 지역의 사립 초중학교였다. 길가에 버스를 세우고 내리니 3층의 긴 건물이 보였다. 오른쪽에 작은 입구가 있는 이쁜 건물이었는데, 건물을 지나 안쪽 마당으로 들어가니 작은 운동장과 놀이터가 나타났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덴마크는 이렇게 건물이 바깥을 두르고 안쪽에 공간이 있는 게 일반적이었다. 


놀이터는 크지 않았지만 나무들과 어울려 자연 친화적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아이들은 눈밭 위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오늘도 강당에 모여 공식적인 소개를 들으면서 일정이 시작됐다.



교장샘과 부교장샘이 나와서 설명을 해주셨는데, 주된 내용은 덴마크의 사립학교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었다. 덴마크의 사립은 우리의 일반적인 사립학교와는 다르다. 교육과정에 대한 자율성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의 '자율형 사립학교’와 같은 존재였다. 이런 사립학교가 전체 학교의 40% 정도 되는데 정부가 수업비의 70%를 지원하고 개인들이 나머지 30%를 내고 다닌다고 했다. (월 200달러 수준으로 덴마크에선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 덴마크는 임금이 우리의 3배다.) 정부지원이 없는 미국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우리나라의 자사고와 비교해도 싼, 지원 비율로만 보면 사실상 준공립에 가까운 구조였다. 공립에 비해 사립학교는 규모가 작고 그만큼 더 긴밀한 커뮤니티 속에서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립학교를 선호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했다. 


정부가 이렇게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인정하고 적극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이 사회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큰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밑바탕이 되는 교육철학이 확실하기 때문에 서로 입장이 조금 달라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사회의 기본이 되는 교육 철학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가 내세우는 교육은 먹고사는 기능만 강조할 뿐 삶의 가치에 대한 철학이 없다. 많은 대안 교육들이 영혼이 없는 공교육에 자신들만의 철학을 넣는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단순히 철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철학 이전에 우리나라는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취업과 생계유지가 어려운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자사고가 한계를 가지는 것도 대학입시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대학 진학률은 40% 수준으로 우리의 70%보다 훨씬 낮다. 이것도 진학에 성공한 사람의 비율일 뿐 교육안에서 대학이 차지하고 있는 의미적 비중을 비교한다면 아마 훨씬 더 차이가 클 것이다. 덴마크가 우리처럼 수능이라는 하나의 출구만 가지고 있었다면 자율적인 교육이 가능했을까? 대학 진학이라는 큰 목표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가치들을 누르고 있는 이상 아무리 좋은 의도와 가능성을 가진 교육이라도 쉽게 시도해 볼 수가 없다. 교육철학이란 사람의 내면에서 출발하지만 먹고사는 현실로 완성이 되는 것이 아닐는지. 


학교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마저 듣고는 이곳의 학생들과 같이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생각해도 이 시간은 너무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영어실력이 부족한 탓에 정말 하고 싶은 말에 2%만 표현했던 것 같다. 


이곳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테이블에 나눠앉아 우리와 이야기를 나눴다. (©오마이뉴스 정민규)


그래도 우리 테이블에 앉았던 남학생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우수한 남학생이라고 칭찬받는 이 친구는 자신이 최근에 했던 프로젝트 베이스드 러닝(PBL)이 해킹에 관한 것이었고 어떤 것들을 찾아보고 알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해줬다. 주제는 해킹이지만 단순 컴퓨터 지식이 아니라 해킹이 일어나는 배경 등 세상을 더 공부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듣는 나도 재미있어 보였는데 본인은 오죽했을까. 이 친구는 에프터스콜레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고등과정으로 갈 거라고 했는데,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어 보이는 친구여서 이런 아이들이 바로 진학을 하는구나 싶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못해본 게 아쉬웠다.


이야기를 마치고는 학교 공간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교실 외에도 교장선생님의 방, 선생님들의 휴게실 등 다양한 일상 공간들을 볼 수 있었다. 덴마크의 실내 환경은 역시나 실용적이면서도 세련된 설계와 인테리어들을 볼 수 있었다. 역시나일거라 예상했지만 정말 역시나였다.


교장선생님의 방. 소박하고 실용적이지만 세련된 북유럽 스타일의 전형이다.
일반 선생님의 책상. 역시 깔끔.(©오마이뉴스 정민규)
교사 휴게실. 전등이 예사롭지 않다.


외부 문 앞이나 계단들은 눈이 자주 오는 덴마크의 날씨에 맞게 격자구조의 철판으로 되어있었다. 어린이들이 있는 곳이라 이런 안전 부분에 더 신경을 쓴 듯했다.


어제 보다 좀 더 유심히 공간을 살펴봤는데, 여러 가지가 눈에 띄었지만 특히 교실에 있는 프로젝터, 칠판 같은 교육 장비들이 인상적이었다. 장비에 대해 좀 아는 편이라 장비를 보면 얼마나 신형인지 알 수 있는데, 하나같이 모두 최신형의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컴퓨터도 모두 최신형 랩탑에 윈도우 10이 깔린 모델이었다. 


초등과정 수업중에 우리 일행이 지나가게 됐다. (©여신주현)
아이들은 밝은 얼굴로 웃어줬다. (©오마이뉴스 정민규)
고학년 아이들의 수업 모습 (©오마이뉴스 정민규)


사실 성능으로만 보자면 학교 수업을 하는 데 있어서 이렇게 까지 최신형의 장비를 갖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단순히 돈의 여유가 있어서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환경을 최신으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봐야 했다. 전날 에프터스콜레에서 아이패드 사용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었다. 교육에 최신 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항상 시대의 변화에 깨어있으라는 그룬트비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물론 이곳은 사립학교들 중에서도 매우 우수한 곳이긴 했다. (흘려들은 이야기로는 입학하려면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에겐 그저 예산의 차이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 예산이 충분하다고 해서 우리도 이런 모습이었을지는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는 IT강국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교육이 시대에 뒤쳐지는 순간 사회가 시대에 뒤쳐진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는 교육관계자들과 선생님들이 얼마나 될까. 


뭐 역사 교육도 왜곡하는 정권들 아래서는 다 무의미한 소리긴 하지만. (생각해보니 제가 잘 못 얘기했네요.)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실제 수업에 같이 참여해 수업을 들어볼 수 있도록 시간을 내줬다. 우리는 몇 조로 나뉘어서 각각 다른 수업에 들어갔는데 나는 저학년 아이들의 영어수업 시간에 들어갔다. 덴마크 꼬마 아이들과 같이 책상에 앉아서 영어 글 읽기 수업을 들었는데 내 수준에 잘 맞아서 참 좋았다. (이날 통틀어 가장 잘 들리는 시간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짧아서 많이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은 외국인들과 섞여 앉게 됐는데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수업에 집중했다. 선생님 역시 우리를 신경 안 쓰고 - 더 친절하게 말한다던가 하는 거 없이. 선생님은 정말 일하는 표정이었다 - 하던 대로 수업을 했다. 수업 자체는 평범했다.  


수업이 마무리되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이번 점심은 근처의 식당에서 먹기로 해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학교를 나섰다.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는데 내 얼굴은 못생기게 나왔으므로 반쪽만 싣기로 한다. (뉴욕 맨해튼 친구는 이때 처음 본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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