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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조 Mar 23. 2016

헬조선 청년이 덴마크를 만났을 때 #11

말도 안 되는 수학 수업에 대하여

지금 생각해보면 난 운이 참 좋았던 것 같다.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릴 때부터 수학에 흥미가 있었고 덕분에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도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이들의 앞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 중에 하나가 수학이라는 사실은 참 답답했다. 공교육 학교는 그만뒀지만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는 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아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다시 수학 공부를 해서 수능을 봐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여전히 내 마음속 작은 목표 중 하나는 수학과 논리를 배우는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덴마크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이곳 학생들과 같이 수학 수업을 듣는 다고 했을 때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호기심도 생겼다. 교실을 둘러보며 보았던 풍경 - 함께 이야기하며 문제를 푸는 모습 - 도 있었기에 덴마크의 수학 수업은 어떨지 궁금했다. 


15년만에 수학수업 ©오마이뉴스 정민규


우리가 앉아있던 테이블에 덴마크 학생들이 두세 명씩 들어와 같이 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 친구들과 열심히 의견을 나누고 싶었지만 웃음만 지을 수밖에. 나눠주는 종이를 보니 함수와 그래프였는데 얼마만에 보는 함수 그래프인지. 선생님은 영어로 수업을 했는데 워낙 쉽게 쉽게 설명해서 알아듣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공개 수업이라 좀 쉬운걸 선택한 듯 1차 방정식 그래프에 대한 내용이었다. 좀 들으니 어릴 적에 배웠던 것들이 기억이 났다. (y = ax + b에서 상수 b에 따라 y 축과 그래프.. 죄송) 선생님은 처음부터 그래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예를 들어가며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함수와 그래프의 원리를 설명한 다음에는 거꾸로 이런 형태로 나타나는 실생활의 예를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한국 사람도 손들고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수업이었다.


이곳 친구들은 손을 드는게 아니라 손가락을 든다. ©오마이뉴스 정민규


내가 느낀 이 수업의 핵심은 선생님이 수학적 사고와 실생활을 연결시키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왜 중요한지 이해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지식을 이해했다는 것은 머리 속에 그 내용을 저장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삶에서 겪는 일들과 지식을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수학(산수 말고 수학)이야말로 일상생활에서 거의 쓸모없는 과목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우리가 쓸모없는 식으로 잘못 배웠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잠시 수학 이야길 해보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의 이야기를 담은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라는 책에 보면 파인만이 미국의 수학(산수) 교과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교과서는 수학 수업이 현실의 과학적 사고에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들여 새롭게 제작된 상태였다. 수학을 실생활에 접목한 문제를 내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파인만이 본 책에는 별의 온도를 더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빨간 별은 몇 도고 파란 별은 몇 도인데 빨간 별 두 개와 파란 별 세 개를 더하면 총 온도는 몇 도인가를 묻는 식이었다.


여기에 대해 파인만은 엄청 화를 냈는데 나는 처음에 왜 화를 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동쪽 꽃밭과 서쪽 꽃밭의 꽃잎을 더하거나 닭과 돼지의 다리 개수를 더하는 문제를 열심히 풀었었다. 별의 온도를 더하는 게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파인만은 이렇게 꾸짖는다. 별의 온도를 왜 더하고 있냐고. 저건 아무 의미가 없는 짓이라고. 생각해보니 그랬다. 누가 하늘의 별을 보며 온도를 더하고 있을까. 온도의 합 같은 건 아무 데도 쓸 데가 없지 않은가. 꽃과 동물이 아이들에게 친근해 보일지 모르지만 누가 꽃밭에 있는 꽃잎의 개수를 더하고 돼지와 닭을 섞어놓고 다리 수를 더하고 있단 말인가. 돼지의 평균 무게를 구하면 모를까. 


이런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몇 년 후에 특별한 수업 시간을 보게 되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일하던 대안학교에서 창의적 수학 수업을 마련한 적이 있었다. 그때 수업의 주제는 확률이었는데, 확률 계산은 수학을 좋아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도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부분이었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빨간 공, 흰 공 꺼내는 게 너무나 싫었었다. 


오래전 일이라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날 수업의 주제는 핸드폰(당시 폴더폰이 엄청 유행이었다.)을 싸게 사는 확률에 관한 거였다. 아마 대리점을 한 곳 들릴 때마다 더 싸게 파는 곳을 만나게 될 가능성과 그때마다 소요되는 비용을 계산해서 몇 군데의 대리점을 들리는 게 가장 효율적인가를 구하는 문제였던 것 같다. (정확하지 않다!) 정말 애들이 함께 모여서 그렇게 열심히 확률 문제를 푸는 모습은 그 전에도 후에도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때 뭐가 문제인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요새 가끔 인터넷에서 우리나라 수학 문제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 억지로 짜 맞춘 상황극이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써서 문제의 이해만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엄마가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줬는데 루트와 함수를 다 풀어야 한다던가 철수는 생활에서 구하기도 힘든 쇠공이나 레이저를 가지고 이상한 동작을 한다던가. 누구는 문장 이해와 함께 하는 종합적 사고라고 우길 수도 있으나 웃기지 마라. 나도 이제 좀 살아보니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이런 거 사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된다. 




그래프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서는 간단한 시험을 봤다. 테이블마다 나눠준 종이에는 그동안 배웠던 서로 다른 종류의 그래프와 함수들이 있었는데 이것들의 짝을 맞추는 것이 시험이었다. 학생들은 서로 이야기를 해가며 정답을 찾아나갔다. 나도 함께 앉은 선생님과 서로 옛 기억을 더듬어가며 문제를 풀어봤다. (사인, 코사인처럼 모양이 기억나는 것들은 맞추겠는데 원리를 알아야 하는 것들은 역시나 어려웠다.) 중요한 건 이렇게 함께 문제를 푸는 게 스트레스도 덜 받고 재미있었다는 점이다.      


군더더기 없이 문제만 딱 있다. ©내사진
서로 이야기하며 지식을 완성해 간다. ©오마이뉴스 정민규
선생님은 돌아다니면서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설명해준다. ©오마이뉴스 정민규


문제를 다 푼 후에는 테이블마다 한 명씩 나와 칠판 앞에 모여서 다시 서로 이야기하며 칠판에 정답을 적어 내려갔다. 테이블끼리 서로 답이 다른 경우도 있었고 그럴 땐 같이 이야기하며 정답을 찾아갔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정답을 확인해주는 것으로 수학 수업은 끝이 났다. 시간이 금방 흘러간 수업이었다. 수학인데도.


칠판 앞에 나와 서로 답을 맞춰가는 아이들 ©오마이뉴스 정민규 


이 수업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는 나중에 현직(?) 고등학생인 민호에게 들을 수 있었다. 민호는 정말 억울하고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했다. 

와, 이건 진짜 말도 안 돼요. 어떻게 수학 시간에 애들 눈이 이렇게 초롱초롱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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