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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조 Apr 13. 2016

헬조선 청년이 덴마크를 만났을 때 #13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이번 편은 조금 묵직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덴마크의 교육 시스템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들 중 앞에서 못한 이야기들을 해보려 한다. 덴마크 교육에 대한 내 나름의 분석이랄까.


우선 질문을 하나 해보자. 덴마크의 교육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모습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사회를 모두 묶을 수 있는 이상적인 교육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난 잘 모르겠다. 덴마크의 교육 환경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고 나 역시 앞서 그런 부분들을 이야기했지만 그런 것들을 우리가 그대로 따라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덴마크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덴마크가 고민하는 대표적인 문제는 낮은 학구열이다. 정확한 통계를 듣지는 못했지만 한 선생님은 한국이나 일본에게 배워야 되는 게 아닐까 라는 딜레마가 느껴진다고 할 정도니 대충 고민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덴마크 정부도 학구열 문제에 대해 대책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어느 사회나 문제는 다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럼 우리는 덴마크 교육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일단 교육환경과 수업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 이상의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가 자주 하는 실수 중에 하나가 눈에 보이는 제도와 결과물만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니까. 교육이란 한 사회의 철학과 구조가 모두 결합된 영역이다. 그 두 가지를 모두 이해하지 않고는 교육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미 오연호 대표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좋은 분석을 해놓으셨지만 거기에 좀 더 이야기를 보태볼까 한다. 


교육환경과 수업방식만 놓고 보면 이미 우리나라에도 덴마크와 비슷한 교육을 하고 있는 곳들이 많다. 이번 탐방을 같이 했던 선생님들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대안학교뿐만 아니라 공교육에서도 혁신학교 같은 제도들을 통해 덴마크처럼 공동체 교육과 대학입시에서 벗어난 자발적 학습을 실현하고 있는 곳들이 많다고. 나도 생각이 다르지 않았는데, 에프터스콜레를 보면서 내가 있던 하자센터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연호 대표님은 한 발 더 나아가 덴마크교의 교주처럼(?) 이미 우리 안에 덴마크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우리 안의 덴마크. 나도 처음엔 우리 사회에 새로운 교육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으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교육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덴마크의 교육현장들을 좀 더 다녀보면서 나는 우리 안의 덴마크라는 표현을 쓰기에 조심스러워졌다. 대안학교, 혁신학교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커다란 차이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학교'라는 이름 아래에 수많은 교육방향이 존재한다. 수업의 진행 방식이 다를 수 있는 건 당연하지만 교육의 방향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다. 굳이 조합 활동을 하는 선생님들을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선생님들은 저마다 다른 태도로 학생들을 만난다. 한 학교 안에서도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가에 따라 매우 다른 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


대안학교로 가면 이 차이는 더 커진다. 내가 선생님 생활을 했던 하자센터의 경우 교과서도 없었고 시험도 없었으며 성적표 대신 긴 편지를 써서 보냈었다. 모두가 이렇게 공교육과 완전히 다른 교육을 하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목적은 공교육을 극복하는 것이다. 공교육의 방식을 부정하고 각자가 진짜 교육이라고 믿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두 시스템은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 사립학교, 공립학교를 차례로 보면서 놀랐던 것은 이들이 매우 자율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데도 서로 함께 교육을 만들어간다는 의식이 확실하다는 거였다. 그들은 교육의 큰 방향이 같았다. 출발점은 다르지만 큰 그림 안에서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다를 뿐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고 조직되어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것인지를 알기에 나는 덴마크와 우리의 차이를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 이미 훌륭한 학교들이 있는 건 맞지만 그것 만으로 희망적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이르다. 정말 중요한 건 그런 움직임들을 모아 하나의 철학을 만들고 조직화하는 것이다. 조직화되지 않은 힘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 각자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힘에 부쳐 하나 둘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덴마크는 교육 운동의 수준을 넘어 보편적인 교육 철학을 만들었고 변화에 성공했다. 우리는 여전히 변화의 가능성만 가지고 있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덴마크의 교육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사회의 바탕이 되는 교육의 큰 그림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과정을 밟아왔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좋지만 막연한 말로 의지와 희망을 계속 이야기한다고 공통의 교육철학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구체적인 중심을 만들고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아야 하며 실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우리 안의 덴마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조직화된 교육의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의 요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 실용, 사람. 내가 덴마크를 보며 알게 된 건 이 세 가지다. 


시간

한 사회의 기본이 되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긴 시간이 필요하다. 덴마크에서 평등이 일상의 원칙이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교육의 원칙이 일상의 원칙이 되고 그것이 다시 교육으로 이어지려면 세대를 넘어가는 경험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지름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사람들이 모여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조직화될 때 필요한 것 역시 긴 시간이다. 나는 그 많은 학교와 사람들이 함께 교육을 만들어 가는 구성원으로 자리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소통을 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덴마크 사회가 정말 대단한 건 구성원들이 긴 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하며 큰 방향을 같이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서두르지 않고 긴 시간 꾸준히 이야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용

조직화된 교육의 힘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중심이 되는 철학이 필요하다. 덴마크 사회를 보면 우리도 공동체와 평등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교육 철학을 만들어야 할 것 같지만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교육 철학이란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회의 구조가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면 교육도 다를 수밖에 없다. 교육은 사회 구조와 맞물려야 한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살면 잘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교육철학의 출발은 함께 사는 세상이지만 그 완성은 먹고사는 문제를 푸는 것,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현실의 논리를 이기지 못한다. (교육이 세속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덴마크와 미국을 보자. 그 사회의 기본 철학은 경제 성장기에 유리했던 태도이기도 하다. 덴마크에서 농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동체 시민교육이 시작된 것은 덴마크에 협동조합이 등장하던 때였다. 공동체 시민의식은 협동조합이라는 삶의 방식과 어우러져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고 더 잘 살 수 있게 만들었다. 미국은 어떠한가. 미국의 성장기는 적극적인 개척과 경쟁을 통해 성공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였기에 겸손이 아니라 스스로를 내세우는 것이 삶의 올바른 자세가 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권력자가 자원 분배를 통해 성장을 좌우했기에 똑똑하고 말 잘 듣는 사람이 성공했고 그것이 오늘의 교육과정에서 아이들을 길러내는 뿌리에 남아있지 않은가. 교육은 사회구조와 맞물려 갈 수밖에 없다. 


교육은 고상한 척하면 안 된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교육철학은 단순히 공동체와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양적인 성장이 끝나가는 시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찾아낸 새로운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사람

지난 역사들을 보면 이 모든 것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연결되어 긴 시간 이야기를 하고, 다시 그 생각들을 모아 하나의 철학으로 완성하는 것은 어떤 행정적인 과정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통해  일어나는 일이었다. '홍대 앞’이라는 공간이 있기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는 것처럼 한 사람이 중심이 되었을 때 그 시대의 사람들과 철학이 모일 수 있다. 덴마크에서는 그런 역할을 한 사람이 덴마크 중흥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룬트비’ 다. (모르는 분들은 검색을 해보자.) 물론 한 사람만의 힘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이 바뀌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역사다.  


그럼 우리에게 그럴만한 사람이 안 나타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어느 덴마크 사람은 덴마크가 그룬트비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아서 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로 시대의 철학을 책임질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운이 따라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사람은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고 사회가 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옆에서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안 나타나길 걱정하기보다는 알아보지 못하는 걸 걱정하자.




이 글을 쓰면서 쓴 것에 열 배는 썼다 지웠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글을 쓰면서 다시 깨닫게 된 건 교육을 새로 세운다는 것은 한 사회를 다시 세우는 일과 같다는 것이다. 나의 짧은 생각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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