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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조 Jan 16. 2018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 사람이 너무 많다고.

개척과 확장이 한계에 다다른 인구 과밀의 시대

늘 이런저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던 제가 특히 인구과밀 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게 된 건 작년 가을에 베를린에 잠시 다녀오면서 부터입니다.


베를린으로 이민을 간 지인이 있는 덕에 그분 댁에 머무르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민자로서 즉, 유럽사회의 이방인이자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서민의 시각으로 최근 유럽사회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회, 환경, 물가, 문화 그리고 젊음.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나아 보이는 베를린이지만 실제 거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빠르게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베를린은 요 몇 년간 국내외 이주와 난민으로 인구가 급격하게 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집값 상승과 난개발 등 부동산 문제가 점점 늘어나고, 노동의 가치는 점점 떨어져 근로 시간은 늘고, 최저임금을 못 받는 일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외부인에게 세우는 벽도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독일은 매우 튼튼한 사회시스템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변화의 충격을 잘 막아내고 있지만 인구증가에 따른 사회문제 증가라는 큰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건 확실해 보였습니다. 특히 제가 이런 변화를 더 민감하게 볼 수밖에 없었던 건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집값이 너무 올라 살 곳을 찾기 힘들고, 최저임금으로는 살기 힘들지만 그나마 그런 일자리도 별로 없는 사회. 바로 대한민국이니까요. 


우리가 헬조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모습이 베를린에도 똑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사회, 문화, 교육 수준이 낮아서 벌어진다고 믿었던 일이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인구 증가에 따라 빠르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저는 문제의 원인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과연 우리가 겪는 문제가 정책과 사회 시스템을 바꾸면 정말 해결될까?  


베를린에서 돌아온 후 자료를 찾아보면서 서양 대부분이 우리보다 인구밀도가 낮은 환경에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왔지만 인구증가와 도시 집중 앞에서 결국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유럽에서 일고 있는 우경화의 가장 큰 원인도 결국 인구 증가로 생존이 어려워지면서 타인에 대한 배척이 늘어났기 때문이고요.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그동안 제가 해왔던 사회적기업과 여러 사회변화 활동에 많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나은 사회, 문화, 노동 시스템을 가진 독일 사회도 늘어나는 인구 앞에서는 사회의 퇴행을 막지 못하는 현실에 무력감이 컸습니다. 진정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책과 이념을 떠나서 더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 질문을. 

사람이 너무 많은 거 아닐까?



사람이 늘면 각 개인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과 자원이 줄면서 당연히 갈등과 불편함이 생깁니다. 그동안 이 당연한 사실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건 양적이나 질적으로 개척과 확장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늘어도 그만큼 집을 더 짓고, 공장을 더 짓고, 자원을 더 채취하면 됐습니다. 진짜 문제는 개척과 확장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겠죠.


우리는 한계에 도달했을까요? 네, 도달했습니다. 저는 역설적이지만 ‘혁신’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게 확장이 가능하던 시대에는 혁신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혁신 수준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개척과 확장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우리는 일상에서 혁신을 요구하게 됐습니다.


인류는 그동안 개척과 확장의 삶을 살았습니다. 역사 내내 지속됐던 개척과 확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건 매우 큰 변화를 의미합니다. 사회변화를 일컫는 용어 중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성질로 변하는 시기를 특이점이라고 부릅니다. 개척과 확장이 한계에 다다른 인구 과밀의 시대, 저는 지금 우리가 인구와 관련해 이전과 완전히 다른 특이점을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구와 관련해 이전과 완전히 다른 특이점을 지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문제인 부동산과 노동 문제는 영토에 비해 사람이 너무 많다는 가장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나라의 인구밀도가 얼마나 높은지 현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구밀도는 홍콩, 싱가포르 같은 도시 국가를 제외하고 방글라데시, 대만에 이어 세계 3위 입니다.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무엇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 살게 됐기 때문입니다. 1960년에 우리나라의 인구는 약2,500만명 서울은 약 200만명이었습니다. 2018년 우리나라의 인구는 약5,000만에 서울수도권은 2,500만입니다. 단순하게 보면 60년 사이 늘어난 인구 2,500만명이 모두 수도권으로 몰린 셈입니다. 어떻게  땅값이 오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500만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큰건지 감이 안 온다면,  참고로 환경이 쾌적하기로 유명한 북유럽의 네 나라(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인구를 다 합쳐도 2,600만입니다. 우리는 네 나라의 인구가 모두 서울이라는 도시 주변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수도권은 OECD 국가 도시중 인구밀도 1위입니다. 


우리나라가 경제 수준이 높아졌어도 임금이 낮은 이유는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노동을 해야하는 인구가 넘치다보니 늘 경쟁이 치열하고 노동자의 가치는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산업이 활발했을 때는 높은 인구밀도가 도움이 되었지만 이제 중국, 인도, 동남아 처럼 더 임금이 싼 곳으로 공장이 옮겨가고 난 뒤에는 노동력이 남아도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부동산 가격은 높고 임금은 낮은 사회가 살기 힘든 건 너무 당연합니다. 살기가 힘드니 자연스럽게 출산율이 줄어들고 저출산은 다시 다른 사회문제로 연결됩니다.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은 주어진 환경에서 적절히 살 수 있는 인구수를 넘었기 때문입니다.



왜 아무도 수많은 사회 문제들이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생긴다는 당연한 사실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감히 천부인권을 가진 사람을 두고 '너무 많다'라고 규정하는 순간, 목숨의 가치를 재기 시작하고 서로를 파괴하는 명분을 만드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어떤 환경에서도 사람은 모든 걸 통제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거만함 때문일까요?




지금까지 모른척한 이유가 무엇이었든 이제는 인구과밀의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 많은 문제가 법과 문화, 교육 같은 시스템의 문제이기 전에 인구 과밀에서 비롯됨을 깨달아야 진정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원인을 모르고 마련한 대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습니다.   


더 나아가 저는 각각 개별적인 문제처럼 보이는 사회문제들이 실은 인구과밀에서 온다는 걸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왜 개척과 확장이 한계에 다다르고 인구밀도가 올라 갈수록 

정치는 타협의 여지가 적어지는지 

규제는 네거티브에서 포저티브로 변해가는지 

성실한 노동보다 전략적 투자가 유리해지는지 

미래를 긍정하며 뛰는 자세가 나머지를 피곤하게 하는지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고 있던 사회성을 잃게 되는지 

고민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폭력 없이, 지금껏 쌓아 올린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적당한 밀도의 사회로 돌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요.




무척 거칠고 과격한 의견입니다만 짧은 고민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특이점이라 부를 만큼 사람이 사는 원리의 큰 전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존의 원리는 강력합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이제 협력 대신 선택적 연결과 방어가 생존에 유리하다면 사람은 결국 더 유리한 생존 방식을 택합니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이런 모습을 확연히 느낍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환경에서 자라나는 세대의 의식 속에는 조금씩 변하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고민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한 이해입니다. 한때 젊은이들을 탓했던 노오력과 근성 이야기가 틀렸던 것처럼, 지금 사회문제도 환경이 어려워진 것이지 시스템이 전보다 더 망가지고 무능력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떤 정권과 정책이 나온다 해도 해결이 어렵고 우리 모두가 감내해야 할 상황입니다. 정권 탓이 아닌 걸 정권 탓으로 돌리며 오히려 멍청한 대안을 선택했을 때 정말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명박근혜야 말로 이런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체 원망할 곳을 잘못짚은 사람들이 시간을 되돌리려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죠. 미국과 유럽도 우리를 따르고 있고요.) 


지금 이 순간에 내리고 있는 결정 하나하나가 미래를 만듭니다. 큰 방향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들이 계속 쌓이면 그만큼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큰 방향에 대한 고민이 절실합니다.


아마 인구밀도 이야기가 생소하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사람의 이성을 무시하고 동물처럼 여긴다고 불쾌한 분도 있을 겁니다. 2018년 현재 지구 인구는 약 76억.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숫자가 아닙니다. 시급한 사회 문제들이 눈 앞에 있고, 지금 당장 인구를 고민한다고 해서 바로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진짜 사회적 해결을 고민한다면 이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덧1, 인피니티 워 같이 영화 시나리오에 자주 나오는 인구문제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아래 칼럼 추천입니다.


덧2, 과밀사회 문제에 대해 발표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날 했던 이야기와 발표자료로 만든 영상도 추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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