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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조 Jul 19. 2020

아이돌과 소셜벤처는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

서로를 살리는 선한 영향력에 대해


선한 영향력의 진화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는 일과 연예인의 영향력이 만나는 순간은 아름답다. 도움과 홍보가 필요했던 현장에 대중의 관심을 받는 사람이 나타나서 드라마틱하게 문제가 해결되었던 감동의 순간들을 우리는 여럿 기억하고 있다. 꼭 드라마틱하지 않더라도, 연예인들이 각종 기부와 봉사활동, 재능기부를 하는 일은 종종 있어왔고 언제부터인가(아마도 서태지의 팬들부터 본격적으로) 팬들이 모여 기부와 단체 행동을 통해 각종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요즘 우리는 이를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이제 선한 영향력은 문화다. 아이유, BTS, 임영웅까지 유명인 본인도 팬들도 나눔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선한 영향력을 떠올릴 때면 기부나 홍보를 떠올렸지만 앞으로의 모습은 점점 변할 예정이다. 각종 비영리단체들이 기부와 자원봉사를 모으던 것이 거의 전부였던 시대를 지나, 이제 세상에는 사회적가치가 담긴 서비스나 제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면서 세상을 바꿔가는 소셜벤처라는 조직까지 등장했다. 심각해지는 사회/환경문제를 위해 더 효율적이고 영향력이 큰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이미 디카프리오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벤처에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연예인과 선한 영향력의 관계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때가 왔다. 디카프리오 같은 사례는 아주 먼 이야기가 아닐까 싶지만, 어느새 한국은 BTS(방탄소년단)의 RM이 들렸던 미술관과 길거리에 전 세계 ARMY들이 찾아오는 나라가 됐다. BTS 같은 세계적 영향력이 아니더라도 SNS 연결로 그 어느 때 보다 한 사람(셀럽)의 영향력이 매우 커진 지금 사회에서, 그 선한 영향력을 예전처럼 개인의 관심과 선의에만 기대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이 CSR을 진행하듯 사업과 생태계 차원에서 다 함께 고민해야 한다. 


연예인의 선한 영향력을 시스템으로 만든다고 할 때, 특히 내가 주목하는 영역은 아이돌과 소셜벤처의 만남이다. 이 둘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벤처에게 아이돌과 그 팬덤이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수지가 마리몬드 폰케이스를 들고 공항에 나타난 이후로 마리몬드는 위안부 여성 지원사업을 훨씬 늘릴 수 있었다. (물론 그 뒤에 많은 사건이 벌어지며 아쉬움이 커졌다.) 홍보가 아니라 그저 관심과 사용만으로도 큰 효과를 낸다. 소셜벤처는 대중적이고 젊은 감각의 제품과 서비스를 가진 곳들이 많아서 특히 아이돌의 영향력과 잘 어울린다. 그런데 반대로 아이돌 입장에선 왜 소셜벤처와 만남이 필요할까?



아이돌 : 지속가능성이 필요한 청소년들


한국 사회는 그동안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수많은 불안과 갈등으로 채워진 아이돌 산업을 약육강식 시장원리에만 맡겨 왔었다. 그 결과 아이돌과 연결된 수많은 문제들이 계속 터져 나왔고, 최근에는 안타까운 죽음과 범죄까지와도 연결된 거대한 폭발(?)을 겪게 됐다.


아이돌이 겪는 문제가 특히 중요하고 가슴 아픈 이유는 그들이 모두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아이돌은 수많은 청소년들이 바라는 가장 유망한 진로임에도 지속가능성과는 거리가 멀다. 


피 말리는 경쟁을 통해 선발이 된다는 건 이제 전 국민이 다 알지만, 어릴 때부터 집을 나오다 시피 해서 훈련을 받느라 정서적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건 잘 모른다. 선발을 통과하면 다행이지만 안 되는 경우 일반적인 교육과 한 참 뒤떨어진 상황에서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 활동을 하면서는 끝없이 주변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계속 태워야 하고, 인기를 얻었다 해도 얼마나 갈지 알 수가 없고, 수명이 짧기에 빠른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불안하다. 어느 하나 지속가능성이 없다. 이것이 아이돌로서 10대부터 20대까지 겪는 삶이다. 


지속가능성의 부족은 개인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산업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연예기획사 입장에서도 연예인의 수명이 길어질수록 유리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들여서 사람을 키운 뒤 짧은 전성기에 수익을 내야 하는 현재 구조는 결국 매우 빡빡한 활동으로 이어진다. 청소년들은 아이돌 활동 이후 다른 영역으로 전환이 필요하지만 활동 시기에는 다른 경험을 쌓을 여유와 기회가 없다. 이것은 다시 활동기에 최대 수익을 추구하고 활동 생명이 짧아지는 이유가 된다. 계속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연기자나 예능인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지만 소수에 해당하고, 무엇보다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요즘은 다들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일상을 팔고 광고비를 벌고 있지만 이걸로만 버티기엔 인생은 길다. 


핑클의 이효리가 셀럽 이효리가 되기까지


아이돌이 소셜벤처 생태계와 연결되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물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사회와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면서 스스로의 지속가능성도 추구하는 새로운 방식은 분명 변화의 힌트가 될 수 있다. 어려운 이야기 같다면 이효리를 생각해보자. 


아이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이효리 같은 미래를 꿈꾸지 않았을까? 핑클의 이효리는 동물보호에 앞장서고 친환경을 실천하는 의식 있는 셀럽 이효리로 진화하여 계속 활동하고 있다. 자신의 인지도를 이용해 사람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고, 그런 모습은 다시 호감도를 높여 인기와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인기의 지속을 위해 동물과 환경에 관심을 가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동물과 환경 문제는 한 가지 예일뿐이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사회문제라는 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을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유명인으로서 사람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만큼 오래 역할을 이어나갈 수 있다.   


물론 이효리의 인기는 동물과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인기를 위해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는 고민하며 살아가는 자연스러움이 진짜 매력이다. 사람의 매력이라는 건 억지로 노력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아이돌들이 어릴 적부터 이런 사회적 주제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고 그런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면, 조금 더 지속 가능한 방식의 진로를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주제를 같이 고민하는 은우님이 그런 이야길 한 적이 있다. 엑소(EXO)가 팬들과 함께 그들의 초능력 컨셉을 가지고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앞장섰다면 어땠을까? (엑소는 멤버들이 물, 불, 바람, 공간이동 같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컨셉이다.) 시우민은 결빙(frost)이 능력인데 시우민의 팬들이 결빙의 컨셉을 살려서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캠페인으로 뭉쳤다면? 그거야 말로 같이 만들어낸 진짜 초능력이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엑소가 글로벌 팬 100만에 데뷔 8년을 넘긴 지금쯤 디카프리오와 비슷한 미래를 꿈꾸고 있지 않았을까?


연결을 위해 필요한 것


이 주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작년에 임팩트얼라이언스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다. 임팩트얼라이언스는 소셜벤처들이 주로 모여있는 협의체다. 현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100곳 정도의 조직들이 모여있다. 처음에는 회원사들이 잘 될 수 있는 방법으로 아이돌과 연결되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는데, 계속 이어지는 각종 사고, 특히 설리 같은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는 걸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돌들이 좀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쟁과 이익만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다른 목표를 고민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들의 진짜 가치를 찾을 수도 있다. (내가 청소년 교육분야에서 오래 일했던 터라 더 이런 의미를 중요시 하는 것 같다 .) 


사실 기획사 차원에서는 이미 기부와 봉사활동 형태로 여러 CSR 활동을 하고 있다. 이것도 충분히 의미있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봉사활동도 좋지만 인스타와 유튜브 시대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법은 달라질 필요가 있다. 이제는 그냥 착한 일이 아니라 정말 자기가 관심이 있는 분야에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작은 것일지라도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소비를 바꾸거나 직접 체험해보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일 때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사회문제를 비지니스로 풀어내기 위해 고민하는 소셜벤처는 이런 성장에 잘 어울리는 파트너이다. 각자 자리잡은 세상이 매우 다르지만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성장과 지속가능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이돌과 소셜벤처가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를 알아야 한다. 나도 이번에 아이돌 생태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아이돌 - 기획사 - 팬덤이 얽혀있는 구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걸 알게됐다. 선의로 시작한 일도 이미지 장사 한다고 오히려 욕을 먹기도 하는 어려운(?) 동네다. 반면 스타트업과 사회적가치가 합쳐진 소셜벤처의 영역도 외부인에게 낯설긴 마찬가지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이 두 영역이 서로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내고 공유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목표는 믿을만한 네트워크 연결자가 되는 일이다. 요즘같이 유명인의 영향력이 큰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예인에게 이익을 바라고 접근할지는 뻔하다. 특히 아이돌은 수많은 관심에 시달리며 상상하기 어려운 각종 사생팬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소셜임팩트 생태계에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자부하지만 서로가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문화도 언어도 다른 두 영역 가운데서 조심스럽게, 믿을 수 있는 네트워크 연결자가 있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임팩트얼라이언스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무척 설렐 것 같다.


사실 세상은 이미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사이드프로젝트로 사람들을 모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은 세미나 같은 걸 만들어볼까 생각중이다. 차근차근 고민의 기록을 쌓다보면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혹시 관심있는 분들, 제가 놓치고 있는 선한 영향력의 변화를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연락주세요! iljoo.jeon@impactalliance.net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건 한갓 꿈일 뿐이지만 모두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 된다." -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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