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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나나 Jul 17. 2021

뜻밖의 장관에서 행복 찾기

 보통 나는 금요일에 일을 쉬는데 금요일 오전 9시에 있는 정기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런데  회사에 9시까지 출근을 해 보니 아무도 없어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고 동료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어보니 오늘 미팅이 오후로 미뤄졌다고 한다. 15분 정도 기다리다가 정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길래 사장님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미팅 시간이 미뤄진 것을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답장이 왔고 나는 괜찮다는 답장을 보낸 후 뜻밖에 생긴 자유시간에 뭘 하면 좋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우선 늦잠을 잘 수도 있었던 금요일 아침, 9시까지 출근을 한 덕분에 하루를 일찍 시작하게 되었고 저녁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까지 무려 8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자유시간이 생겼다. 주 7일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낮시간에 자유시간을 가져본 적이 많지 않아, 귀중한 시간을 갖게 된 만큼 오늘은 특별히 나에게 보상을 해 주는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회사가 Henderson에 위치해 있어 서쪽 오클랜드 해변들과 비교적 가까웠기에, 나는 서쪽 해변 중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Bethells Beach라는 곳을 가기로 결정했다. 해변 바로 옆에는 Te Henga Walkway라는 트레킹 코스가 있었고 구글 맵을 검색 해 보니 편도 3시간에서 4시간이 걸리는 꽤 긴 코스였다. 오랜만에 트레킹을 할 생각에 들떠, 우선 점심 먹을 것과 물, 행동식을 구입하러 West City 쇼핑몰을 방문했다. 나의 주말 일터인 초밥가게가 위치해 있는 이 몰에 있는 맥도널드에 들려 점심을 사려고 했는데 이왕 온 김에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인사나 할 겸 맥도널드에 가기 전, 초밥가게로 먼저 향했다. 지난주, 생일 여행을 가느라고 한 주 빠진 탓에 2주 만에 보는 얼굴들은 나를 반가워해주었고 내가 예상치 못하게 혼자 트레킹을 가게 되었다고 말하자 조심해서 다녀오라며 아무리 안전한 뉴질랜드라도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금요일 주중 대 낮에 나와 함께 트레킹을 갈 친구는 없었기에, 무리하지 않고 최대한 조심해서 다녀오자는 생각으로 서둘러 발검음을 재촉했다.

 서쪽 바다를 향해 달리는 차 안, 매일 보는 비슷한 집과 건물 풍경들이지만 오늘따라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내가 한국이 아니라 뉴질랜드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거리 풍경들을 보면서 운전하고 있자니 괜히 설레고 마음이 들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핸더슨 웨스트 시티 몰에서 30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서쪽 해변, 사실 도심에서도 1시간 이내로 올 수 있는 이곳 주변에는 가장 유명한 피하 Piha 해변과 무리와이 해변이 있어 서핑족과 트레킹족,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자주 오는 곳이다.  서쪽 해변은 오클랜드 사는 사람들이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으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삶의 질을 한층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주차를 하고 보니 나 이외에도 어떤 아빠와 어린 아들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이렇게 누군가라도 함께 걷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발을 맞춰 같이 나란히 걷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간간히 인사를 나누며 걸었다. 40분가량 어렵지 않은 평탄한 산길을 걷다 보니 왼쪽 시야에 말도 안 되는 풍경이 펼쳐졌다. 뉴질랜드를 2년간 살면서 몇 번이고 보아 온 비슷한 풍경인데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경이로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어쩜 저렇게 예술 그림처럼 그려져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편도 3,4시간 거리였지만 저녁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일정을 절반으로 줄여 편도 1시간 40분 코스로 변경했다. 대략 왕복 3시간을 걸으면서 지루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트레킹이었다. 그냥 중간에 멍하니 앉아 저 멀리 트릭아트 그림처럼 펼쳐지는 풍경을 보면서 정말 세상에 천국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하는 싶었다.

 어떻게 하다가 나는 전 세계가 코로나로 고통받는 시대에 가장 안전한 나라에 와서,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 삼아 자유시간을 보내고 있고 더할 나위 없이 맑고 깨끗한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며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게다가 1년에 3 천명씩 그것도 30살 미만에만 지원해서 받을 수 있다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운이 좋게 파트너 워크 비자까지 받아서 더 오래 뉴질랜드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으니 나처럼 천운이 따르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기술이 없으면 워킹홀리데이로 와서 청소나 웨이터, 계산원, 마트 직원 정도를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정석인데 나는 또 억수로 운이 좋아 제약회사 일을 하게 됐다. 물론 중간중간 마음이 아픈 일들이 있어 운 적도 몇 번 있었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행복한 삶을 보내는 중이다.

 나는 연예인처럼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장도 아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롭게 내 삶을 살 수 있고, 더 이상 환자들의 건강을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물리치료사가 아니며 이미 언니들이 결혼을 하고 자식들까지 낳고 살고 있어 부모님께 손주를 안겨드려야 하는 부담을 갖고 있는 딸도 아니다. 내가 오로지 '나'일 수 있게 '나'로 살아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지금처럼 행복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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