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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나나 Jul 26. 2021

바쁘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사람.

주 7일 내내 일을 한다고 해도 하루 종일 한 시간도 못 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게 아니라서 그렇게 딱히 살인적인 일정은 아니다. 제약회사가 바빠지면 주 70시간 까지도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 회사 사정으로 봐서는 여유로운 평일 오전을 보낼 확률이 더 크다. 오늘도 제약회사에 나가지 않아 아침부터 오후 한식당 출근 전까지 딩가딩가 놀았다. 우선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잠을 잤다니 오전 10시 30분이 돼서야 일어났다. 눈만 뻐끔거리고 있을 리 만무한 나는 일어나자마자 유튜브를 보면서 영양가 없는 시간을 보냈다. 12시에는 집 주변 쇼핑몰에 가서 세럼을 사 왔고 집에 돌아와서는 이틀전 시켜 먹었던 도미노 하와이안 피자를 냉장고에서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다. 그런 후 침대에 다시 누워 오후 3시 30분 알람을 맞추고 낮잠을 잤다. 만약 오늘 쇼핑몰에 가지 않았더라면 하루 종일 누워서 핸드폰만 보면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일을 하러 갔을 것이다.

 사실 나는 돈을 버는 육체노동 일 이외에도 돈 안되지만 하고 싶고, 또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다. 우선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유튜브 영상 편집이다. 3주 전에 생일 여행으로 다녀왔던 Dargaville 로드트립 영상을 편집해야 하는데 여행 이후 노트북 조차 켜 본 적이 없다. 두 번 째는 제약회사에서 앞으로 숙련되어 일을 해야 하는 화학 관련 업무를 공부하고 숙지해야 하는데 논문 표지도 다 못 읽고 그대로 휴지통에 쳐 박아 놓은 수준이다. 세 번 째는 블로그에 포스팅을 올리려고 이것저것 사진들을 많이 찍어놨는데 블로그 로그인을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조차 기억이 안 난다. 네 번 째는 그나마 가장 진행이 원활한 것인데 바로 지금 쓰는 브런치다. 일전에 4일에 한 번씩 에피소드를 올리다가 그마저도 너무 벅차 주 1회로 바꾼 후부터는 그래도 나름 선방하고 있다. 다섯 번 째는 영어 공부를 독학으로 꾸준히 할 계획으로 영문법 책을 공부하는데 하루에 한 챕터 고작 2페이지 하는데 쉽지가 않다. 그래서 오늘은 죄책감에 3 챕터 무려 6페이지나 공부했다. 이렇게 사실 할 일이 많은데 시간만 나면 누워서 잠을 잔다. 잠을 자면 그나마 다행이지, 눈을 뜨고 영양가도 재미도 없는 그런 유튜브 영상만 쳐다보고 있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정신없이 바쁘고 쉬는 시간 없이  빠듯하게 일만 하면 오히려 시간을 쪼개어 어떻게 해서든지 틈 사이사이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데 (가령 운동이나 유튜브 영상 작업, 영어 공부 같은 것들), 그런데 시간이 많아서 전혀 바쁘지 않으면 오히려 내가 해야 할 일들틀 2순위로 밀어내고 그저 누워서 시간을 허비한다.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설계된 인간이기에 쉬는 시간 없이 바쁜 삶을 살아야만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한가할 때 해야 할 일들을 하면 급하지 않게 일들을 잘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절대 그렇게 놔두는 꼴을 못 본다.

 나 같은 사람은 의지가 박약이라 내가 해야 하거나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해내기 위해서는 반 강압적인 외부 요인이 필요하다. 잔소리하거나 길잡이가 되는 사람이 전혀 없기에 나는 나 스스로를 통해야 하는데 아무런 외부 자극 없이는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일상을 바쁘게 만들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끔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수밖에 없다. 몸이 편해지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인식하거나 가능한 가장 늦게, 맨 뒤로 할 일을 미뤄버리는 나쁜 습관이 나온다.


 사람들은 내게 부지런하다고 말하는데 사실상 나처럼 게으른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의지박약에 게으름이 더해져 최악이지만 외부 자극제만 있다면 나는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해진다. 만약 매일 지각하는 일터에서 이제부터 지각자는 5천 원씩 걷겠다는 규칙이 생기면 나는 절대 지각을 하지 않는다. 또, 일하는 곳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하다가 한 번만 더 실수하면 급여를 깎겠다고 사장이 내게 말한다면 나는 같은 실수를 다신 저지르지 않는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하다. 아니, 내가 간사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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