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암리차르 초보 여행자 2
대부분의 남성들은 두건을 쓰고 아이들도 예외 없이 모두 주황색 두건부터 각양각색의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한쪽 방향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시크교에 대해 아주 간단히 잠깐 알아보자면 국교라 불릴 만큼 다수의 인도인들이 믿고 있는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섞여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는데 이 종교가 시크교이다. 다섯 개의 k라고 하여 깍지 않은 머리와 수염, 나무 빗, 단검, 쇠 팔찌, 속바지를 말하는데 그래서 신자들이 대부분 머리를 기르고 터번으로 가리며 수염이 덥수룩하다. 전 총리도 시크교여서 사진을 보면 터번을 항상 쓰고 있다. 이 다섯 가지를 항상 휴대하고 다니며 물질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있다. 대부분 펀잡지방에 모여사는데 다들 근면 성실하고 착하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뜨문뜨문 허리에 특이한 칼을 찬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나는 다시 길을 돌아서 먼저 숙소를 찾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를 찾으러 골목을 휘젓고 있는데 많은 상점들이 눈에 띄였다. 관광지이자 성지 주변인 이곳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리고 당연히 상점가가 형성되는 건 당연한 이치이겠지만 신에 대한 헌물의 가치가 과연 비싸고 좋은 것에 달려 있는 것인가에 대해 물음표가 생겼다. 신에게 바치는 꽃이 화려하고 이뻐야 신은 기뻐하시는 것일까? 이 생각은 내가 믿는 종교에서도 이같은 의문점이 들었던 적이 있다. 고급 원단의 화려한 터번 가게부터 신에게 받치는 꽃을 파는 가게까지 과연 신은 그들의 물질성에 축복을 내리는 것인가?
상점가를 좀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서니 곳곳에 호텔이라고 적힌 작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까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것이 얼른 숙소를 잡고 싶었으나 이 작은 호텔들은 외국인인 나를 봉으로 아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이 곳이 고급 호텔인 것인지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그렇게 몇 군데를 다녀도 방이 마음에 들면 가격이 너무나 비쌌다. 사원 근처라 비쌌겠지만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일층에서 크리켓을 보면서 소리를 지르시는 인상 좋은 아저씨가 나를 반겨주셨다.
다들 여행 다닐 때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문화생활을 중요시한다.
그게 책 일수도 공연일 수도 있고, 전시일 수도 있다. 음식일 때도 있고.
그것과는 반대로 숙소랑 교통은 아끼는 편이다. 숙소는 잠만 잘 수 있으면 되고 교통은 조금 불편해도 목적지까지만 데려다주면 그뿐이다. 가치관 차이겠지만 하룻밤 기대는 곳에 많은 돈을 지불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여행지에서 수면은 엄청 중요하고 그래서 고급진 곳에서 숙박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이 틀린 게 아니라 나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졌음을 말하고 싶다. 이 전 글에서 언급했듯 요즈음은 여행하면 예전처럼 너무 싸구려 숙소와 너무 힘든 교통은 지양하려고 한다.
나는 잠자리를 크게 따지는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조금 넓은 방과 화장실이 공용이 아니었으면 한다. 물갈이로 인해 화장실은 편하게 쓰고 싶다.
반대로 음식이랑 문화 누리는 데는 돈을 아까지 않는 편이다. 이 가치관은 배낭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형성되었는데, 몸이 너무 편하게 여행을 다녀오면 뭔가 만족감이 크지 않았던 게 아직은 청춘이라 우기고 싶다.
다시 숙소 이야기로 돌아와서 풍성한 수염에 친절한 아저씨는 일꾼 한 명을 불러서 방을 안내해준다. 나는 우선 싼 방을 강조했다. 그로 인해 아저씨는 옥상에 제일 끝방을 소개해주셨다. 일꾼은 어둡고 습한 방에 전등을 켜 주었는데 방은 컸으나 습하고 밖의 추위가 안쪽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곤 한마디만 했다. 싼 가격!(가격은 기억이 안 나나 나는 바로 일주일 머물겠다고 말했던 것 같다.)
내 몸뚱이를 눕히기엔 충분히 컸고 화장실도 안에 있었다. 금액적으로는 완벽했다. 금액적으로는...
기차에서 잠이 피곤했었는지 졸렸다. 우선 한숨 자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침대 위에 있던 이불만으로는 내 턱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침낭을 덮고 위에는 세 겹의 남방을 입고 양말을 두 겹으로 신었다. 추위에 몇 번이나 깼는지 숙소를 옮겨야 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아까 일주일치 숙소비를 네고했던 금액이 기억나 버텨야만 했다.
추위에 심하게 떤 덕분에 밖으로 나와먹은 뜨거운 짜이와 함께 먹은 토스트는 왕의 식사가 부럽지 않았다.
매일 아침은 이 맛난 토스트와 짜이가 되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잠에서 깨어났더니 오후가 되어있었다. 배가 살살 고프기도 했지만 라씨가 먹고 싶어 졌다.
여기서는 왠지 대단한 가게를 찾을 것만 같았다.
15. 암리차르 초보 여행자 3
가게들이 많이 보였는데 다들 하나쯤은 비기를 숨기고 있을 법한 오로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경쟁이 치열해서 일 수도 있겠지만 성지의 좋은 기운을 쓰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원래 맛집은 허스름한 가게에서 욕쟁이 할머니가 무심코 던지는 따뜻함과 정성껏 만드신 손맛의 음식에 감동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저기 멀리 아주 작은 창고 같은 곳에서 우유 끓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 여기는 마법사(앞에서 말한 인도에는 요리의 마법사가 살고 있다. 그것도 무척이나 많이)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은거하는 성지 주변이다.
마법사를 난 찾아냈다. 라씨의 마법사. 그를 난 찾아냈다.
후에 방문할 바라나시의 라씨는 플래인 라씨보다는 과일이나 견과류를 이용해 화려한 맛과 비주얼을 보여주는 로코코스러움을 만끽시킨다면 암리차르의 라씨는 조선의 백자처럼 하얗고 깔끔하며 소작하지만 과하지 않은 정갈한 속에서 라씨 본연의 깊이를 간직한 그런 라씨였다.
큰 양철 컵에서 툭하고 나온 라씨는 델리 시내에서 파는 물탄 요구르트랑은 차원이 다른 깊이와 식감을 전해주었고 걸쭉한 커드는 지친 내 영혼을 달래주어 흐린 하늘의 구름을 걷어내고 따뜻한 햇빛을 보여주었다.
아쉽게도 주인 마법사 아저씨는 영어를 하실 줄 몰랐다.
금액도 종이에 숫자로만 쓰실 뿐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얼마나 만족하고 좋아하고 있는지 알고 계셨다.
과하디 과한 내 엄지 척 리액션은 라씨 맛에 어울리기 위해 과함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로써 하루에도 두세 번씩 방문한 나를 볼 때마다 "킴 ~ 킴 "이라 외치는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을 때부터 내 혀는 침으로 고였다. 덕분에 장 활동이 바빠져 하루에도 두세 번씩 화장실을 가야만 했다.
가게는 비록 작고 허름했으나 거기에는 신이 머물러 계셨다. 오는 사람에게 친절하셨고 따뜻하셨다. 더 이상 암리차르는 외롭지 않았고 춥지 않았고 힘들지 않았다.
사원 근처 광장에는 비 오는 평일임에도 많은 신도들의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꿈에 그리던 암리차르에 며칠 머무를 생각을 하니 황금사원은 조금 있다가 들어가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너무 급하게 들어가면 내가 그렇게 가고 싶던 곳의 꿈이 이루어져 허무해질 것만 같았다.
광장은 꽤나 길었다.
외국인은 거의 없었다. 아니 아예 서양인도 보이지 않았다. 한국어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완벽하다.
한국을 떠나는 순간 한국인이 많지 않은 곳에 가고 싶다. 현지에서 녹고 싶다. 도피하는 김에 제대로 도피하고 싶다. 가끔 외로울 때도 있지만 나는 그게 필요하다. 가끔은 한국인들과 어울릴 때도 있지만 가끔은 그들이 말을 걸어오면 침묵한다. 그게 때로는 득이다. 여행지에선.
물론 친구들과 노는 게 너무 즐겁다. 첫 인도 여행에서 충분히 느꼈으니! 하지만 때로는 소중하고 귀하게 만든 내 시간을 온전히 나만 쓰고 싶을 때도 있다.
라씨로는 배가 채워지지 않았다. 맛난 음식을 찾으러 사원의 반대편 길로 걸어갔다. 광장 쪽 길은 돌길이었는데 맨발로 걸어가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옷차림을 잠깐 설명하자면 현대식 복장인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거나 그위에 남방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으나 전통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원피스 치마라 하기엔 애매하지만 치마같이 긴 셔츠 같은 걸 위에 입고 청바지를 입은 현대와 전통의 혼합 차림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각양각색의 터번들을 머리에 감고 있었는데 한국에서도 개량한복을 대다수가 입고 있는 그런 날을 꿈 꿔보았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옷인 한복이 실용화되길 잠시 상상해 보았다. 쭉 뻗은 돌길은 깨끗하고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들 밝아 보였다.
신의 집을 향하는 그들의 표정이 어찌 어둡겠는가.
상점가들 사이로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였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아이스크림에 넋이 나가 있었다.
다음으로.
TMI: 우리나라 아이스크림처럼 다양하고 쉽게 아이스크림을 살 수는 없다. 인도 가게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은 비싸고 종류가 많이 없다. 대부분 초코맛이거나 바닐라맛 앞에서 언급한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을 동그라게 퍼내서 콘에다가 꽂아 주는 아이스크림인데 맛은 딱 두 개다 초코맛 또는 바닐라맛 그럼에도 사람들은 엄청 몰려든다. 비 오는데도, 추운 날씨에도 다들 줄 서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추운데 웬 아이스크림이냐 물어보고 싶지만 그 달달함이 또 추위를 잊게 해주는지도 모를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