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암리차르 방랑
이제 암리차르에 온지도 2일 차 첫날은 기차 여독과 추위로 일찍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침에도 비는 부슬부슬 내렸다. 우산 쓰기엔 적고 안 쓰면 점점 빗줄기가 머리를 축축하게 만들었다.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이끌고 이 추위를 달래줄 토스트 가게를 들렀다. 인도에서 토스트라 하면 정말 작은 식빵에 양파와 계란 프라이를 얹은 간단한 토스트인데 사이드로 주는 샐러드가 그동안 야채에 목말라있던 내 목구멍을 달래주었다. 같이 커피도 시키는데 커피는 너무나 쓰고 맛이 없어서 다음날부터 짜이를 시키는데 토스트가 너무 맛있다면 커피랑 짜이는 너무나도 맛이 없었다. 그렇게 아침을 좀 채우고 나니 오늘은 또 어떻게 재미있고 감사한 하루를 보낼지에 고민을 하게 된다. 오늘은 광장 넘어 시장 쪽으로도 가볼 요량으로 편한 차림을 하고 나왔다.
기회가 된다면 터번이랑 전통옷을 맞춰 입고 황금사원을 들어가 볼 요량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우선 입구에서 나눠주는 일회용 판매 두건은 황건적을 연상하게 하는 몹쓸 디자인이었고, 둘째는 이왕 온 거 멋진 사진 하나쯤은 남겨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광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어제 너무 지쳐서 제대로 느끼지 못한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처음엔 내가 뭔가 잘못했거나 얼굴에 뭐가 묻어있나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어떤 덩치 큰 뚱뚱한 수염의 어깨 형님 같은 분이 내게 성큼성큼 오셨다. 나도 한 덩치 하지만 살짝 주눅이 들었다. 왠지 화가 나있는 듯한 모습의 그가 내게 1미터의 거리를 두고 다가왔다. 아 도망가야 하나 긴장하고 있는데 조심히 한마디 하셨다. "너랑 사진 찍어도 되냐?"순간 못 알아들으니 다시 한마디 했다."포토" 같이 사진 찍자는 말씀이었다.
나는 수긍의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후 손짓을 하신다. 야 ㅡ 된데 라는 느낌의 인도어와 손짓.
한순간에 친구 몇 명이 다가온다. 그렇게 암리차르 연예인의 출몰을 알렸다. 이후에 왜 난 연예인들이 초반에 연예인병 걸리는지 이해를 충분히 했다. 그리고 왜 우울증과 허탈감에 빠지는지도..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남자들 사이에서 난 어색한 브이를 날렸다. 한번 물고 가 트이니 다들 와서 내게 사진 찍자고 다가왔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사진 찍자고 할 땐 내 어린 시절도 기억이 났다.
지금이야 전국적으로 외국인들 보기가 쉬운 세상이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우리 동네에 외국인이 나타나면 서로 말 걸기 바빴다, 영어도 안되면서 그저 파란 눈의 노란 머리의 그들이 신기하고 멋있었다.
이들 눈에 나는 중국인으로 볼까? 일본인? 아니면 한국인? 이들은 다름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그들이 신기하다. 그래서 그들도 나를 관찰하는 것이고 용기 있는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암리차르 있는 동안 제일 많이 들었던 단어는 '포토 투게더'였다. 그래 마음껏 찍으시오. 나는 준비되어 있어요.
그렇게 가다가 또 사진 찍고 가다가 또 사진 찍고 나도 찍히면 당신도 찍으리라 하면서 나도 막 찍어댔으나 아뿔싸 내 필름 카메라에 필름이 없었다. 이런 똥 멍청이.
나는 아직도 여행을 가면 필름 카메라를 챙겨간다. 여러 장점이 있는데 필름 사진은 디지털 사진처럼 쉽게 소비되고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디지털화 과정을 거쳐서 보관은 하지만 디지털이랑 다른 매력이 있다. 터번 가게 아저씨는 내 필카를 보면서 요즘 누가 필름 카메라 쓰냐고 자기는 엄청 좋은 디지털카메라 쓴다고 하시며 500만 화소 10년은 넘었을 소니 똑딱이 카메라를 자랑하신다. 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가 암리차르여.
그렇게 광장 끝까지 가니 이제 포장된 거리는 끝이 나고 비에 진흙이 되어버린 길이 나타났다. 잠시 고민했으나 난 역시 또 흙길을 택했다. 로컬 분위기의 시장가가 보이면서 맛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멀리서 보니 어묵같이 보이는 꼬치가 보였다. 색깔은 특이하게 주황색이랑 연두색 빛깔이었는데 먼저 자리를 차지하던 아빠와 아이로 보이던 부자가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더니 먹어보라고 자꾸 손짓을 한다. 배고픔에 장사 없다고 바로 꼬치를 주문했다. 꼬치 가게 주인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만국 공통어인 엄지 척을 했으나 물이 너무 마시고 싶었다. 밍밍한데 매운맛 난생처음 먹어보는 어묵이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옷가게부터 다양한 가게들이 모여있었다. 길가에 파는 흰색 전통의상을 하나 샀는데 생각보다 편했다. 근데 내가 놓친 게 있었다. 비와 흙탕물. 금세 바지는 더러워지고 옷은 빗물에 속이 보였다.
근데 하늘이 심상치 않다. 얼른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오늘도 일찍 하루를 마감해야 한다. 우기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비가 희한하게 내린다. 빠른 걸음으로 총총 뛰어 숙소로 간다. 도저히 안 되겠다. 있다가 우산은 하나 사야겠다. 얼른 숙소로 와서 비에 젖은 몸을 녹이고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숙소도 따뜻하지 않기에 얼른 숙소에서 차가운 물로 대충 씻고 몸을 말린다. 쾌적하다. 근데 심심하고 티브이에선 채널이 두세 개만 나오는데 종교방송과 어떤 사람의 연설만 계속 나온다. 티브이를 끄고 짐 정리를 했는데 문득 맥주가 당겼다. 그래 내가 맥주도 마시려고 옥상에서 기대했는데 비 오고 옥상 방이라 추운 여기서 나가서 맥주집을 가던지 맥주를 사러 가야겠다.
1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