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사회, 아시아에는 아시아만의 해법이 있다”
[2025 아시안 론제비티 포럼]
문일요 기자
(1) 아시아세션: 장수사회를 위한 민간자본의 역할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2025 아시안 론제비티 포럼(ALF)'가 열렸다. 더버터가 주최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한 올해 포럼에는 기업·비영리·학계·정부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경호 기자
‘고령친화 사회’ 구축을 위한 해법을 모색하는 전문가 포럼이 서울에서 열렸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2025 아시안 론제비티 포럼(Asian Longevity Forum, ALF)’는 ‘초고령사회, 환희인가 비극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더버터가 주최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한 올해 포럼에는 기업·비영리·학계·정부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김시원 더버터 대표는 개회사에서 “초고령사회를 넘어 ‘장수사회’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며 “길어진 삶을 어떻게 더 잘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해법을 아시아에서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축사에서 “고령화는 위기이자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건강하고 생산적인 노후를 위해 계속고용, 재가돌봄, 제도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윤세리 온율 이사장은 “초고령화는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과제”라며 “재단·정부·기업이 협력해 지속 가능한 고령사회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위 사진)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윤세리 온율 이사장. 이경호 기자
이날 기조연설은 루스 샤피로 아시아 필란트로피 소사이어티 센터(CAPS) 대표가 맡았다. 샤피로 대표는 “고령화의 진앙지는 아시아”라며 “한국·일본뿐 아니라 태국, 중국 등도 빠르게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는 ‘꼰대’라는 표현 탓에 장년·노년 세대를 ‘변화에 닫힌 존재’로 낙인찍히기 쉽지만, 노년을 위기나 부담으로만 보는 시선에서 우리 사회의 자산으로 바꾸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중요한 자산입니다. 존엄(dignity)을 지키면서 어떻게 더 오래, 건강하게, 의미 있게 살게 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입니다.”
샤피로 대표가 반복해서 강조한 키워드는 ‘민간자본’이었다. 그는 “문제의 크기에 비해 공공 재정은 빠르게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며 “기부와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공유가치창출(CSV), 임팩트투자 등을 모두 아우르는 ‘민간 사회투자(Private Social Investment)’가 핵심 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루스 샤피로 CAPS 대표. 이경호 기자
“한쪽 끝에는 돌려받지 않는 순수 기부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수익 극대화 투자가 있습니다. 그 사이에 임팩트투자, CSV, CSR 등이 쭉 이어진 ‘연속선(continuum)’이 있죠. 이러한 자원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고령사회 해법의 스펙트럼이 달라집니다.” 샤피로 대표는 대만 기업의 직장 내 보육·육아 지원 사례를 들었다. “정부가 출산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만으로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기업이 사내 어린이집·부모 교육·엄마·아빠 모두를 위한 육아휴직을 도입했더니 직원 1000명당 출생아 수가 6명에서 28명으로 4배 넘게 늘어났습니다.” 정부 정책이 기본 틀을 제공한다면 기업과 재단 등 민간 영역에서 혁신적인 솔루션을 얹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샤피로 대표는 고령화를 ‘위키드(wicked) 문제’로 규정했다. 한 부분을 건드리면 다른 부작용이 튀어나오는 복잡하게 얽힌 문제라는 뜻이다. “서양 의학은 위가 아프면 위, 머리가 아프면 머리만 봅니다. 하지만 동양 의학은 몸 전체를 본다고 하죠. 고령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거·돌봄·의료·소득·외로움이 한 몸처럼 얽혀 있어요. 어느 한 부분만 수술하듯 건드려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샤피로 대표는 “아시아에는 서구와 다른 고유의 가치와 제도, 커뮤니티가 있다”며 “겸손만 미덕으로 삼지 말고 아시아식 해법과 모델을 더 적극적으로 세계에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고령화, 다섯 가지 방향으로 재정의해야”
CAPS는 이번 ALF를 계기로 아시아 6개 지역(중국·홍콩·일본·한국·대만·태국)의 고령화 대응을 분석한 ‘‘고령친화 사회 구축을 위한 아시아의 여정’ 보고서를 최초로 공개했다.
장희수 CAPS 어드바이저는 이번 연구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바탕으로 아시아 관점에서 어떻게 장수사회를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여러 나라에서 복지·돌봄 예산은 정체되거나 줄어드는 반면 고령화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며 “공공자원과 민간자원이 역할을 나누고, 특히 민간에서는 대체·보완·혁신실험이라는 세 가지 축에서 민간의 역할을 훨씬 더 적극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장희수 CAPS 어드바이저. 이경호 기자
아시아의 고령화 속도와 양상도 짚었다. 그는 “한국·일본·홍콩·대만은 이미 고령화 지표가 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해서도 상위권”이라며 “태국·중국본토처럼 재정여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국가들도 빠르게 뒤를 쫓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대수명은 80세 전후로 수렴하고, 65세 이상 비중은 15~30%에 이르는 나라가 늘면서 고령화를 북반구 선진국의 전유물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구조적 이슈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단순한 ‘노인 복지 확대’로 풀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장 어드바이저는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높아진 새로운 노년층이 등장하고 있다”며 “이들은 전문기관이 아닌 자신의 집과 동네에서 살고 싶어 하고, 병원·시설 중심이 아닌 ‘집과 커뮤니티’ 기반의 돌봄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92%가 “가능하면 자택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다”고 답했다. 동시에 가족 해체, 1인 가구 증가로 고립·고독 문제가 커지고, 공공 지원과 민간 서비스 사이의 ‘중간층’도 빠르게 늘고 있다.
그는 CAPS 보고서로 정리한 고령친화 사회 구축을 위한 다섯 가지 해결 방법을 소개했다. 첫째, 병원·시설 중심에서 집·지역사회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이를 위한 지역사회 기반의 커뮤니티 케어 인프라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가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둘째, 노인을 ‘수혜자’가 아닌 ‘자산·행위자’로 보는 관점 전환이다. 그는 “고령층은 여전히 경험과 역량을 가진 인적 자원”이라며 “고용과 사회참여를 통해 존엄과 자신감을 회복하는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셋째, 민간 자본 포트폴리오 설계다. 정부 보조금이나 기업의 기부, 임팩트투자로 어떤 문제에 어떤 자본을 섞어 쓰는 지에 따라 결과도 달라진다고 했다. 넷째는 ‘실버 이코노미’ 육성이다. 그는 “이른바 론제비티 경제의 규모를 키우되, 기존 공공지원에서 밀려나는 중간계층이 배제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섯째는 기술 활용이다. 그는 “고령층 디지털 격차가 새로운 불평등이 되고 있다”며 “기술을 ‘배제의 장벽’이 아니라 돌봄과 연결의 수단으로 만들기 위한 중간지원, 교육, 사용자 친화적 설계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과제도 짚었다. 장 어드바이저는 “한국은 기대수명 증가와 고령화 속도가 모두 높고, 노인 빈곤율도 OECD 최상위권”이라며 “디지털 인프라 측면에서는 가장 앞서 있지만 이 시스템을 얼마나 포용적인 방향으로 설계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집으로 찾아가는 돌봄… “집이 곧 요양시설”
톈 콴콴 CAJ시니어케어 상임이사는 중국의 홈케어·커뮤니티 케어 모델을 소개했다. 톈 이사는 CAJ의 뿌리가 ‘등록금 무료 직업학교’에 있다고 설명했다.
“2005년 설립자가 저소득 청년에게 무료 직업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를 세웠습니다. 교육과 사회적 책임이 CAJ의 DNA에 깊이 박혀 있죠. 2009년에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시니어케어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중국 CAJ시니어케어의 톈 콴콴 상임이사. 이경호 기자
CAJ는 ▶︎개인위생·이동 지원 ▶︎말벗·정서적 돌봄 ▶︎기본 재활 ▶︎집으로 찾아가는 내방의료 ▶︎고령친화 홈 리모델링 ▶︎돌봄인력 교육·훈련 등을 통합 제공한다. ‘고객 매니저’가 초기 평가를 진행하고, 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요양보호사 등이 한 팀이 되어 맞춤형 돌봄 계획을 짠다.
“우리는 ‘집 안에 있는 작은 요양병원’을 지향합니다. 노인이 병원 대신 집에서 재활·치료·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죠. 고령층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 의료비도 줄이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CAJ는 정부·재단과 협력해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해왔다. 2016년에는 JP모건재단 지원으로 대학생 대상 ‘에이징 어웨어니스(Aging Awareness)’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온라인 강의와 현장 방문을 통해 8000여 명의 학생에게 고령사회와 돌봄 일자리를 소개했고, 이 중 3000명이 노인·헬스케어 분야에 취업했다.
톈 이사는 “재단과 기업의 사회공헌 자금은 작은 사회적기업이 새로운 모델을 시험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촉매자본”이라며 “실험이 성공하면 정부 정책이나 공공보험과 연계돼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홍콩 재단들의 ‘고령화 공동기금’ 조성 전략
아이린 소 저샨재단 상임이사는 홍콩의 고령화 대응을 ‘교육·산업·재단 네트워크’ 세 갈래에서 설명했다. 저샨재단은 2004년 설립된 민간재단으로, ‘서로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번영하는 삶’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 아이린 소 이사는 2019년 합류한 뒤 고령화를 전략적 중점 분야 중 하나로 재정비했다.
저샨재단은 홍콩대·홍콩폴리텍대와 함께 사회복지·의대뿐 아니라 디자인·부동산·금융·경영 등 전 학과 커리큘럼에 ‘에이징 렌즈(aging lens)’를 통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 3년간 11개 단과대학에서 교수 20여 명이 참여했고, 200명 넘는 노인이 학교로 찾아가 학생들과 직접 만나 노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다.
홍콩 저샨재단의 아이린 소 상임이사. 이경호 기자
“의대 교수 한 분이, 이 프로젝트 이후 의대 수업에 노인과의 대화·공감 훈련을 상시 도입했다고 감사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노화를 질병이 아니라 삶의 한 단계로 보는 관점이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 거죠.”
이 모델은 2단계로 홍콩침례대·사범대와 연계해 중·고등학교로 확장됐다. 사범대 학생들이 ‘노화 교육’을 포함한 수업·활동을 설계해 실제 학교 현장에서 실행하고 있다.
저샨재단은 고령친화 건축·인테리어를 하는 사회적기업과 협력해 노인 아파트를 리모델링했다. 홍콩 사회복지연합과 함께 ‘치아·연하 기능이 떨어진 노인을 위한 케어푸드 표준’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대형 레스토랑 체인 10곳 이상이 이 표준을 반영한 메뉴를 개발했다.
이러한 고령사회 구축을 위한 활동의 핵심에는 홍콩 민간재단들의 네트워크가 있다. 저샨재단은 2016년부터 홍콩 21개 민간재단이 참여하는 ‘고령화 필란트로피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개별 재단의 규모는 제각각이지만, 께 모이면 목소리가 커집니다. 공공·민간 파트너를 합치면 정부도 쉽게 접근하기 힘든 현장 정보와 관계망이 생깁니다. 덕분에 노동복지부 장관이 직접 프로젝트를 방문하고, 비공개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하며 정책을 같이 논의하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아이린 소 이사는 “법적 조직도, 거창한 사무국도 없는 느슨한 네트워크이지만, 신뢰가 쌓이자 자연스럽게 공동 프로젝트·공동 메시지가 생겼다”며 “환경·영유아 등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한 네트워크가 생겨나는 중”이라고 말했다.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 사회적기업
태국 사회적기업 치와밋을 이끄는 러이라타나 랑싯폴 대표는 “우리는 ‘삶과 라이프라인을 함께 지키는 친구’가 되고 싶다”고 소개했다. 치와밋은 말기·만성질환자와 가족이 ‘원하는 방식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태국의 사회적기업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할 것인가’입니다. 병원에서 온갖 기계와 튜브에 둘러싸인 채 연명치료를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선택과 존엄을 지키며 삶을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죠.”
태국 사회적기업 치와밋의 러이라타나 랑싯폴 대표. 이경호 기자
치와밋은 의료·경제·사회·정신·법률 등 5개 분야를 아우르는 ‘홀리스틱 엔드오브라이프(end-of-life) 플래닝’을 제안한다. 병원·공공기관과 함께 의료진 대상 워크숍을 열어 완화의료·커뮤니케이션 교육을 하고, 시민을 위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프로그램, 가족 대화 워크숍, 재무 설계·상속 교육 등을 운영한다.
“85세 할머니가 쓰러져 중환자실에 실려갔을 때 가족들이 ‘모든 연명치료를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막내딸이 예전에 치와밋 프로그램에서 작성했던 엄마의 노트를 떠올려 의사에게 보여줬죠. 그 노트 덕분에 가족은 죄책감 없이, 할머니가 원했던 방식으로 평화로운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치와밋은 최근 태국 적십자회 장기기증센터, 보험사, 은행 등과도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보험사는 말기 환자·가족을 대상으로 워크숍과 콘텐츠 개발을 담당하고, 은행은 자산 상속과 유산기부 설계를 돕는다.
관계와 커뮤니티에서 답을 찾다
발표 이후 이어진 패널토론의 키워드는 ‘여성’과 ‘가족’이었다. 러이라타나 대표는 “태국에서도 여전히 ‘돌봄은 딸의 몫’이라는 문화가 강하다”고 말했다. “노인 돌봄, 말기 환자 돌봄의 1차 책임자는 대부분 딸이거나 며느리입니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시간제 일로 전환하면서도, 그 부담을 개인의 선택으로 떠안죠. 장수사회 논의에서 이 보이지 않는 노동과 스트레스를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아이린 소 이사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두 아이를 위해 6년간 경력을 중단한 뒤 NGO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면접관에게 ‘우리는 아이가 없는 여성을 선호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아이를 돌보는 기간이 곧 ‘경력 단절’이 되는 구조에서는 누가 기꺼이 부모·시부모·조부모를 돌보기 어렵다”며 “양육을 위한 재택근무, 복직 제도가 없으면 여성에게 ‘선택하라’는 말은 사실상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고 말했다.
루스 샤피로 CAPS 대표와 1부 아시아세션 연사들이 참여한 패널토론. 왼쪽부터 장희수 CAPS 어드바이저, 샤피로 대표, 톈 콴콴 CAJ시니어케어 상임이사, 아이린 소 저샨재단 상임이사, 러이라타나 랑싯폴 치와밋 대표. 이경호 기자
루스 샤피로 대표는 “홍콩은 50만 명에 달하는 이주 도우미 덕분에 가족 돌봄 부담이 상당 부분 외주화돼 있다”며 “한국과 일본은 이 부분에서 이민·노동 정책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톈 콴콴 이사는 “중국은 법적으로 산모에게 180일의 출산휴가를 보장하지만, 남성의 출산휴가는 지역에 따라 7~30일 수준이라 자연스럽게 육아와 돌봄은 여성의 몫이 된다”며 “일부 지역에서 남성 출산휴가를 확대하는 시범사업이 시작됐고, 공공 어린이집 확충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연사들은 가족 간 대화의 중요성을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톈 이사는 “중국에서 가족들이 노부모를 병원에 데려와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기본 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가족 대상 온라인 교육과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는데, 정부·재단 지원 없이도 스스로 비용을 내고 수강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러이라타나 대표는 “동아시아 문화에서는 죽음·질병·재산 이야기를 가족끼리 꺼내는 것 자체가 금기인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대화 카드’ 같은 도구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린 소 이사는 홍콩 ‘프로젝트 홈(Project Home)’ 사례를 소개했다. 도심의 유휴공간을 리모델링해 50대 이상 저소득층 주민·노인·영유아 가족·청년 자원봉사자가 함께 드나드는 동네 거점으로 만든 프로젝트다.
“그곳에서는 할머니가 이웃집 아이를 돌봐주고, 청년 자원봉사자가 홀몸 노인의 말동무가 됩니다. 가족 단위 돌봄과 마을 단위 돌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죠. 형식적 프로그램보다 ‘함께 시간을 보내게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샤피로 대표는 “아시아의 장점은 관계와 커뮤니티에 대한 감각”이라고 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자랐는지, 어디서 일하는지, 어느 동네에 사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권입니다. 장수사회 해법도 그 관계 위에서 찾아야 합니다. 정부·기업·재단·시민이 각자 역할을 분명히 하되, 관계와 신뢰를 기반으로 ‘아시아식 장수사회 모델’을 만들어갈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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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연결과 사회통합을 위한 한국사회의 해법들 [2025 아시안 론제비티 포럼]
최지은 기자
(2) 한국 세션: 연령차별주의에 맞서는 사람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양재 엘타워에서 열린 ‘2025 아시안 론제비티 포럼’ 현장. 이경호 기자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2025 아시안 론제비티 포럼’ 2부는 한국 전문가 세션으로 진행됐다. 경제, 기술, 일자리, 법조 분야의 국내 전문가들이 장수사회를 맞이하기 위한 경제적·사회적 과제에 대해 강연했다. 고령자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바라보는 시각 전환부터, 기술과 일자리의 포용적인 설계, 존엄한 노년을 위한 제도적 보완까지 장수사회를 위한 한국의 해법을 제시했다.
고령자가 만드는 새로운 성장 동력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령자는 어떻게 한국 경제의 동력이 되는가’를 주제로 급격한 인구 변화 속에서 고령자의 경제적 역할을 재조명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노동력 문제는 단순히 일할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할 사람이 부족한가’의 문제”라며 “이 격차를 메우는 핵심 열쇠가 바로 고령자”라고 말했다. 산업과 지역에 따라 인력 수급의 불균형 양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이경호 기자
그는 고령 인구의 ‘질적 변화’를 강조했다. 앞으로의 고령층은 과거와 달리 더 건강하고, 교육 수준이 높고, 생산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경제성장기에 교육과 영양, 의료 혜택을 받은 세대가 곧 고령층으로 진입한다”면서 “50년 뒤에는 55세 이상 대졸 인구가 전체의 절반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고령자 고용 확대 방안으로 흔히 언급되는 ‘정년 연장’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정년 연장은 연금수급 공백을 메우는 데 일정 부분 효과가 있지만, 노동수급 불균형을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며 “업종이나 숙련 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근속 기간을 늘리는 방식은 정작 인력이 부족한 산업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대안으로 ‘나이를 따지지 않는 노동시장’ 전환을 제시했다. 그는 “채용과 보상은 연령이 아니라 사람의 역량, 생산성, 잠재적 기여도를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기업은 개인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령친화적 일자리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고령자의 체력과 건강 상태에 맞춰 일하는 시간과 강도를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유연한 일자리를 만들면 여성·청년에게도 매력적인 근무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가 기업과 함께 이런 변화를 만들어갈 때, 고령자는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노년을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
최문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은 ‘노년을 위한 기술, 공감에서 시작된다’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기술은 단순히 노인을 돕는 수단에서 나아가 사회 전체의 인식과 구조를 바꾸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AI나 로봇 같은 첨단기술을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성을 중심에 두고 기술을 인간화(humanize)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최문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이경호 기자
최 원장은 한국 사회의 노년을 이해하기 위해 세 가지 축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첫째는 ‘고령자의 다양성’이다. 그는 개인의 생애 경험, 교육, 건강, 관계의 누적된 차이가 노년기에 가장 크게 드러난다고 했다. 한국 사회는 특히 세대 간 격차가 크고 노년의 다양성이 두드러진다. 둘째는 ‘정상노화와 비정상노화의 구분’이다. 시력 저하, 반응 속도 감소와 같은 현상은 자연스러운 변화로, 모든 이가 겪는 정상 노화다. 반면 치매나 암은 질병이지 정상적인 노화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최 원장은 “85세 이상 절반이 치매에 걸린다는 말은 동시에 절반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지나친 공포 담론을 경계했다. 정상노화는 생활환경과 기술을 통해 관리할 수 있으며, 비정상노화는 의료적 접근으로 다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셋째는 ‘제3의 인생과 제4의 인생의 구분’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은퇴 후에도 건강과 역량을 유지하며 사회 참여와 자기실현을 이어가는 시기를 ‘제3의 인생’이라 하고,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를 ‘제4의 인생’이라 부른다. 그는 “이상적인 노년은 제3의 인생을 최대화하고 제4의 인생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며 “한국 사회가 이런 구조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최 원장은 “한국 사회의 경쟁 중심 문화 속에서 나이가 생산성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는 ‘연령 차별’로 이어지며, 외모에서조차 나이를 지우려는 사회적 압박을 낳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에이지테크의 시작은 기술이 아니라 공감이며, 차별을 교정하고 포용적인 설계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우고, 일하고, 기여하는 노년
김문정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장수사회를 위한 일자리 모델’을 주제로, 고령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일자리 방향과 활력 있는 노년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먼저 장수사회가 가져온 생애주기 변화를 짚었다. 과거에는 학업, 결혼, 은퇴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생애 패턴이 일반적이었으나, 이제는 학습과 일, 여가가 순환하며 언제든 재취업과 재학습이 가능한 사회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일의 의미는 단순한 생계유지에서 벗어나 학습·봉사·사회적 기여로 확장되고 있다.
김문정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 이경호 기자
이어 그는 한국의 노인일자리 정책을 소개했다. 2004년부터 시행된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은 65세 이상 노인의 경제활동과 사회참여를 지원하는 대표적인 제도다. 그는 장수사회에 대응하는 실천 사례로 ‘상호 돌봄형 일자리’와 ‘능동적 사회참여형 일자리’를 대표적으로 소개했다. 상호 돌봄의 대표사례로 ‘노노케어’ 사업을 들었다. 건강한 노인이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 찾아가 정서적·생활적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2024년 기준 약 5만 명의 어르신이 참여하고 있다. 김 부연구위원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구조는 돌봄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참여자에게도 사회적 유대와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능동적 실천의 사례로는 ‘시니어 드론 순찰대’를 소개했다. 조종자격증을 보유한 60세 이상의 시니어들이 지역 경찰, 해양경찰과 협력해 재난 위험지역을 점검하고 안전을 감시하는 활동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이들은 단순한 근로자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안전망 역할을 자임하며 봉사와 사명감으로 활동한다”며 “시니어 세대의 전문성과 기술 역량을 사회적 가치와 연결한 모범사례”라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김 부연구위원은 “노인의 경험과 역량이 사회적 가치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럴 때 비로소 노인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활력 있는 사회의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년의 존엄은 '선택'에서 온다
임성택 공익법단체 두루 이사장은 ‘노년의 자기결정권, 제도는 어디까지 보장하는가’라는 주제로 고령사회의 법적·사회적 과제를 다루며 “노년의 존엄한 삶을 위해서는 자기결정권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임 이사장은 “우리 사회는 노인이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다고 전제하고, 타인의 판단에 맡기는 구조를 암묵적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성택 공익법단체 두루 이사장. 이경호 기자
임 이사장은 노년의 자기결정권이 제약되는 네 가지 제도적 영역을 설명했다. 첫 번째, 한국의 ‘성년후견제도’는 판단 능력이 저하된 사람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의사결정을 돕는 제도이지만, 현실에서는 ‘조력’이 아니라 ‘대리’에 가깝다.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의견을 존중하기보다 대신 결정해버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주거의 영역을 예로 들었다. 그는 “요양시설로 들어가는 노인의 70%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등을 떠밀려’ 입소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설은 편의를 위해 인간의 존엄을 제약한다”며 “요양시설은 집이 아니라 집단생활 하는 군대와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의 ‘기저귀 없는 요양시설 운동’을 예로 들면서 “한국도 존엄한 돌봄 환경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는 돌봄의 영역이다. 그는 “돌봄의 패러다임이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2023년 제정된 ‘통합돌봄지원법’은 ‘지금 사는 곳에서 누리는 돌봄’을 목표로 하지만 예산과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실효성이 낮다. 임 이사장은 “진정한 통합돌봄은 자기주도적 돌봄이어야 한다”며 “해외에서는 이미 개인의 선택권을 중심으로 돌봄을 설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 번째, 생명연장과 관련된 자기결정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생명의 마지막 단계에서의 자기결정권이 존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이후 약 45만 명이 연명의료 중단 또는 유보를 선택했으며, 자기결정에 따른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임종이 임박한 사람에게만 적용돼,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하더라도 그 전에는 생명연장 중단을 선택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임 이사장의 설명이다. 임 이사장은 “한국은 여전히 ‘조력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조차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령차별주의를 넘어서
한국 세션 패널토론은 ‘연령차별주의에 맞서는 사람들’을 주제로 진행됐다. 김시원 더버터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서는 네 명의 연사가 고령친화 사회의 걸림돌인 연령차별을 넘어설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먼저 연령차별주의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짚었다. 최문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은 연령차별이 개인의 내면으로 스며드는 ‘내재화된 연령차별’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최신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같은 환경에서도 ‘나이 들어서 나는 못 한다’는 식의 내재화가 강할수록 디지털 리터러시 수준이 유의하게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2025 아시안 론제비티 포럼'의 2부 한국세션 연사들이 참여한 패널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경호 기자
김문정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일자리 관점에서의 손실을 지적했다. 연령주의가 청년·노년 간 제로섬 프레임과 갈등을 부추기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해 노년층의 사회적 배제와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철희 서울대 교수는 경제적 차원의 비효율에 대해 설명했다. 연령이 인사와 평가의 변수로 개입되면 적재적소 배치 원칙이 흔들리고, 개인도 “내가 이 나이에 이 일을 해도 될까”와 같은 자기 인식 때문에 인적자본 투자와 성장을 스스로 제한하게 되기 때문에 거시적으로 국가 성장에도 부정적이라는 설명이다.
장수를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의 계기로 삼기 위해 한국사회가 준비해야할 것들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임성택 이사장은 해법의 축을 ‘인권’으로 잡았다. 임 이사장은 “노년의 인권과 청년의 인권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며 “혐오와 차별이 없고,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일수록 세대 통합과 장수의 행복이 가능하다”고 했다.
김시원 대표는 “장수사회는 단순히 ‘오래’가 아니라 ‘함께 오래’ 살아가는 사회”라며 “고령화는 위험이 아닌 구조적 전환”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이어 "청년을 포함한 모두가 이 전환을 함께 고민하고 설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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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사회의 금융, 사회적 안전망으로 진화한다 [2025 아시안 론제비티 포럼]
문일요 기자
(3) 주제세션1: 론제비티와 금융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개최된 ‘2025 아시안 론제비티 포럼(ALF)’ 3부에서는 ‘론제비티와 금융’을 주제로 전문가 4인이 무대에 올랐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서 노후를 위한 금융이 무엇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전문가들은 연금이나 보험, 신탁과 같은 전통적인 금융 수단의 역할에 더해 조부모경제, 유산기부를 아우르는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주제세션 발표에는 강성호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배광열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 조한종 강서50플러스센터장, 하승희 하나리빙트러스트센터 팀장이 차례로 나섰다.
건강과 소득, 고령층이 마주하는 '이중 위험'
첫 발표자로 나선 강성호 선임연구위원은 저출산·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한국의 인구 구조를 짚으면서 “고령화 자체보다 저출산과 맞물리면서 노동·재정·복지의 부담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이 진짜 위기”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18년 1.0명 아래로 떨어진 이후 2023년에는 0.72명까지 내려앉으면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강성호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경호 기자
강 위원이 특히 강조한 건 고령층이 마주하는 ‘이중 위험’이다. “노후 위험은 크게 건강과 소득, 두 가지입니다. 60세 전후로 정년·조기퇴직이 집중되면서 소득은 급격히 떨어지고, 동시에 의료와 돌봄 비용은 늘어납니다. 같은 시기에 두 위험이 겹치는 인구가 늘면 노후빈곤은 구조화됩니다.”
국가데이터처에서 발표한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66세 이상 인퇴연령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2023년 기준 39.8%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근로연령인구(18~65세)의 상대적 빈곤율 9.8%와 비교하면 그 격차도 매우 큰 편이다. 강 위원은 “실제 최소생활비 이상의 노후 자금이 준비된 인구 비율은 27%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강 위원은 고령층 대상의 공적 금융제도와 사적 금융상품이라는 두 축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현재 국내 정책과 제도를 살펴보면 건강 위험 쪽은 국민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중심으로 비교적 잘 짜여 있는 반면 소득 위험은 연금과 노후자산 설계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고령층을 위해서는 주택을 활용한 노후소득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층들이 소득은 부족하지만, 자가 주택을 가진 비율은 상당히 높습니다. 주택과 농지를 연금화해 소득으로 전환하는 장치를 적극 활용하면 빈곤율을 의미 있게 낮출 수 있습니다.”
강 연구위원이 제시한 ‘고령친화 금융’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연령·상황에 따른 차등 규제 ▶︎세제 인센티브를 통한 연금·간병보험 활성화 ▶︎금융 취약 고령자 보호장치 강화 등이다. 고령층은 금융 이해도가 낮고 사기·불완전판매에 취약한 만큼, 동일한 금융상품이라도 설명 의무와 적합성 심사 등을 더 두텁게 적용하는 ‘연령별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또 연금·간병보험에 대한 세액공제·보조금 등 마중물 역할의 인센티브를 늘려 민간 금융이 장수 리스크를 분담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결국 노후의 건강과 소득을 함께 다루는 ‘포괄적 금융’이 필요합니다. 소득을 보장하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주택연금 등과 건강 유지를 위한 건강·간병보험이 한 사람의 생애주기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제도와 시장이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50억 자산가도 홀로 죽는다
두 번째 발표자인 배광열 변호사는 법정 후견과 고령자 권익옹호를 현장에서 다뤄온 변호사다. 그는 ‘금융으로 노년의 고립을 막는다’를 주제로 강연을 시작하면서 사진 몇 장을 띄웠다. 사진 속 집들은 20억원이 넘는 아파트다. 이곳에 홀로 거주하는 노인의 자산은 50억원으로 추정된다. 겉으로 보기엔 ‘성공한 노년’이지만, 집 안은 쓰레기로 가득했다. 세탁기 위에는 치우지 못한 대변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고가의 주택을 소유한 자산가지만 결국 병원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배광열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 이경호 기자
“자산 규모만 보면 ‘돈 걱정 없는 노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돌봐줄 사람이 없고, 본인의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순간 이분들의 삶은 급속히 무너집니다. 우리가 노후를 논할 때 공적 복지에서 소외된 ‘중산층 고령자’에 대한 고민이 절대 빠져서는 안 됩니다.”
배 변호사는 서울·수도권의 중산층 고령자들이 고가의 아파트를 여러 채 보유한 채 혼자 살다가, 자신이 번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방치되는 사례를 반복해서 목격했다고 소개했다. 문제는 국가와 지자체가 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법적·재정적 장치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소득·자산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공공서비스 대상에서 빠집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스스로 도움을 거부하거나 치매에 걸리기라도 하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보유 자산이 오히려 돌봄의 장벽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그가 강조한 해법의 키워드는 ‘준비된 연결고리’다. 연금·보험·신탁·복지 서비스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현재 구조에서는, 당사자의 판단력이 떨어지는 순간 모든 연결이 끊어진다. 배 변호사는 “금융상품이 없는 게 아니라, 상품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통로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고령자 재산을 노리는 경제적 착취 문제를 짚었다. “미국에서는 가족·지인·돌봄 제공자가 노인의 자산을 ‘합법을 가장해’ 빼앗는 범죄를 ‘실버 칼라 크라임(Silver collar crimes)’이라고 부릅니다. 노인 학대 중에서도 가장 고차원적이고 적발이 어려운 범죄로, 일부 주에서는 전담 수사팀까지 운영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미국 증권관리자협회(NASAA)가 만든 ‘취약 성인 보호 모델법’처럼 금융기관 종사자가 고령자 금융착취가 의심될 경우 거래를 잠시 중단하고 감독당국·수사기관에 신고하면 책임을 면제해 주는 장치도 소개했다. 한국에서도 금융소비자보호법·노인복지법 개정을 통해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배 변호사는 최근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치매 공공신탁과 고령자 공공신탁 시범사업 논의도 언급했다. 중산층 이하 고령자의 재산을 공공 신탁에 맡겨 치매·인지저하 이후에도 안전하게 관리하는 제도다. 정부가 내년부터 시범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중산층 고령자를 보호하는 건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국가 복지지출을 줄이는 투자입니다. 자산을 잘 쓰고, 잘 지키도록 도와주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나중에 모든 자산을 잃고 빈곤층으로 떨어진 사람을 지원하는 비용보다 훨씬 적습니다. 금융과 법, 복지가 연결되는 ‘따뜻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장수사회에서 금융이 해야 할 가장 인간적인 역할입니다.”
빠르게 부상하는 ‘조부모 경제’
세 번째 발표자로 나선 조한종 센터장은 ‘세대를 연결하는 금융, 조부모 경제’를 주제로 가족 안에서의 론제비티를 이야기했다. 그는 17년간 장인·장모와 함께 살며 손주 돌봄과 노부모 돌봄을 동시에 경험한 ‘샌드위치 세대’로 자신을 소개했다.
조 센터장은 “주민등록상 나이만으로 노년을 이해할 수 없다”며 “몸의 나이, 마음의 나이, 꿈의 나이, 영성의 나이 등 다양한 측면으로 노년을 이해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한종 강서50플러스센터장. 이경호 기자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에이지랩(Age Lab)이 제시한 ‘론제비티 경제(Longevity economy)’ 개념을 소개했다. 고령 소비자와 그 가족을 위한 제품·서비스 수요가 하나의 거대한 산업군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이지랩에 따르면, 론제비티 경제 규모는 연간 8조 달러(약 1경1760조원)으로 추산된다. 이후 2032년까지 13조5000억 달러(약1경980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론제비티 경제 안에는 돌봄 경제가 있고, 그 옆에 조부모 경제가 있습니다. 조부모는 더 이상 가족의 조연이 아니라 손주와 자녀,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경제 주체입니다.”
조 센터장은 해외의 ‘조부모의 날(Grandparents Day)’과 한국의 가정의날, 노인의날을 예로 들며, 세제·가족 정책을 연계한 ‘가족 단위의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가 말하는 ‘조부모 경제’는 단순한 손주 돌봄이 아니다. “고령층은 손주 양육비와 교육비를 지원하는 가계의 숨은 재정 스폰서인 동시에 명절·여행·경조사를 기획하고 비용을 부담하는 소비 리더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지역 돌봄과 자원봉사, 공동 주거 실험에 참여하는 지역사회 인프라를 조성하는 중심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조부모경제의 중심에 있는 고령층들은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다. 미국의 조부모 세대는 약 7000만 명으로 연간 2800조원이 넘는 상품과 서비스 구매에 돈을 쓴다. 미국 전체 자산의 약 75%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연간 90조원을 손주를 위해 지출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의 조부모 규모는 약 930만 명으로 추정된다.
강서50플러스센터가 추진하는 ‘고령친화 상점’ 프로젝트도 소개됐다. 고령친화 인프라를 갖춘 상점을 인증하고, 세대공존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역 소비를 촉진하는 모델이다. 조 센터장은 “시니어 비즈니스와 사회적경제가 만나는 접점에서 세대 통합형 서비스와 일자리를 동시에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조부모를 ‘돌봄 제공자’가 아니라, 복지체계와 시장의 중심축으로 재정의해야 합니다. 가족 경제·지역 경제·돌봄 경제를 잇는 핵심 플레이어로 조부모를 인정할 때, 장수사회는 비용이 아니라 기회가 됩니다.”
신탁 하나로 노후와 기부를 설계하다
마지막 발표자인 하승희 팀장은 하나은행 내 ‘하나 리빙트러스트컨설팅’에서 상속·증여·기부 신탁을 상담하는 금융 전문가다. 그는 “신탁은 재산을 보호하는 강력한 플랫폼”이라며 장수사회에서 신탁이 노후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설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 팀장은 “하나리빙트러스트컨설팅은 연간 2700~3000건의 상담을 진행하고, 약 20%는 실제 신탁 계약으로 이어진다”며 “이 가운데 10~15%가 기부를 포함한 설계”라고 소개했다. 기부가 ‘선한 마음’만으로가 아니라 노후 대비와 결합된 현실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하승희 하나리빙트러스트센터 팀장. 이경호 기자
그 변화의 배경으로 그는 ▶︎1인가구 증가 ▶︎자녀 없는 부부 가구 확대 ▶︎치매 환자 수 증가 등을 들었다. “예전에는 ‘조금 남으면 사회에 돌려주자’ 정도였다면, 지금은 ‘내가 아프거나 판단력이 떨어져도 내 생활과 돌봄이 유지되게 해 달라’는 요구가 훨씬 구체적입니다.”
그는 실제 사례를 들어 신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인가구로 치매 진단을 받은 어르신이었습니다. 아들과 연락이 두절됐고, 형제자매와 사이가 나쁘지 않지만 상속 의사는 전혀 없었습니다. 거주 주택과 임대 수입, 소액의 금융자산으로 생활하던 어르신은 ‘사망 이후 재산을 특정 공익법인에 기부하고 싶다’고 신탁을 설계했습니다.”
핵심은 ‘치매 대비 기능’이다. 하 팀장은 “치매 등으로 인지 기능이 떨어져 재산이 동결되더라도 병원비와 요양비, 간병비를 신탁에서 자동으로 지급해 달라고 요청받았다”며 “사후에 재산을 기부받을 공익법인을 지급청구 대리인으로 지정하고, 공익법인이 후견인처럼 신탁 계좌에서 비용을 지급하고 노후를 관리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 팀장은 미국의 ‘채리터블 리메인더 트러스트(CRT)’ 개념도 소개했다. 한 번 신탁에 편입된 자산은 기부재산으로 인정돼 양도소득세와 상속세에서 혜택을 받는 제도다. 신탁이 운용되는 동안 발생하는 소득은 기부자가 평생 연금처럼 수령하는 구조다.
“해외에는 ‘노후 생활 안정’과 ‘사회 환원’을 동시에 담는 표준화된 틀이 이미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도 치매 공공신탁·공공후견·민간 신탁을 잇는 생태계를 만들고, 기부와 노후 생활을 함께 설계하는 제도적 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합니다.”
그는 “노후 케어를 실제로 책임지는 공익법인이 신탁의 수탁자로 참여할 경우에는 기부 관련 세제·규제에서 일정 부분 예외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규제 개선이 이뤄져야 공익법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돌봄과 기부 설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2025 아시안 론제비티 포럼' 3부 주제세션1에 참여한 패널들이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강성호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배광열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 조한종 강서50플러스센터장, 하승희 하나리빙트러스트센터 팀장. 이경호 기자
발표 이후에는 네 명의 연사가 함께하는 패널토론이 이어졌다. 공통 질문은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볼 때, 장수사회에서 ‘좋은 금융’이란 무엇인가”였다. 강성호 연구위원은 포용 금융을 강조했다. “노후 리스크는 소득·건강·돌봄이 얽혀 있습니다. 공적·사적 연금과 보험, 주택·자산이 금융 시스템 안에서 한 번에 보이도록 만들고, 취약한 고령자에게는 먼저 다가가는 금융이 필요합니다.”
조한종 센터장은 조부모와 지역사회에 투자하는 금융을 꼽았다. 그는 “돌봄·창업·지역 커뮤니티 활동에 나서는 중장년과 시니어에게 장기적이고 인내심 있는 금융이 필요하다”며 “가족과 지역을 함께 보는 ‘가족경제 금융’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승희 팀장은 재산의 보호와 쓰임을 동시에 설계하는 금융을 제시했다.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면서도 내가 원하는 시점과 방식으로 쓰이게 하는 것. 건강하든 아프든, 젊든 늙든, 내가 설계한 대로 자산이 움직이게 하는 게 좋은 금융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탁은 그걸 가능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배광열 변호사는 신뢰받는 금융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고령자·치매·장애인 등 인지 취약 계층에게 먼저 손 내밀고 사기와 착취를 막아주는 금융이어야 한다”며 “금융기관이 나를 끝까지 책임져준다는 신뢰가 쌓여야 연금도, 신탁도, 기부도 살아 움직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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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지테크, 돌봄을 넘어 연결·자립·참여로 확장된다" [2025 아시안 론제비티 포럼]
최지은 기자
(4) 주제세션2: 론제비티와 기술
초고령사회로의 전환 속에서 ‘에이지테크(Age-Tech)’가 사회혁신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개최된 ‘2025 아시안 론제비티 포럼(ALF)’ 두 번째 주제세션은 ‘론제비티와 기술’을 주제로 진행됐다.
학계ᐧ산업ᐧ정부 관계자 네 명이 연사로 무대에 섰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기술 혁신의 윤리적 방향을, 이예지 엠와이소셜컴퍼니 CIO는 투자 생태계의 변화를 짚었다. 이어 장한솔 보살핌 대표와 신영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과장이 각각 현장과 정책의 관점에서 에이지테크의 미래를 제시했다.
에이지테크, 윤리와 함께 가야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에이지테크,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를 주제로 론제비티 시대의 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었다. 구 교수는 먼저 2000년대 초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이 제시한 ‘NBIC 프레임(Nano·Bio·Info·Cogno)’의 맥락을 되짚었다. 그는 “NBIC 초기에는 나노·바이오·정보·인지과학이 결합해 인간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혁신에 주목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회적·윤리적 문제로 담론의 중심이 이동했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이경호 기자
구 교수는 “최근 기술의 혁신에서도 NBIC 프레임이 주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AI가 인간의 능력을 퇴보시키고 자기결정권을 약화하며, 협력의 가치를 희석시킨다는 비판적 시각들을 제시했다. 이어 알파폴드와 mRNA 백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등을 예로 들며 “혁신은 우리의 일상과 생존 방식을 바꿨지만, 기술과 윤리는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포용적인 론제비티는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윤리와 책임의 속도로 완성된다”며 “에이지테크는 효율성의 언어를 넘어, 성찰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했다.
이예지 엠와이소셜컴퍼니 CIO는 ‘투자자가 본 한국 에이지테크 생태계의 특이점들’에 대해 설명했다. 이 CIO는 “1세대 에이지테크가 ‘돌봄’에 초점을 맞췄다면, 2세대는 ‘연결·자립·참여’로 확장되고 있다”며 “고령자를 보호의 대상이 아닌 사회의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이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에이지테크 시장은 여전히 사회적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충분하지 않은 핵심 고객층의 구매력, 경직된 규제와 공공 시스템, 전통적 투자 잣대 등으로 인해 2세대 에이지테크 유니콘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라고 했다.
이예지 엠와이소셜컴퍼니 CIO. 이경호 기자
이 CIO는 “실험을 비즈니스로 전환하려면 다른 방식의 투자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투자가 단순히 자본의 흐름이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과 산업 혁신을 함께 이끄는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한다”며 “그럴 때 비로소 론제비티 산업이 지속가능한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점의 전환이 부를 ‘돌봄과 일의 미래’
스타트업 ‘보살핌’의 장한솔 대표는 ‘돌봄을 넘어 일자리로, 에이지테크의 미래’를 주제로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일자리 생태계 구축 방안을 발표했다. 보살핌은 요양보호사, 생활지원사 등 노인돌봄 인력을 연결하는 매칭 플랫폼 ‘케어파트너’를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교육을 통한 직무 전환과 취업 연계를 통해 양질의 돌봄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장한솔 보살핌 대표. 이경호 기자
장 대표는 먼저 현 돌봄 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다. 그는 “장기요양 수가 체계로 인해 수익률이 10% 남짓에 불과하고, 인건비 부담이 커 서비스 개선에 재투자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 그는 ‘노인을 돌봄의 대상이 아닌 돌봄의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살핌은 이런 시각에서 고령자 취업 알선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케어파트너 이용자의 평균 연령은 60세 이상이지만 이들은 여전히 일하고 싶어 하고, 사회에 기여하길 원한다는 것이 장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고령층이 일자리를 찾고, 새로운 직무를 배우며 다시 사회로 나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에이지테크의 역할”이라며 “노인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생산적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신영우 고령사회기반과장은 ‘정부의 에이지테크 육성 정책과 민관협력 방향’을 주제로 무대에 섰다. 신 과장은 정부의 초고령화 대응 비전은 ‘개인의 건강한 노후와 사회 전반의 생산성 제고’이며 ▶︎계속 고용과 노후소득 보장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돌봄 ▶︎에이지테크 산업 육성이 3대 추진축이라고 설명했다. 이 중 에이지테크 분야에서는 ▶︎AI 돌봄로봇 ▶︎웨어러블·디지털 의료기기 ▶︎노인성 질환 치료제 ▶︎항노화·재생의료 ▶︎스마트 홈케어 등 5대 핵심 분야를 중심으로 R&D와 투자 확대, 글로벌 협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신영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고령사회기반과장. 이경호 기자
정부는 에이지테크 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민관 협력 생태계 조성에도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29개 기관이 참여한 ‘에이지테크 얼라이언스’를 출범해 제도 혁신, 인프라 확충, 사업 기회 발굴 등을 논의하고 있다. 올해 안에 2차 회의를 개최하고 연구개발과 투자 협력 방안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신 과장은 “정부는 기술과 산업이 고령사회의 부담을 기회로 바꿀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10년 후의 에이지테크
패널토론에서는 네 명의 연사가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에이지테크 영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심화 논의를 이어갔다. 장한솔 대표가 모더레이터를 맡았다.
이예지 엠와이소셜컴퍼니 CIO는 투자자의 시각에서 유망한 에이지테크 영역을 전망했다. 그는 “아직 시장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만큼,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 영역의 시장이 먼저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돌봄과 같이 수요가 뚜렷한 기본 서비스가 우선적으로 투자 받을 것이고, 이어 관련 밸류체인 기업이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CIO는 “투자자로서 가능하면 포용적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에 투자하고 싶다”며 “아시아 각국이 고령화라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2025 아시안 론제비티 포럼' 3부 주제세션2에 참여한 패널들이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이예지 엠와이소셜컴퍼니 CIO, 장한솔 보살핌 대표, 신영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고령사회기반과장. 이경호 기자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포용적인 에이지테크 생태계를 위해 필요한 실천을 묻는 질문에 ‘혁신 이면의 그림자를 성찰할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에이지테크가 진정한 포용성을 갖추려면 시니어 당사자의 목소리와 니즈를 반영한 기술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영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고령사회기반과장은 앞으로 정부가 집중할 분야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신 과장은 “돌봄 중심의 지원을 넘어 주거와 모빌리티 영역으로 에이지테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자체 조사에서 노인 10명 중 8명이 ‘지금 사는 집에 머물고 싶다’고 응답했다”며 “스마트홈 솔루션과 이동 지원 체계를 통해 노인들이 각자의 집에 거주하며, 활동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10년 뒤, 에이지테크가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확산했을 때의 사회상에 대한 각자의 전망도 내놓았다. 이예지 CIO는 “현재는 ‘시니어’라는 단일한 범주로 많은 개인이 획일화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10년 뒤에는 소득, 거주지, 가족 구성 등 다양한 삶의 맥락을 고려한 개인 맞춤형 서비스와 정책에 대한 선택권이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며 “이런 변화를 통해 진정한 보편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에이지테크의 성공은 시니어의 목소리를 얼마나 충실히 반영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대 간 이해의 벽이 높은 현실을 지적하면서 “노인과 청년을 연결해 상호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세대 통합형 에이지테크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신영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과장은 정부의 관점에서 “에이지테크의 궁극적 성공은 노인이 기대수명까지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기술이 노인을 편리하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한솔 대표는 “앞으로 더 구체적인 논의를 통해 에이지테크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