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성장의 그늘에 선 ‘외로운 한국인’

by 정중규

성장의 그늘에 선 ‘외로운 한국인’– OECD 「사회적 연결과 외로움」 보고서가 던지는 경고


Social Connections and Loneliness in OECD Countries

- OECD 국가의 사회적 연결과 외로움 -


*출처 : https://www.oecd.org/en/publications/social-connections-and-loneliness-in-oecd-countries_6df2d6a0-en.html


OECD가 10월 16일 발표한 보고서 「OECD 국가의 사회적 연결과 외로움「Social Connections and Loneliness in OECD Countries」 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OECD 시민들은 대체로 꽤 잘 연결돼 있지만,

10명 중 1명은 의지할 사람이 없고,

20명 중 1명은 ‘상시적 외로움’을 겪는 사회가 되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OECD 시민의 약 90%는 “곤경에 처했을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고 답한다. 꽤 높은 응답률로 보여지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 데이터는 “나머지 10%는 그렇지 못하다”는 응답임을 주목해야 한다. 22개 유럽 OECD국에서는 8%가 “가까운 친구가 한 명도 없다”고, 23개국에서는 6%가 “지난 4주 내내, 혹은 대부분의 시간 외로웠다”고 응답했다. 표면적으로는 ‘서로 잘 연결된 사회’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완전한 고립 상태에 놓인 10% 안팎, 상시적 외로움에 빠진 5~10%의 고위험층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심각한 건 아래 그림에서 보듯 한국의 경우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나 가족이 없다고 보고한 응답자 비율”이 OECD 최저인 80%에 불과, 20% 즉 10명 중 2명은 완전한 고립상태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20여 년 째 OECD 최고 자살률 국가라는 오명과도 연동되는 지표다.



이 보고서는 OECD의 대표적 웰빙 지표 시리즈인 「How’s Life?」를 심화·확장한 첫 국제 비교 연구이자, ‘사회적 연결’을 well-being and beyond GDP 의제의 핵심 토대로 재위치시킨 작업 결과물이다. 이제 행복정책은 더 이상 소득·일자리·서비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이 정책의 한복판으로 들어오고 있다. 외로움 최고위험 국가인 한국의 경우 최우선적으로 살펴보고 즉각적 실행으로 옮겨야할 정책이 아닌가 한다.


1. 외로움은 ‘개인감정’이 아니라 행복국가를 지향하는 정부의 최우선적 정책 의제


보고서는 먼저 사회적 연결이 왜 중요한지를 차분히 짚는다. 사회적 연결이란 단지 얼마나 자주 사람을 만나는지가 아니라, 관계의 빈도와 질, 그리고 그 안에서 느끼는 지지·소속감의 정도를 뜻한다. OECD는 기존 연구를 종합해, 외로움·사회적 고립이 가져오는 비용을 세 갈래로 정리한다.


첫째, 건강 비용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고, 정서적으로 고립돼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조기 사망 위험이 높다. WHO 사회적연결위원회는 매년 최대 87만 명의 사망이 외로움·고립과 관련돼 있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 심혈관 질환, 우울·불안, 인지 기능 저하, 치매 위험도 커진다.


둘째, 경제 비용이다. 외로운 사람일수록 결근과 실직, 조기 퇴사 위험이 높고, 생산성과 임금 수준도 낮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직장 동료·상사와의 관계가 좋을수록 직무만족과 창의성이 올라간다는 결과가 여러 연구에서 반복된다.


셋째, 사회·민주주의 비용이다. 외로움은 불신·혐오·배제의 감정과 결합해, 사회적 양극화와 혐오표현, 낮은 시민 참여를 불러올 수 있다. 실제 청년 남성들의 외로움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사회적 연결의 부재는 흡연·비만에 비견할 만한 새로운 공중보건 위기이며, 동시에 경제·사회 전체에 큰 비용을 떠안긴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청년의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경제적, 정책적, 건강 관련 비용은 총 7조 원, 즉 1인당 2,100만 원에 이른다(Korea Youth Foundation, 2023).


2. ‘다수는 연결돼 있지만, 조금씩 더 외로운 사회’


그렇다면 OECD 시민들의 관계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보고서가 제시하는 그림은 이렇다.


• OECD 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지난 한 주 동안 친구나 가족을 하루에 한 번 이상 만났다고 답한다.


• 10명 중 9명은 “곤경에 처했을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한국은 8명). 겉으로 보기에는 “꽤 잘 연결된 사회”다. 그러나 세부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드러난다.


• 10%는(한국은 20%)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느낀다.


• 유럽 22개국에서 8%는 ‘가까운 친구가 없다’고 말한다.


• 23개국에서 6%는 “지난 4주 동안 대부분 또는 항상 외로웠다”고 응답했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외로움의 ‘저강도 확산’이다. 2018~2022년 사이, “지난 4주 동안 전혀 외롭지 않았다”는 응답 비율은 59%에서 51%로 줄었다. 반대로 ‘가끔’, ‘조금’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늘었다. 극단적인 외로움(“항상 외롭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사회 전체에 은근한 외로움이 넓게 스며들고 있는 양상이다.


동시에, 대면 만남은 줄고 비대면 접촉은 늘고 있다. 유럽 21개국에서는 2006년, 2015년, 2022년을 비교할 때, 친구·가족과의 일상적인 대면 접촉 빈도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반면 전화·문자·메신저·SNS를 통한 연락은 늘어났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사람들은 ‘관계의 양’과 ‘관계의 질’ 모두에서 악화를 경험했고, “한 번도 외롭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비중은 줄었다.


보고서는 특히 남성과 청년층을 새롭게 떠오르는 고위험 집단으로 지목한다. 전통적으로 외로움을 더 많이 호소해 온 쪽은 여성·노년층이었지만, 2018~2022년 사이 외로움·관계 만족도 악화 폭이 가장 컸던 집단이 16~24세 청년, 그중에서도 남성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친구를 직접 만나는 빈도가 줄고, 관계 만족도와 사회적 지지감도 함께 떨어졌다. 일부 청년 남성들의 극우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은 지표다.


또한 실업자, 저소득층, 1인 가구, 고령층이 외로움·고립 위험이 훨씬 높다는 사실도 재확인된다. 실업자와 소득 하위층은 평균에 비해 외로움을 느낄 가능성이 약 2배, 고독감을 호소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1인 가구는 대인관계 불만족 비율이 1.5배, 노인은 친구를 “1년에 한 번도 만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일반 인구의 두 배가 넘는다.


3. 한국은 어디쯤 서 있는가 – 구조적으로 ‘외로움 고위험 국가’


보고서는 국가별 세부 순위를 모두 나열하지는 않지만, OECD의 기존 통계와 국내 자료를 종합해 보면 한국은 외로움 위험요인이 겹겹이 쌓인 나라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여전히 긴 노동시간이다.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 이후 감소 추세에 있지만, 2023년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1,874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여전히 훨씬 길다. 장시간 노동은 가족·친구와의 대면 시간을 줄이고, 퇴근 후에는 몸과 마음이 지쳐 새로운 관계를 맺거나 지역활동에 참여할 여력을 앗아간다.


둘째,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다. 한국은 2024년 이미 “초고령 사회” 문턱을 넘었고, 20명 중 1명 이상이 65세 이상인 나라가 됐다. 여러 연구는 한국을 “OECD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라고 규정한다.배우자를 잃고, 자 녀는 각자 생계를 꾸리며, 농촌·도시 모두에서 공동체가 약해진 상황에서 고령층의 사회적 고립·우울·자살 위험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셋째,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1인 가구다. 2024년 기준 한국의 1인 가구는 1,000만 가구를 넘어 전체 가구의 40% 안팎을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국가데이터처(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1인 가구는 전체의 35.5%로 이미 가장 흔한 가구형태가 되었고, 이 중 상당수가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이다. 1인 가구 자체가 곧 외로움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실업·저소득·질병·이혼 등 취약요인과 겹칠 경우 외로움·고독사의 고위험군이 되기 쉽다.


넷째, 높은 경쟁 압력과 낮은 행복·정신건강 지표다. 입시·취업·주거 압력이 극심한 청년층, 구조조정·조기퇴직에 내몰리는 중장년층, 노후 빈곤과 건강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고령층 모두에서 우울·불안·자살위험이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임은 이미 여러 통계가 확인해온 바다.


OECD 보고서가 제시한 위험요인 목록(실업, 저소득, 1인 가구, 고령, 청년층의 정신건강 악화, 남성의 관계 악화)을 한국 현실에 그대로 겹쳐보면, 한국이 “외로움의 위험 구조가 가장 밀도 높게 중첩된 사회” 중 하나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4. 세계는 ‘외로움’을 정책 의제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보고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흐름을 지적한다. 외로움·사회적 고립에 대한 정책 관심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코로나 이후 가속도가 붙었다는 것이다.


• 영국과 일본은 각각 ‘외로움(고독)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신설했다.


• 일본 정부는 2024년 외로움과 고립을 국가적 우선순위로 규정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특히 히키코모리를 사회에 다시 통합하기 위해 정부는 대국민 인식 제고 캠페인을 전개하고, 히키코모리 지원센터를 설립했으며, 히키코모리 음성 스테이션 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했다 .


• 독일,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스페인은 외로움·사회적 연결을 다루는 국가전략을 채택했다.


• 2025년 5월 세계보건총회(WHA)는 사회적 연결을 글로벌 보건 의제의 핵심 이슈로 규정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 국제적으로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세계보건기구(WHO)의 사회적 연결 위원회 모두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을 공중보건의 우선순위로 규정했다.


OECD는 이를 두고 “사회적 연결의 문제는 개인의 성격이나 취향이 아니라, 정책과 구조가 만들어내는 산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의 대응은 산발적인 사업과 시범사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로움·사회적 연결을 국가 단위의 정책 영역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보다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5. ‘잘 사는 나라’에서 ‘서로 기대어 사는 나라’로


OECD의 이번 보고서는 단지 외로움 통계를 모아놓은 자료가 아니다. 그 배경에는 “국가의 성공을 GDP와 일자리 숫자로만 재지 말고, 사람들이 얼마나 서로에게 기대어 살 수 있는지를 함께 묻자”는 well-being and beyond GDP의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한국은 경제 규모 10위권의 산업국가로 성장했지만, 행복과 신뢰, 정신건강 지표에서는 늘 하위권을 맴돌아 왔다. 세계 최고 자살률과 최저 출생률, 빠른 고령화, 급증하는 1인 가구, 청년층의 불안과 중장년층의 고독사 위험 등 OECD 보고서가 경고하는 위험요인이 가장 짙게 겹쳐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빨리, 더 많이”가 아니라 “더 같이, 덜 외롭게”라는 방향 전환이다.외로움·사회적 연결을 국가 정책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리고, 측정하고, 생애주기 전체에 걸쳐 다층적 대안을 펼치는 일은 단지 복지정책의 확장이 아니라 국가 비전의 조정에 가깝다.


“모두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국가비전으로 설정한 정부라면, 이제 물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을 얼마나 외롭지 않게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글 / 이지훈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연구이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