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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궁핍화, 과잉생산 엘리트의 분노…국가 붕괴 신호

by 정중규

[강양구의 블랙박스] 대중의 궁핍화, 과잉생산 엘리트의 분노… 국가가 무너진다는 신호다


‘역사동역학’ 모델로 미국·서유럽의 정치적 불안정 예측한 터친

한국도 엘리트 지망생 넘치는데 자리 부족해 사생결단 극심해


역사학자가 ‘타임’ 표지를 장식하는 일은 쉽지 않다. 대통령의 핵심 참모가 되거나(아서 슐레진저 주니어), 베스트셀러 저자(윌 듀랜트)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여기 오로지 역사학자의 정체성으로 한때 수퍼스타로 군림한 지식인이 있다. 아널드 토인비(1889~1975). 그는 실제로 1947년 3월 17일 ‘타임’의 표지 모델이었다.


당시 이 잡지는 ‘우리의 문명(Our Civilization)’ 특집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를 감쌌던 문명의 위기를 조명했다. ‘타임’이 보기에 역사학자로서 그 주제를 논평할 적임자가 바로 토인비였다. 심지어, 전쟁 전이던 1936년 2월 28일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대담하고서 “그가 평화를 원한다”고 치명적인 오판을 내린 일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픽=이철원


오늘날 토인비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역사가 ‘도전과 응전’의 법칙을 따르면서 특정한 주기로 순환한다는 그의 역사학은 20세기 중반 이후 학계에서 거센 비판을 받아 ‘사이비 역사학’ 혹은 ‘신비주의 역사 철학’으로 조롱당하며 잊혔다. 그의 비전이었던 ‘역사의 과학’이 가능하다는 주장 역시 역사학계에서 금기가 된 지 오래다.


이 토인비의 비전을 21세기에 끌어내면서 역사의 과학은 가능하고 유용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하는 일군의 지식인이 있다. 그 대표가 피터 터친이다.



토인비가 직관에 의존해 역사를 해석했다면, 터친은 수많은 데이터와 수학적 모델링으로 역사의 법칙을 찾는다. 터친은 이렇게 역사의 과학을 찾는 자신의 연구를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이라 부른다.


애초 과학자로 경력을 시작한 터친은 2010년 2월 4일 세계적 과학 잡지 ‘네이처’에 한 뼘 분량의 짧은 기고에서 역사동역학 모델을 근거로 “미국과 서유럽에서 2020년 전후(±2~3년)로 정치적 불안정이 고점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다수 역사학자나 정치학자는 이 이단아의 주장을 비웃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다음에 2016년 뜬금없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이 실제로 벌어졌다. (감염병 대유행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격랑에 휩싸인 미국 정치의 불안정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대선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가 2021년 1월 6일 미국 의회를 습격한 사건은 그 정점이었다. 터친의 역사동역학이 확실히 점수를 딴 순간이었다.


이 역사동역학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바로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이다. 터친은 역사 속의 수많은 데이터를 수학적 모델링으로 분석한 결과 망조가 든 국가에서 두 가지 명백한 신호를 찾았다. 첫째 신호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 다수가 가난해진다(대중의 궁핍화).


캐나다 한 대학의 졸업식 풍경. 너무 많은 '엘리트 지망자'들이 상위 계층에 존재하는 한정된 지위를 놓고 경쟁하는 상태를 피터 터친은 '엘리트 과잉생산(Elite overproduction)'이라 부른다. /Unsplash


둘째 신호가 중요하다. 대중이 가난하다고 곧바로 그 체제가 무너지진 않는다. 지배 권력인 엘리트 세력이 단단하면 버틸 수 있다. 문제는 ‘엘리트 과잉생산(Elite Overproduction)’이 일어날 때다. 상위 1%를 꿈꾸는 엘리트 지망생은 넘쳐나는데, 사회가 줄 수 있는 자리는 한정돼 있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이들은 권력을 호시탐탐 노리는 ‘대항 엘리트(Counter-elites)’가 되어 가난한 대중의 분노에 불을 지른다. 그들은 가난한 대중의 불만을 부추기고 (설사 몽상일지라도) 그럴듯한 해법으로 유혹한다. 역사 속에서 급격한 권력 교체, 즉 국가가 무너지기 전에 항상 있었던 일이다.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은 레닌·트로츠키·스탈린이 그랬고, 패전과 대공황의 혼란을 파고든 히틀러가 그랬다. 1990년대 초에는 소련의 무모한 개혁 개방 정책이 낳은 재정 위기를 기회로 ‘민주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옐친이 있었다. 트럼프에게 붙어 고향의 가난한 이웃을 선동하며 권력을 쥔, ‘힐빌리’ 출신 부통령 J D 밴스도 좋은 사례다.


이런 시도로 권력을 잡은 대항 엘리트들의 식탁에는 고급 와인과 캐비아 안주가 올랐다. 반면, 역사 속에서 그렇게 국가 권력의 급격한 해체, 즉 국가 붕괴를 겪은 대중의 삶은 기대와 달리 이전보다 훨씬 비참해지곤 했다. 역사동역학의 분석 결과를 소개하는 터친의 어조가 비관적인 이유다.


한국은 어떤가? 1970~80년대 군인·관료, 1990년대 관료·법조 등 한국도 과거에는 (그 공을 차치하고) 엘리트 세력의 지배가 확고했다. 그들이 기업 엘리트와 함께 만든 결과가 바로 ‘한강의 기적’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 군인, 관료, 법조 세력이 약해지고, 노무현 정부 때부터 학생운동과 시민사회에서 성장한 대항 엘리트가 부상했다.


역사동역학 관점에서는, 지난 10년간 두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파면당한 한국 정치의 극심한 불안정성 역시 엘리트 내부의 사생결단식 경합으로 볼 수 있다. 이 경합에서 소외된 아래 세대 남성과 여성도 각자 다른 사정으로 임계점을 향해 끓어오르고 있다. 다들 국운 상승 시간이라는데 나는 왜 불안한가? 토인비는 이렇게 말했다. “문명은 살해당하지 않는다. 자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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