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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거리, 사자의 도시

프랑스 벨포르에서 보낸, 정지된 듯한 일요일 오후

by 뮌헨 가얏고
조용한 거리, 사자의 도시
낯선 도시, 뜨거운 햇살.
프랑스 벨포르에서 보낸, 정지된 듯한 일요일 오후.


약 477km를 달려 벨포르에 도착한 건 오후 3시 반.
호텔은 마음에 들었다. 프랑스 호텔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스위트룸이 아니어도 침대 두세 개를 갖춘 방이 많다는 것. 가족 여행객에겐 이보다 편한 게 없다. (이탈리아는 이런 점이 늘 아쉽다.)

다만, 이 호텔의 아쉬운 점은 에어컨.
서향으로 난 창 덕분에 오후 햇살이 방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왔다. 열기가 꽤나 심했다. 유명 브랜드 호텔이니 당연히 시원할 줄 알고 긴 잠옷을 챙겨 왔는데, 후회가 밀려온다.


이번 여행은 여유롭게 쉬는 게 목표다. 그래서 짐도 여유롭게 나눴다.

큰 캐리는 차에 두고, 벨포르처럼 짧게 머무는 도시는 작은 트렁크만 들고나간다.
무거운 짐을 꺼내지 않아도 되니 훨씬 간편하다. 그리고 하룻밤용 소형 트렁크 하나.



벨포르 사자상

짐을 풀고, 시내 구경을 나섰다.
차로 10~15분 거리였지만, 햇살이 너무 뜨거워 그냥 차를 타기로 했다.

벨포르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라 공영주차장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전기차 충전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날 이후, 충전하는 건 쉽지 않았다.)

주차하고 나니, 산 중턱에 거대한 사자상이 보였다.
차를 잘 세운 것 같다.


벨포르의 이 사자상은 도시의 상징이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만든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Frédéric Auguste Bartholdi)가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끝까지 저항한 벨포르 시민의 정신을 기리며 제작한 작품이다.
요새 아래, 바위 위에 누운 거대한 사자는 도시를 지키는 수호자처럼 굳건했다.

조용한 시내, 닫힌 상점들

거리에 들어섰지만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공기는 적막했다.

일요일이라서일까, 아니면
남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씨에스타’ 때문일까.

하지만 그 조용함은 여유라기보다 적막에 가까웠다.

술인지 약인지 모를 취기에 비틀거리는 남성도 눈에 띄었다.
도시는 후덥지근했고, 조금은 삭막했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서 마주한 낯설고 생경한 풍경이었다.

성당에서의 짧은 쉼

플라스 다르므(Place d'Armes)광장 쪽으로 걸었다.

광장을 중심으로, 생 크리스토프 대성당(Cathédrale Saint-Christophe de Belfort)과 벨포르 시청(Hôtel de Ville de Belfort), 그리고 그 주변엔 몇몇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간, 햇볕은 아직도 뜨거웠고, 시원한 그늘이 절실했다.


뜨거운 광장을 가로질러 생 크리스토프 대성당을 들어섰다. 시원한 실내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일요일 미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중 한 신부님은 인도 출신으로 보였다. 역시나 인도 동부의 퐁디세리(Pondicherry)에서 오셨다고 했다. 퐁디세리는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기에, 가톨릭이 널리 퍼져있다고 남편이 설명해 줬다.

프랑스에서 아시아 신부님을 만나니 괜히 반가웠다.


시원해서 오래 있고 싶었지만, 미사 준비로 바쁜 듯하여 바로 나왔다. 광장을 벗어나 다른 블록을 갔다

음악 소리를 따라

성당에서 나와 다시 거리를 걷는데, 멀리서 경쾌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나는 걸까?

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공연장 같은 건물이 보였다. 콘서트 상황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시니어들이 짝을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에어컨도 없는 듯했지만, 모두들 활짝 웃으며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우아한 왈츠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요란한 춤도 아니었다.
느긋하고 자연스러운 리듬. 일상처럼 춤을 추는 사람들.
도시 전체가 적막하던 오후에,
그 순간만큼은 생기가 돌았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게 바로 여행에서 마주치는 ‘예상 밖의 기쁨’ 아닐까!


벨포르에서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장 카페, 독일식 메뉴, 콜라 맛 맥주,
그리고 조금은 낯선 저녁의 풍경은 다음 이야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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