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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포르, 요새 도시에서의 하루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충분히 즐긴 벨포르

by 뮌헨 가얏고

저녁은 호텔에서

결국 저녁은 호텔 내 레스토랑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호텔 주차장에는 전기차 충전소가 있었지만, 충전을 하려면 50유로 보증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다행히 일반 주차는 무료였다.

낮처럼 환한 밤

밤 8시, 시계는 분명 저녁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한낮처럼 밝았다.
해가 길게 머무는 프랑스의 여름이라 그런지, 마치 오후 3시쯤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어둠이 찾아오니, 하루가 참 길게 느껴진다.

우리는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낮 동안 한산했던 레스토랑은 어느새 사람들로 적당히 북적이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 모양이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온 걸까, 궁금해졌다.

이렇게 적당히 북적이는 분위기 속에서 느껴지는 축제 같은 기분이 좋다.
그래서 나는 유럽의 여름밤, 야외 식당이 참 다.

10:33pm

맥주 한 잔의 여유

나는 시내에서 먹은 크로크 무슈 덕분에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뮌헨은 맥주의 본고장답게 독일 맥주 외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벨기에 맥주인 호가든은 오랜만에 만나는 맛이었다.

좋아하는 호가든을 이곳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프랑스의 맛

남편이 주문한 **스테이크 타르타르(Steak tartare)**는 역시 프랑스 답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훌륭한 맛이었다. 노른자가 톡 올려진 제대로 된 스테이크 타르타르와 바삭한 프렌치프라이의 조화도 일품이었다.(왠지 이번 여행은 프렌치프라이와 함께하는 먹방이 될 거 같다) 딸아이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타코를 즐겼다. 미식 여행을 사랑하는 우리 가족에게 이 식사는 벨포르에서 얻었던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주는 달콤한 위안이 되어주었다.

작지만 기분 좋은 것들

에어컨 바람이 시원찮았던 것만 제외하면 호텔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특히 홈메이드로 보이는 작은 잼 한 병을 선물로 받았을 때는 소소한 감동이 밀려왔고, 미니바까지 무료인 점도 좋았다. 게다가 별도의 주차비를 받지 않아 더욱 만족스러웠다. 원래 웰컴 드링크는 한 잔만 주는 곳인데, 미안하다며 무려 세 잔이나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벨포르에서 느꼈던 실망감과 덥고 아쉬웠던 방의 기억은 이런 작고 소중한 기쁨들로 눈 녹듯 사라졌다. 예상치 못한 순간, 여행 중 만나는 사소한 것들이 주는 행복은 언제나 기대 이상으로 크게 다가온다.


아침과 요새

아침 일찍 서둘러 근처 베이커리 카페로 향했다. 카푸치노는 뻬고 따뜻한 크루아상만으로 허기를 달랬다. 개인적으로 에스프레소에 물을 넣고 우유 거품만 올리는 프랑스식 카푸치노는 영 내 취향이 아니다. 다음 목적지인 뮬랭으로 떠나기 전, 벨포르의 핵심인 요새를 둘러보기로 했다.


벨포르(Belfort)는 프랑스 동부, 알자스와 프랑슈콩테 사이의 작은 도시다. 이곳의 명물은 단연 벨포르 성채(Citadelle de Belfort)와 그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바르톨디의 사자상(Lion de Belfort)이다. 독일과의 국경에 위치해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던 만큼, 벨포르의 정체성은 대부분 요새와 관련된 역사에서 비롯된다. 군사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곳이지만, 뮬랭처럼 다채로운 예술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도시는 아니다.


미완의 관람

아쉽게도 벨포르 요새 입구는 한창 공사 중이었다. 이곳이 유일한 입구인지, 요새 주변을 몇 번이고 돌아봤지만 결국 다른 진입로는 찾을 수 없었다.

다시 길 위에서

아름다운 요새의 도시’라는 별명과는 달리, 벨포르에는 거대한 요새와 사자상 외에는 딱히 마음에 남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곳은 한 번이면 족하다"는 생각을 품고 조용히 벨포르를 떠난다.


다음 여행지: 물랭(Moulins)

다음 목적지는 프랑스 중부의 조용한 도시, 물랭이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리와 건물들. 짧은 하루 머무는 동안에도 은근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이다. 많이 돌아보진 못했지만, 도시 자체는 충분히 아름답다. 그 짧은 여정을 다음 편에서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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