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나, 우리에겐 참새의 방앗간 같은 곳
2021년 6월 30일 목요일 맑음
아침 8시 반의 뮌헨 기온은 13도.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푹푹 찌는 더위였는데 오후에는 하늘이 시꺼메지고 거센 비바람이 치더니 오늘 아침은 온도가 뚝 떨어졌다. 독일의 변덕스러운 여름 날씨를 또 깜빡했다. 맑은 날씨만 보고 옷을 얇게 입고 나왔는데 완전 초가을 날씨라 춥다. 어제 더웠다고 오늘도 더울 거라 보장할 수 없는 게 여기 날씨인데, 30도가 웃도는 더운 날씨에 짐을 싸는 바람에 착각하고 옷을 얇게 입고 나왔다. 결국 다시 집으로 가서 얇은 재킷을 가지고 나와야만 했다.
9시 반에 예약한 코로나 테스트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드디어 베로나로 출발. 어제도 늦게까지 세탁기 돌리고 마른빨래 속에서 몇몇 옷가지를 챙겨 짐가방에 넣었다. 코로나 기간 부쩍 커버린 아이들. 봉쇄로 쇼핑도 제대로 못 해서 맞는 옷이 별로 없다. 학교에서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그 옷을 빨아 말린 후 다시 여행 가방에 챙겨 넣어야 했다. 며칠 전부터는 장도 안 보고 냉장고 속 재료로 대충 끼니를 챙기면서 냉장고 비우기 바빴다. 빨래도 색상별로 분류해서 하다 보니 시간이 꽤 많이 걸려 자정이 넘었다. 종업식 하는 날에 여행을 떠나다 보니, 우리의 장거리 여행의 시작은 마치 세탁기 돌리기 등 집안 뒷정리부터 시작인 거 같다. 차에 몸을 싣고 나니 그제야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뮌헨은 쌀쌀했지만 비가 오진 않았는데, 알프스 근방의 오스트리아 국경을 통과하자 기온이 11도에 장대비가 내렸다. 날씨가 추우니 아픈 오른팔이 더 아프기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아팠는데 좀처럼 나을 생각을 안 한다. 진작에 병원에 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11도에 장대비가 내리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국경을 넘는 순간, 기온이 19도로 화창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병풍처럼 펼쳐진 돌로미티의 기암절벽과 녹슨 도로 분리대가 나타나는 순간, 마치 우리가 이탈리아에 온 것을 환영하는 듯하여 반가웠다. 기온도 점점 더 오르기 시작한다. 10년 전 처음 독일에서 자동차로 이탈리아를 넘어왔을 때 참 멀게 느껴졌었다. 여기가 독일인지 오스트리아인지 비슷비슷하여 구별도 안 됐었는데, 녹슨 도로 분리대가 나타나자 이제 이탈리아로 넘어왔다고 했다. 드디어 목적지구나 하는 기쁨과 함께 내겐 이 녹슨 철근이 이탈리아의 상징이 되었다. 이 녹슨 분리대는 10년이 넘어도 여전한 걸 보면, 자체 색상이 이런 건지 아니면 진짜 녹이 슨 건지는 잘 모르겠다.
베로나는 우리에겐 참새의 방앗간 같은 곳.
뮌헨에서 차로 5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베로나. 베로나부터 이탈리아에 온 느낌이 든다. 돌로미티를 넘어 트렌토까지는 독일처럼 여름 날씨도 쌀쌀한 편이고, 예전에 오스트리아의 점령을 받은 곳이라 그런지 오스트리아 같은 느낌이 든다. 베로나에 접어들어야 뜨거운 햇살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유로운 느낌의 이탈리아 분위기가 풍긴다.
뮌헨 사람들은 이탈리아로 휴가를 자주 온다. 거리도 가깝고 이탈리아의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뜨거운 태양이 그립기 때문이다. 더위를 피해서가 아니라 뜨거운 햇살을 즐기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여름휴가를 피서라는 말을 쓰지만, 독일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파리 등 서유럽의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더위를 찾아 여행을 가는 게 아닐까 싶다.
베로나는 줄리엣의 도시로 유명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곳이고,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Letters to Juliet)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또 AD 1세기 초에 지어진 원형극장인 아레나에서 매년 여름마다 열리는 오페라 축제도 유명하다. 도심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유서 깊은 도시이며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의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서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꼭 들른다. 도착 첫날의 저녁 식사를 위해 잊지 않고 예약을 했다.
작년(2020년) 2월에 피렌체에서 뮌헨으로 돌아가는 길에 점심을 먹으려고 이곳을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 깜빡하고 예약을 안 했더니 자리가 없어서 돌아서야 했었다. 그때가 일요일에다가 부활절 연휴여서 베로나의 레스토랑이 모두 꽉 찼다. 겨우 자리가 있는 파스타 집을 발견했는데, 거기서 먹은 파스타도 정말 맛있었다. 베로나는 어느 레스토랑도 다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뮌헨보다도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저녁 타임은 7시부터 시작이 되기에 호텔 근처의 카페에서 아페리티보(식전주, Aperitivo)로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아페리티보는 식전에 마시는 술인데, 와인 한 잔을 시켜도 다양한 안주(간식)가 나온다. 경우에 따라선 간단한 뷔페가 제공되는 곳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엔 이것만 먹어도 따로 저녁을 먹을 필요가 없으나 스테이크를 먹어야 하기에 아이들에게 모두 양보했다. 아페리티보는 밀라노를 비롯한 이탈리아 북부에 흔하다고 하지만, 베로나에서 가장 많이 봤기 때문에 내겐 베로나= 아페리티보의 공식이 성립되어있다. 나오는 음식도 하나같이 다 맛있다. 내가 베로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11년의 여름에 베로나를 처음 왔었고 같은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었다. 맛도 맛이지만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하얀 파라솔 아래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앉아서 웃고 떠들며 자기들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전형적인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야외석 분위기이다. 테이블이 붙어 있다 보니 마치 우리가 일행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분위기는 낯선 곳에 왔지만 마치 즐거운 파티에 온 기분이 들었고 옆 테이블 사람들의 웃음꽃이 나에게까지 전달이 되어 덩달아 행복해졌다. 그 첫인상 덕분에 베로나에 대한 기억이 좋다.
오늘도 우린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야외에 앉았다. 햇살은 뜨겁지만, 그늘에만 들어가면 선선한 게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코로나 때문에 예전처럼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처음 왔을 때 느꼈던 행복감이 되살아났다. 이 분위기가 좋아서 우린 앞으로도 이 근처를 지나갈 땐 꼭 베로나에 들를 것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갈 수 있나!! 베로나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참새의 방앗간 같은 도시가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