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2021
Finally we're here to watch Aida
Opera Festival 2021 @ Arena di Verona.
2021년 7월 1일 저녁 9시.
드디어 그 유명한 베로나 오페라 축제에서 '아이다'를 봤다.
베로나 오페라 축제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여름 음악 축제이다. 베르디 탄생 100주년인 1913년부터 매년 6월 말에서 8월 말까지 개최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인 베르디와 푸치니의 작품이 주로 공연되고 아레나 원형경기장에서 개최된다는 것이 이색적이다.
처음 베로나 여행을 왔던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올 때마다 오페라를 관람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을 했다.
큰 마음먹고 표를 사버릴까? 하다가도
'비싼 표 끊었는데 야외공연장이라 비가 오면 어쩌지?'
'성수기라 그런가? 웬 호텔비가 이렇게 비싸지?'
'비싼 데도 방이 없네'
'호텔의 베이비 시터 비용까지!
적어도 7~8개월 전에는 예약해야 했는데, 적지 않은 비용과 날씨 때문에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다. 고민만 하다가 10년이 흘렀다.
10년째 버킷리스트에 자리 잡고 있다가 드디어 달성한 거다.
이번 7월 여행을 봄부터 계획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은 코로나로 봉쇄된 상태였고 언제 풀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호텔 가격이 많이 할인되어 있었다. 미리 예약해두었다가 봉쇄가 풀리지 않으면 취소하기로 했다. 봉쇄 때문에 취소하는 경우엔 어떤 불이익을 당하지도 않았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봉쇄가 풀릴 조짐이 보이자 호텔 가격이 갑자기 오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린 미리 예약을 해둔 덕분에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티켓 가격은 요일과 좌석 배치에 따라 29유로부터 300유로까지 다양하게 있었는데, 싼 게 비지떡이라 믿는 남편 때문에 티켓 가격이 200유로라고만 생각했다. 블로그에 올려진 여러 후기를 통해서 29유로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됐다. 섹터만 정해져 있고 좌석이 정해져 있진 않았지만, 운이 좋으면 무대 옆쪽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200유로 넘는 좌석은 드레스 코드가 정장이라고 했다. 블로거가 올린 사진을 보니 앞사람한테 가려서 무대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워낙에 공연장이 크다 보니 로얄석이라 해도 무대가 잘 안 보인다는 후기도 있었다.
굳이 비싼 좌석이 아녀도 가격 대비 싸면서 좋은 좌석이 있다. 이번엔 싼 좌석 표를 사서 극장 상황이나 분위기를 먼저 보자고 했다. 다다익선이라고 난 비싼 표 사서 공연을 한 번 보는 것보다 싼 좌석에 앉더라도 많은 공연을 보는 게 더 좋다.
여전희 코로나로 여행이 자유롭지 못해서 그런지, 1달 전이었는데도 다양한 가격대의 표가 많이 남아 있었다. 결국 우리가 예약한 좌석은 2 섹터 푸치니로 59유로였다.
오페라 '아이다'하면 '개선행진곡' 밖엔 몰랐지만,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개막공연(1913년)으로 상연되었기에 여기서 꼭 보고 싶었다. 원하는 날짜에 아이다를 상연해서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오페라를 봤을 때가 2015년 10월 비엔나에서였다 오페라에 관심이 많았던 건 아녔지만, 영화 미션 임파서블 5 때문에 보게 됐다.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도 유명한 곳인데 톰 크루즈의 멋진 액션신이 나온다. 호텔 컨시어지를 통해 오페라 '돈 지오반니' 티켓을 아주 비싸게 구입해서 갔었다. 돈 지오반니는 우리 같은 초보에겐 어렵고 지루했다.
이후 한동안 오페라는 역시 지루한 거라는 편견을 갖게 됐다. 2020년 1월 프라하에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와과 '투란도트'를 봤는데 좋았다. 특히 ‘피가로의 결혼’은 음악도 귀에 쏙쏙 들어왔고 오페라 내용도 재미있어서 초보인 우리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그 이후부터 오페라가 좋아졌다. 작년엔 뮌헨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도 봤었다. 나 같은 초보자에겐 모차르트의 작품이나 친숙한 음악이 나오는 오페라를 먼저 봐야 한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
이젠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가는 게 참 좋다. 유럽에서의 오페라 관람은 마치 멋진 파티장에 간 기분이 든다. 턱시도를 입은 남자,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자, 자기만의 스타일로 한껏 멋을 부린 사람들을 보는 것도 기분이 좋다. 나도 덩달아 신경 써서 차려입고 가는 편이다. 드레스코드랑 상관없이 어디까지나 내 마음이 그러고 싶어서이다. 물론 그냥 단정한 복장으로 오는 사람들도 많다.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와 노래하는 가수, 합창단 그리고 무용수들을 보는 재미도 좋다. 공연 시작 전과 쉬는 시간에 마시는 샴페인 한 잔은 절대 빠트릴 수 없다. 이 모든 게 마치 파티에 온 기분이라 오페라 공연은 표를 예매한 그 순간부터 설렌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엔 샴페인은 즐기지 못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로얄석도 좌석이 제법 많이 비어있었고 드레스코드도 없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턱시도랑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돌계단 좌석은 딱히 드레스 코드가 없었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배낭 메고 온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여행객인 거 같았다. 그런가 하면 어린아이까지 온 가족이 다 함께 제대로 차려입고 온 가족도 종종 보였다.
공연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컸다. 그리스 아테네의 에피다우루스(Epidavros)나 폼페이에서 본 원형극장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커서 깜짝 놀랐다. 거기는 원형극장이었다면 여긴 엄청 넓은 스타디움이었다. 음향은 좋았지만 실내에서 들을 때처럼 압도될 정도의 웅장함은 부족했다. 게다가 음향이 좋은 만큼 멀리 떨어진 객석에서 속삭이는 소리도 잘 들렸다. 가끔씩 갈매기 울음소리도 들렸다. 다소 어수선한 점도 있었지만 공연 관람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녔다.
아이다 무대 세팅은 늘 화려하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넓은 야외무대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좌석에서 무대가 한눈에 들어와서 좋긴 했는데, 멀어서 망원경이 있었으면 좋을 뻔했다. 망원경을 하나 장만해야겠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자막이 나오는 스크린이 무대 양옆에만 설치되어 있어서 보기 불편했다. 우리가 앉은 정면에도 하나 있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우리 좌석은 정면에 무대가 있어서 그런지 돌바닥이라는 것 외엔 꼭 로얄석 같았다. 돌바닥이긴 하지만 계단식이라 앞사람 때문에 무대가 가려질 염려는 없었다. 돌바닥이라 엉덩이가 아팠다는 후기도 있었으나 난 괜찮았다. 어떤 돌바닥은 표면이 심하게 울퉁불퉁했지만, 우리가 앉은자리는 편평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두터운 방석이나 베개를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다. 방석을 임대하는 직원이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우린 그냥 돌바닥에 앉았다. 오히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돌바닥은 따뜻하니까 좋았다.
계단을 오르내릴 땐 좀 위험했다. 하이힐을 신고 울퉁불퉁한 바닥을 걸으려고 하니 중심잡기가 힘들었다. 다음에 올 땐 편안한 신발을 신고 와야겠다. 유럽에 살다 보면 오래되어 불편해진 것에 익숙해진다. 고르지 않은 바닥과 깨진 계단에서 2천 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져서 오히려 경이롭기까지 하다.
1부가 끝나고 30분 휴식 시간이 되었다. 하이힐을 신고 돌계단을 다니는 게 쉽지 않아서 꼼짝하기 싫었지만, 화장실은 다녀와야 할 거 같았다. 건물 밖을 나가야 화장실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좋았다. 다시 극장 안으로 들어오려는데 ‘하나, 둘, 셋’하는 반가운 한국말이 들렸다. 소리 따라 바라보니 15명 남짓되는 단체 한국인이 왕인지 스핑크스인지 분장을 한 남자 배우를 둘러싸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국 남자 배우의 지인들 같았다. 한국 배우를 보니 나도 반가워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자리로 돌아왔다. 한국 배우도 지인들이 단체로 왔으니(팬이었을 수도 있겠다} 기분이 좋았을 거고 지인들도 무척 자랑스러웠을 거 같았다.
작은 생수병과 숄과 카디건을 가지고 갔다. 작은 샴페인 병도 가져갈까 하다 두고 갔는데, 입구에서 소지품 검사를 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정체불명의 음료를 검사하는 거 같았다. 우리 생수병은 통과가 되었는데 개인 물병은 반입금지인 거 같았다. 오페라 관람 시 무척 더웠다는 후기도 읽었지만, 7월 초라 그런지 해가 지니 쌀쌀해졌다. 카디건과 숄이 없었다면 추위에 떨 뻔했다.
비가 오지 않아서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저쪽 하늘에서는 번갯불이 번쩍였다. 다행히 천둥소리는 들리지 않아서 공연에 방해가 되진 않았고 비도 안 왔다.
공연은 자정이 다 되어서 끝났다. 보통 아이다는 4시간이 걸린다고 했는데 빨리 끝난 거 같기도 했다. 호텔이 아레나 근처여서 가는 길에 와인 한잔을 마시며 밤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는데, 사람이 별로 없다. 방역지침 때문인가? 한번 찾아보자 말하기가 무색하게 남편은 종종걸음으로 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이럴 땐 술 좋아하는 남편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이해도 됐다. 아이들이 커서 베이비시터가 필요 없긴 해도 걱정됐을 거다. 게다가 내일 아침엔 피렌체로 가야 하니 일찍 잠자리에 들고 싶기도 했을 거다.
그동안 오페라 관람만 빼고 베로나에서 할 건 다 해봤다. 줄리엣 동상과 사진도 여러 번 찍었고 베로나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산 피에트로 언덕(Ponte Pietra)도 여러 번 올라갔었다. 이번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로나에서 오페라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고 나의 버킷리스트를 하나 달성해서 만족스러웠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또 보러 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