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창 고성 & 투루판 박물관
벽돌로 쌓은 담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아귀가 잘 맞지 않는 철문도 그리 튼튼해 보이지는 않았다. 번성했던 시절을 기억하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였을까. 가오창 고성(高昌古城)은 그렇게 허술한 담과 철문 뒤에 꼭꼭 숨어있었다. 여전히 흐르고 있는 지금의 시간과는 철저히 단절된 채.
아무렇게나 주물러 놓은 거대한 밀가루 반죽 같은 그곳에서 그나마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을 만난 건 1시간 정도 고성 터를 돌아 본 뒤였다. 대불사 터. 현장이 천축으로 가던 중 가오창 국왕의 초대를 받아 한 달간 머물며 법회를 열었던 곳이다. 고성 입구에도 이를 강조하는 문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건물들 중 설법당과 불탑은 지나칠 정도로 보존상태가 좋았다. 관광객을 위한 배려라면...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800년을 이어온 고대 왕국. 하지만 당나라와 몽골의 연이은 공격에 폐허가 되어버린 땅. 생명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땅 위에서 나는 현장을 떠올렸다. 천축국에서 유학을 마친 현장이 당나라도 돌아오는 길에 폐허가 되어버린 고창국을 보았다면, 그것도 자신의 고국인 당나라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이 황폐한 왕국을 보았다면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오창 왕국의 패망소식을 접한 현장은 귀국길에 이곳을 들르지 않고 바로 당나라로 돌아갔다고 한다.
가오창 고성에서 바라보는 훠예산(火焰山)의 모습이 참 매력적이다. 훠예산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반 산과는 그 모습이 많이 다르다. 원뿔형의 우뚝한 모습이 아니라 산맥처럼 길에 늘어진 형태이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붉은 병풍을 길게 펼쳐놓은 것 같기도 하다. 소설 <서유기>에도 등장하는 훠예산은 산 전체를 휘감은 치마 주름 같은 굴곡이 이글거리는 불길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모습만이 아니다. 한여름, 훠예산의 지표온도는 평균 60도를 넘고, 50여 년 전 투루판 기온이 48도를 기록했을 때는 그 온도가 무려 82도까지 올랐다고 한다. 정말이지 칠선공주의 파초선을 가지지 않고서는 오를 수 없는 산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투루판 박물관은 ‘미라’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미라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남자미라, 여자미라, 부부미라, 아이미라... 심지어 동물미라까지. 한데 누군가 그랬다.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여기는 땅만 파도 미라가 나올 기후조건을 가진 곳’이라고. 난생 처음, 그것도 십여 기에 달하는 미라를 한 자리에서 본 내겐 그 말은 굉장히 낯설었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했다. 37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내 이마에는 풀잎 위에 내려앉은 이슬만큼의 땀방울만이 맺혔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