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질 천불동
키질 천불동은 중국 최초의 석굴사원이다. 3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인도 승려 구마라습이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한자로 번역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구마라습의 노력으로 불교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에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키질 천불동의 형편도 베제클리크 석굴사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벽화들이 벽채 뜯겨나갔고 불상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된 상태였다. 남아있는 벽화들의 훼손 정도도 심각했다. 눈 부위를 도려내거나, 금박 입힌 곳만 칼로 긁어낸 벽화들은 흉물스러울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보니 230여 개의 석굴 중 우리가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고작 6곳에 불과했다.
그나마 조선족 화가이자 항일투사였던 한낙연 선생에 대해 알게 된 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중국 연변에서 태어나 상하이 미술전문학교와 파리 루브르예술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한 한낙연은 유럽에서 활동 중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으로 돌아와 항일투쟁에 투신한 인물이다. 석굴벽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키질 천불동의 발굴과 복원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선방으로 사용됐던 석굴 10호에는 아직도 그의 초상사진과 글이 남아있다.
키질 천불동에서의 감동은.... 글쎄.... 감동보다는 아쉬움이 컸기에 뭐라 할 말이 없다. 문화재의 가치는 그 보존에 있다는 말처럼 지켜내지 못한 문화재와 유적은 그냥 그곳에 있는 그 어떤 것 이외에 다른 의미를 지니긴 힘들 테니.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흩어진 낙엽처럼 드문드문 주춧돌만 남아있는 우리 땅의 많은 절터를 보았을 때 그랬던 것처럼, 버려지듯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던 쿠처 고성의 초라한 모습을 보았을 때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