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운문사
오늘 아침에 영화사에서 전화가 왔다. 몇몇 극장들이 벌써 영화를 내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영화를 개봉한 지 이제 일주일. 참담한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10년 전, 내가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였을 때, 언론은 흥행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천재감독이라며 한껏 치켜세웠었다. 하지만 그 뒤, 두 번의 연이은 흥행 실패로 나는 조금씩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야심차게 준비한 네 번째 영화, 그 영화가 지금 고전을 면치 못하는 있는 것이다. 이마저 실패한다면, 정말 영화계를 떠나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징~ 징~'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흔들렸다. 새벽 3시.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다. '박현우.'
─ 뭐해. 또 서재에서 청승 떨고 있는 거야?
─ 그렇지, 뭐.
─ 지금 너희 아파트 정문 앞에 와있다. 내려와. 우리 바람이나 쐬러가자.
─ 지금? 어디로?
─ 청도, 운문사.
─ 운문사? 거긴 왜?
─ 혹시 아냐, 그곳에 네가 원하는 답이 있을지?
─ 뭐야, 운문사에 소원 들어주는 영험한 부처님이라도 계신거야?
─ 영험한 부처님? 음… 그럴지도 모르지. 하여튼 빨리 내려와.
현우는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얇은 점퍼 하나만 챙겨 집을 나섰다. 며칠 사이 새벽공기가 많이 차가워져 있었다. 나는 들고 나온 점퍼를 주섬주섬 걸치며 아파트 정문으로 향했다. 그곳에 현우의 차가 있었다.
─ 참 오랜만지?
현우는 차에 오르는 나를 밝은 표정으로 맞으며 그렇게 물었다.
─ 응?
─ 우리 둘이 여행 가는 거말이야.
─ 응.
그러고 보니 현우와는 참 여행을 많이 다녔었다. 녀석을 알게 된 중학교 시절부터.
─ 눈 좀 붙여라. 며칠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잤을 텐데.
현우가 차에 시동을 걸며 말했다. 정말 그랬다. 나는 며칠 째 잠다운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의자에 기대 눈을 감으니,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왔다. '고맙다' 나는 잠결에 현우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곤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떴을 땐 이미 날이 훤히 밝아있었다. 잠에 취한 나는 짧은 순간 여기가 어딘가 어리둥절했다.
─ 이제 깼냐?
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나는 우리가 여행을 떠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정신없이 곯아 떨어졌던 모양이다.
─ 도착했으면 깨우지 않고……
─ 너무 곤히 자서. 내리자.
현우와 나는 주차장을 벗어나 곧게 뻗은 솔숲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길은 차와 사람을 위해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현우가 소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 여기, 이 소나무가 상처 난 소나무야.
─ 상처 난 소나무?
나는 현우가 가리키는 소나무를 쳐다봤다. 소나무의 허리 밑동이 시멘트로 흉물스럽게 메워져 있었다.
─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들이 연료로 쓸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이렇게 했대. 이렇게 깊은 상처를 입고도 80년 넘게 살아왔다는 게 믿기니?
현우가 소나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 상처 난 소나무, 내게 이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 응? 어.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냐.
─ 전부는 아니라고? 아니 뭐야, 그럼 정말 영험한 부처님이라도 있다는 얘기야?
현우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앞서 걸었다. 우리는 솔숲 산책로와 예쁜 돌담길을 지나 운문사로 들어섰다. 범종루 우측에 운문사의 명물이라는 처진 소나무가 보였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한번 본 적이 있는 소나무였다. 나는 방금 전에 본 상처 난 소나무가 생각나 처진 소나무 앞으로 바짝 다가가 밑동부터 살폈다. 다행이 이 소나무에는 상처가 없었다. 그때 등 뒤에서 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저기 보이는 건물이 대웅보전이야. 운문사의 중심 전각이지. 그런데 그리 예스러워 보이지 않지? 1994년 새로 지은 건물이라 그래. 이리 와봐. 재미있는 거 보여줄게.
현우의 손에 이끌려 간 곳에 또 하나의 대웅보전이 있었다.
─ 어? 뭐야. 대웅보전이 또 있잖아?
의아해하는 나를 바라보는 현우의 눈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뭔가를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 신기하지? 이 건물이 원래 운문사의 대웅보전이야. 방금 본 대웅보전을 새로 짓기 전까지. 지금은 비로전이라고 부르지.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이거든.
─ 비로전. 근데, 왜 아직도 대웅보전이란 현판을 달고 있는 거야?
─ 그건 이 건물이 보물로 지정됐기 때문이야. 보물로 지정되면 그때부턴 사찰에서도 어쩔 수가 없거든. 문화재청에서 관리를 하니까.
현우와 나는 호위무사처럼 당당히 선 두 석탑을 지나 비로전으로 향했다.
─ 저기, 대웅보전, 아니 비로전 안에 계신 부처님이 혹시 그 영험한 부처님이냐?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현우에게 물었다. 하지만 현우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비로전의 천장만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동안 말이 없던 현우가 비로전 천장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 난, 여기 올 때마다 저 동자상을 꼭 보고 가. 네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바로 저 동자상이야.
나는 현우가 가리키는 곳을 올려다봤다. 정말 작은 동자상 하나가 보였다. 외줄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 동자가 매달려 있는 저 용모양의 배는 반야용선이라고 해. 불교에서는 저 반야용선이 중생을 피안의 세계로 인도한다고 믿지. 반야용선에 오르려는 동자의 노력이 눈물겹지 않니?
─ ……
─ 나는 말이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라고 생각해.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지. 버티고 버티다 보면 기회는 언제가 다시 찾아올 테니까. 나를 몰라줬던 사람들에겐… 그때 가서 설명해도 늦지 않고. 네 영화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나를 걱정하는 현우의 마음이 고마울 뿐이었다.
─ 저… 현우야… 고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우가 내 목을 조르며 장난을 걸어왔다. 나도 지지 않고 녀석의 목을 졸랐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하는 사이 우리 둘은 35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으로 돌아와 있는 듯했다.
─ 근데, 저 동자 이름이 뭐야?
─ 악착동자.
─ 악착동자? 악착동자라… 누가 지었는지 이름 한번 잘 지었다. 그런데 내 생간엔 여기 운문사는 비구니 사찰이니 악착동자보다는 악착보살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데?
─ 뭐? 악착보살?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는 있네. 역시 영화감독다운 발상이다. 하하하.
청도 운문사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 자락에 위치한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560)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대작갑사로 이후 원광국사, 보양국사, 원응국사의 중창을 거쳐 지금에 이른다. 대작갑사가 운문사라 불리기 시작한 건 973년 고려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에 도움을 준 보양국사께 보은한다는 의미에서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을 내리면서부터다. 운문사는 일연선사가 5년 동안 주지로 머물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운문사에는 현재 두 개의 대웅보전이 남아있다. 1994년 대웅보전이 새로 건립되면서 기존의 대웅보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이라 해서 비로전이라 불린다. 이 건물이 대웅보전으로 사용될 당시 보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대웅보전이란 현판을 그대로 달고 있다. 비로전은 조선 숙종 44년(1718)에 지은 건물이다. 운문사에는 비로전 외에도 원응국사비(보물)와 석가여래좌상(보물)을 포함해 모두 7점의 국가지정보물과 천연기념물인 처진 소나무가 있다. 문의 054-372-8800 www.unmun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