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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vanna Nov 13. 2021

"아가씨 말귀 참 못 알아듣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추억

적반하장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고사성어로 역사가 무려 400년이나 된 단어이다. 400년의 시간이 지나고도 여전히 일상적으로 쓰이는 걸 보면 언제나,  어딜 가나 이런 사람은 있나 보다. 살다 보면 정말 많은 일을 겪고,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아직 25년의 세월만을 지난 나지만, 오래 살다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일했던 카페는 백화점 영업시간에 맞춰 운영이 시작되고 백화점 폐점 1시간 전에 운영이 끝나는 시간인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마감 직전까지도 손님들이  서서 기다리곤 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던 무렵, 중년 고객이 방문했다. 카드를 내밀었고 나는 카드를 인식하고 어떤 음료로 하시겠냐고 물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음료 어떤 거 하세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이요~"

"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은 생각에..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한 아메리카노? 아 다시 물어보면 화낼 거 같은데..' 뒤에 서있는 고객들을 봤다. 다들 엥? 하는 표정인 걸 보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다시 여쭤봤다.


"고객님 따뜻한 아메리카노 말씀하세요?"

"아 거참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

"고객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신다ㄱ..?"

"그래 ~!!!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 아가씨 말귀 되게 못 알아듣네"


  머리를 한 대 땡 맞는 기분이었다. 내가 말귀를 잘못 알아들은 거라고? 머릿속에는 '...내가 아메리카노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말귀 못 알아듣는다는 말을 들어야 하나..?' 하는 위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감정을 삭히기 위해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셨어야 했다.



  누군가는 나를 이렇게 위로했다. "자기가 잘못 한 걸 알아서 그게 부끄러워서 괜히 더 그러는 것이라고.." 어쩌면 그것은 일련의 수치심인가 보다.




p.s 1.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건 뒤에 서 계시던 고객들이었다. 나 대신 '참내' 이러고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봐주셨던 분들.  


p.s 2. 이 손님은 매번 방문할 때마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 하셨다. 나중엔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제공하는 노련함이 생겼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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