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랑종'과 '짐승의 끝' 같이 보기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원래 겁이 없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무려 '혼자' 공포영화 보는 게 취미였다. 하지만 나 25살, 여전히 학교괴담 보고 엄마랑 잔다 :-) 한창 그럴 나이..
이번 여름에 개봉한 랑종은 공포영화 셔터 감독과 곡성 감독의 합작이다. 셔터는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는 연출로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이 영화 덕분에 '태국 영화'하면 '공포영화' 이미지가 강하다. 랑종은 개봉 전부터 '정말 무섭다,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무섭다' 하는 평들이 자자해서 완전 기대했다.
단편적 감상으로는 2000년대 공포영화 스타일의 적나라한 귀신들이 빰빰 나오는 게 아닌 약간 오컬트, 고어 장르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공포의 실체가 영화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여주인공이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빙의되었을 뿐이다.
오컬트 장르를 보자니 2015년에 개봉한 '검은사제들'이 생각났다. 그 이전까지는 원한 많은 귀신 나오고 영적인 존재가 복수의 대상들을 못살게 구는, 그래서 어느 정도 예상가능한 클리셰로 '어 여기 뭐 나올 거 같다, 이거 사망플래근데..' 진행되는 공포영화가 많았다. 구마의식을 소재로 한 '검은사제들'은 그야말로 신선했었다. 만약 검은사제들 아니었으면 왠지 오컬트 장르'에 대한 이해나 재미가 좀 떨어지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겐 이해의 베이스가 되었다.)
우선 비위가 약한 사람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나는 비위가 약해서 중간중간에 10초 스킵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굳이 ? 싶은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자세한 건 글로 쓰기도 도덕적으로 맞지 않는 거 같아서 그렇지만.. 근친도 있고 패륜도 있고 애기 먹고 뭐 이런 장면도 있다. 과연 근친이 필요한 플롯이었을까 싶다. 그 정도로 좀 윤리적으로나 시각적으로 고어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오컬트 자을이긴 하지만 장르가 굉장히 많이 짬뽕된 그런 느낌이다. 좀비물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좀비물이 또 쫄깃한 맛이 있으니까) 다만 왜 저 악귀가 하필 좀비화(?)되었나. 왜 숙주가 되었는가는 나오지 않는다.
스포주의
불교, 기독교, 가톨릭 등등 대중적인 종교 생각하면 신은 뭔가 전지전능하고, 관대하고, 자비로운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랑종의 시작도 마을을 관장하는 바얀 신의 관대함으로 시작한다. 이 신을 받들어서 모든게 평화롭고 , 아픈 사람도 치료하는 정말로 '전지전능하고도 자비로운 신'이다.
주인공 '님'의 집안은 대대로 바얀 신을 모시는 무당 집안이다. 원래는 님의 언니인 '노이'가 바얀 신을 받아야 했으나, 신내림이 죽어도 싫었던 노이는 속옷을 동생인 님과 바꿔 입거나 부적을 붙여 놓는 등 갖은 술수로 신내림의 운명에서 벗어난다.
연출 상 다큐를 찍는 과정인데 , 촬영 중에 님의 조카이자 노이의 딸 '밍'이 이상 행동을 보였다. 무당인 님은 이를 신병으로 판단했다.
밍은 요즘 애들 답게 민속신앙도, 하느님도 믿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직장인이었다. 다만 밍의 빙의는 선대 조상의 업보로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게다가 어떠한 신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보호받지 못했던 게 아닐까. 노이가 신내림을 거부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더 큰 신을 믿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신실한 종교인이었으니까.
어쩌면 님의 비극 또한 같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신실하게 믿는 일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니까
'바얀 신'이란 굉장히 속이 좁은 존재구나 했다. '나를 믿으면 평화를 줄게. 하지만 믿지 않는 순간 내가 어떻게 할 지 몰라.. ' 딱 이런 느낌.. 다만 절대적인 존재여서 되려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 독립영화 중에 왜 안 떴지 싶은 독립영화가 있는데 '짐승의 끝'이란 영화이다. 이 영화도 좀 윤리적으로 고어한 그런 느낌이다. 늑대소년, 승리호 감독이고 5천만원의 예산으로 찍은 초저예산 독립영화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아는 이유는 박해일 배우가 나와서이다.
스토리는 임산부인 여주인공(순영)이 본가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바보같이 착해빠졌던 순영은 애아빠인 전남친한테 차이고 홀로 출산준비를 위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험한 시골길에서 어떤 남자가 갑자기 카풀을 시도한다. 순한 순영은 찍소리도 못하고 야구모자의 낯선 남자(박해일)와 동행을 하게 되는데, 이 남자가 이상한 말을 한다. '몇 초 뒤면 세상이 바뀔 거야.' 라고 .. 엥? 하다가 정신을 잃은 순영. 일어나니 택시 안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기다리라는 택시기사의 메모 뿐.. 하지만 본가로 돌아가야 했던 순영은 만삭인 몸을 끌고 산길을 간다. 야구모자의 남자만이 무전기를 통해 순영과 소통한다. 야구모자의 정체는 신.
이 디스토피아에서 임산부가 의지할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제목에 걸맞게 만나는 인간마다 인간성의 끝(짐승의 끝)을 보여준다. 야구모자도 신이라고 해서 주인공의 운명을 구제해주지 않는다. 그냥 앞으로 뭐가 뭐가 있을 거라는 잔소리만 늘어놓았다. 그러다 '네가 가. 라고 하면 나는 갈게.' 해버리는 무책임한 신.
그럴거면 왜 하필 순영 앞에 나타났냐. 그냥 국밥집(?)에서 사다리타기 하다 걸린게 순영이었을 뿐이다. 신은 그냥 신. 인간은 그냥 인간일 뿐이다.
좀 하드하고, 묵시록적이고, 조금의 해석이 필요한 영화였지만 나름 충격이었던 게 이 부분이었다. 그렇다. 신은 그냥 신이다.
랑종 보면서 7년 전 봤던 저 독립영화가 생각났다. 여튼 랑종이 입소문에 비해서 그렇게 무섭지 않다는 후기가 많았는데 나는 확실히 무서웠다. 밍을 연기한 배우가 진짜 연기를 잘해서 , CCTV 장면에서 진짜 와 저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인가 했다.
p.s 랑종은 결말이 좀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