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있어서 당연함이 되는 순간 배려와 존중이 사라진다. 반대로 말하면 배려와 존중이 사라지는 순간 당연함이 되어 버린다.
세상에 당연함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자식을 낳아보니 자식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제외하고는 당연함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내가 하는 행동들이 당연함이 되는 순간, 상대가 나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사라졌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나씩 서운함이 쌓이게 되고 그 서운함이 어느 순간 내 감정을 마비시켜 버리는 것 같다. 마치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말이다.
시누이의 결혼을 앞두고 남편과 함께 시댁 식구들이 옷을 사러 간 적이 있었다. 남편과 아버님의 양복만 살거니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남편의 말에 시댁에서 아이와 함께 기다리기로 했다. 6시간 동안 나는 아이와 아무도 없는 시댁에서 아이를 재우고 놀아주고 놀이터도 갔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그냥 집에 있는 게 나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걸린다고, 늦을 것 같다고 혼자 아기랑 있는 게 심심하겠다고 한 통의 연락을 해주는 것이 나는 나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당연함인가…? 내가 남편을 기다리는 것. 오래 걸리더라도 그냥 조용히 기다리는 게 나에게 있어서는 당연함이라고 느끼는 것일까.
배려받지 못한다는 생각과 내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들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남편의 한 마디에 오늘 폭포수 터지듯 눈물이 흘러나왔다. 왜 내가 그렇게 하는 것들이 당연한 것들일까.
함께 있는 이 공간에서 남편이 잠시 바람을 쐬러 다녀오든 내가 다녀오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 혼자 나갔다 오라는 남편의 말에 아이가 내 옆에서 내 다리를 붙잡으며 운다.
<엄마 나가지 마, 나도 같이 갈래>라고 그 모습에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지금 내가 그리고 우리가 아이에게 이런 상황을 만들어 주다니. 절대 내 자식에게는 내가 겪었던 어린 시절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아이가 나의 다리를 붙잡고 나가지 말라는 모습이 내 어린 시절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우는 아이를 보며 <보물아 엄마 안 갈 거야, 엄마 집에 있을 거니까 울지 마>라고 말해주곤 보물이를 꼭 껴안아 주었다.
감정적으로 너무 힘이 들 때 아무 생각 없이 달려가 울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할머니 품에 안겨 그냥 아무 말 없이 울고 싶다, 할머니를 걱정시키는 것 같아 그것조차 할 수가 없다. 남동생도 내가 힘이 되어주어야 할 존재이지 걱정시켜야 할 존재는 아니다.
내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는 남동생에게 가끔은 나도 너무 힘들다고, 버겁다는 말 조차 할 수 없다.
나를 다그치는 게 먼저가 아니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지는 지가 먼저다.
내 편이라는 게 있기나 할까...? 이 모든 감정은 내가 감당해야 할 감정일 뿐이다. 혼자 겪어내야만 하는 감정이겠지. 겪어내야만 하는 시간이겠지.
이 와중에 최근 신청한 체험단이 당첨되었다. 후... 타이밍 아주 기가 막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