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건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 힘듦이 아닌 깨달음을 주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7월 한 달은 나에게 참 힘든 달이었다.
아이가 수족구에 걸려 열과 함께 목에 수포가 올라왔고 이게 나아지나 싶었을 때 폐렴 직전까지 가는 기관지염에 걸렸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이제 살겠다 싶었는데 내가 브런치에 썼던 글을 읽은 남편이 화를 내며 우리의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다.
싸움이라 말하지만 며칠간의 침묵의 시간이었다.
늘 하루면 끝나곤 했던 부부싸움이 3일 가까이 침묵으로 불편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 시할머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첫 손주며느리였다. 아이는 어디 있냐고 물으시던 시할머님, 임종면회라는 것을 한 뒤 다음날 시할머님은 돌아가셨다.
병원은 수도권이었지만, 장례는 시할머님이 계신 지방에서 치러야 했기에 4시간 가까이 내려가야 했다.
아이와 함께 가면 아무래도 많이 힘들 것 같아, 곧 결혼을 앞둔 시누이가 3일간 아이를 봐주기로 했다.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지팡이 할머니가 이제 하늘나라 가셔서 엄마 아빠가 잘 보내드리고 와야 해, 거기는 너무 멀어서 보물이는 같이 못가, 두밤만 자면 엄마 아빠 올 거야 고모랑 두밤만 자고 있어>라고 말이다.
아이와 하루 이상 떨어지는 것이 처음인 데다, 이틀이나 떨어져 있어야 했기에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누이와 잘 자고 잘 지낸다는 말에 안심했는데 아마도 아이 딴에 씩씩한 척했던 것 같다.
어린이집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갑자기 <엄마 아빠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하며 울었다고 한다.
할머님의 장례 이틀밤을 보내고 3일째가 되던 날 아이를 보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가 나에게 안기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를 피하며 시누이에게만 붙어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니 나에게 안기며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33개월인 작은 아이가 많이 힘들었구나 싶었다.
<우리 보물이 엄마 아빠 없어서 많이 힘들었지? 지팡이 할머니가 하늘나라 가셔서 보내드리고 왔어, 너무 멀어서 못 갔던 거야, 씩씩하게 고모랑 있어준 보물이 정말 대단해!>라고 해주니 울다가 씩 웃음을 짓는다.
아이는 안정을 찾았는지 어린이집에서도 불안정한 모습대신 안정적인 모습으로 참 잘 놀았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부모의 존재는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한번 더 느꼈다.
참 힘들었던 한 달이었다. 부부싸움으로 결혼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고 우리가 헤어진다면?이라는 가정을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정말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8월인 지금은 그 시간들을 겪은 것이 나에게 일상의 감사함을 알려주려 했던 거구나 싶다.
아이러니한 이 생, 그리고 이 삶, 어쩌면 삶이 돌아가는 원리는 단순할지도 모르겠다. 안에 있는 감사함과 사랑을 알려주려고 일어나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