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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별 Dec 02. 2021

[실실실] 6. 가족의 의미

난 혼자가 아니야

(이 글은 지난 5/22 경 저장해둔 글이 발행된 것입니다.)



 예전 한 TV프로에서 알랭 드 보통이 연결되었고 짧은 인터뷰를 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한국인의 특성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점이다.” 라며 “한마디로 한국인들은 멋진 멜랑콜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슬퍼할 줄 알고 이것은 더 큰 만족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단계거든요.”라고 말한 것을 보았다.


이것은 한동안 내 눈앞에 가장 소중하고 예쁜 아이들을 두고도 수년간 쌓인 깊은 우울함과 더불어 행복하지 않은 것만 골라내던 내가 어디 문제가 있진 않나 고민하던 중 가장 큰 위로가 된 말들이다. 저 말들은 “K-엄마”를 콕 집어 한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돌아서면 밥, 청소, 빨래, 애들 뒤치다꺼리 등등등이 산적해있지만 슬퍼할 틈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정신적 승리로 농담을 하며 해치우는 한국 엄마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하긴 한국에 있는 모든 직업군들에 저 말을 붙여도 어울릴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저런 감정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아, 문제라고 생각했던 나는 역시 지극이 정상적이고 평범하고 심지어는 민족적이구나! 휴, 다행이야)


그는 알았을까? 그가 했던 말들이 지구 반대편 애셋맘의 정신적 피로도를 해결하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하긴 그가 쓴 책들은 2,30대 내 방황들에게도 가끔 위로와 펀치를 날려주었었다. 그와 같은 나이에 나는 대체 이 무슨 한없이 작고 쓸모없는 고민이냐며 깊이 있는 그의 글들에 허우적대며 자기반성을 하기도 했었고 그의 뛰어남을 한없이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알랭 드 보통이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꼽혔고 한국인인 나는 내가 이룬 우리 가족을 제일 사랑한다. 오늘이 부부의 날이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나는 성시경과 BTS도 좋아한다. (음.. 암만!!)


 남편은 일단 제쳐두고(부부의 날이라며? 미안) 첫째는 요즘 징징거림과 혼자 하는 기쁨의 줄다리기를 아슬아슬 잘 타고 있다. 유치원에 다닌 지 3개월 차, 완벽 적응해서 그런지 이제 유치원에서도 변을 잘 본다. 뭐 1-2주에 한 번 오줌을 싸서 바지를 갈아입고 오기도 하지만;; 하원 후 놀이터로 가서 2층 미끄럼틀에 형아들이랑 올라가기를 제일 좋아해서 늘 엄마가 들어서 올려줘야 하는, 돌부터 사준 킥보드를 이제야 회전과 정지를 제법 할 줄 아는 5살 형아다. 얼마 전엔 놀이방 정리를 동생과 훌륭하게 마쳤고 그토록 무서워하던 머리 감기도 스스로 하게 되었다. (정말 최선을 다해 칭찬한다. 하도 머리감기를 싫어해서 억지로 감겼던 지난날들을 후회하고 사과한다. 우리 모두의 부단한 노력으로 지금에 이르긴 했지만.)


우리 집 외동딸인 둘째는 겁을 상실한 지 오래지만 요즘도 여전히 겁이 없고 달리고 걸으면서 앞을 잘 보지 않아 우리 부부의 심장을 들었다 놓는 재주를 더욱더 계발하고 있다. 얼마 전엔 평소 늘 하던 것처럼 소파에서 매트로 뛰어내렸는데 마침 매트 위에 있던 동화책에 얼굴을 박아 코피를 흘렸다. 태어났을 땐 코도 제법 높아서 뿌듯했는데 지금은 손가락 두께도 안 되는 것 같아 허망하다. (이것은 첫째도 그렇다. 태어난 직후 코밖에 안 보이던 코 큰 남이었는데 지금은 양볼이 사이좋게 서로를 넘보는 납작코가 되었다.)

 잘 때에는 자기 싫다고 매일 밀당을 하다가 결국 아빠에게 잡혀서 일장연설을 들고 품에 안겨 펑펑 울다가 훌쩍이며 잠들고, 일어나선 온 머리로 잠을 자서 그런지 머리칼이 자유분방하게 각자의 위치에서 존재를 뽐내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님들, 아이 재우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인 줄 알았다면 중, 고등학교 가정, 기술 과목 대신 아이 돌보기를 넣어주시지 그랬나요? 제가 기술과목 만들기를 좋아하고 잘해서 기술 선생님 눈에 들어 대회를 준비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손을 대어가며 방과 후에 시간을 보냈던 것보다 육아를 배우는 게 낫다 싶네요. 그리고 여전히 저는 여기저기 잘 대입니다.


셋째는 만 6개월을 채운 지 제법 지났고 배밀이를 넘어 이젠 제법 다리를 써서 기려고 한다. 속도도 점점 빨라져서 내가 말을 하고 없어지면 없어지는 방향대로 옹알이를 하거나 울면서 기어 온다. 얼마나 열심히 기려고 했는지 엄지발가락과 이어진 발바닥이 양쪽으로 껍질이 벗겨져 있다. 완모를 하는 아기라 만 6개월을 채우고 이유식을 시작했는데 철분이 기준치에 비해 부족해 약간 빈혈상태라 소고기를 꽉꽉 채운 이유식을 1/3은 흘리고 1/3은 바르고 1/3는 입 안에 고여서 그 1/3중 얼마가 과연 목구멍으로 넘어갈지 걱정되어 아이를 살짝 뒤로 젖힌 다음 안 흐르게 살짝 한 술 넣고 목에 걸릴까 봐 얼른 들어 올리는 고생을 사서 하는 중이다. 뭐 이유식에 익숙해지면 곧잘 삼키겠지. 두 달 정도는 지켜보련다. 아이 셋을 키워보니 뭐든 한, 두 달이면 아이들이 익숙해져서 곧잘 해내더라.


 그리고 끝으로 사랑하는 남편. 남자를 만나면 헤어지지 않는 이상 4계절은 보내야 결혼은 생각해본다는 지론을 가진 나였는데 왜 당신은 만난 지 몇 개월 만에 겨우 계절이 한 번 바뀌고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고 당시의 나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쉽고 빠르게 너에게 급속도로 빠졌었나 싶다. 물론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너도 그랬었지만 어쩐지 지금은 나만 그런 마음이었나 싶어서 화가 나기도 할 정도의 무심하고 무던한 타입인걸 결혼 후에야 알게 되었다. 변덕쟁이 vs 무던무심의 조합이라니.


 어떨 땐 하루에도 몇 번씩 날뛰는 나와 달리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너는 결혼 후에 이벤트를 하거나 사랑 표현을 하는 것엔 서툴지만 매일 저녁 칼퇴 후 집으로 와 내가 차린 밥을 늘 불평 없이 맛있게 먹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부엌 바닥을 청소기를 돌리고 음식물쓰레기와 재활용을 버리러 간다. 그의 설거지가 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전과 달리 행주도 씻어 널줄 알고 매일 저녁 솥밥에 남은 밥을 전기밥솥으로 옮길 줄 아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는 다소 만족스럽다.


처음 글을 쓰려고 한 건 일주일에 하나로 1년이면 52개의 글이 나오겠구나 했는데 머릿속으로만 이미 수십 개의 글감이 지나갔고 모래가 흔적 없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내 머릿속엔 ‘아, 이거 좋은데?’ 하고 생각해둔 문구나 구절 따위 이미 지나간 봄처럼 사라진 지 오래다. 벚꽃이 언제 피긴 피었었나?




춥고 덥고를 반복하더니 정말 갑자기 여름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 장마가 오겠구나. 아이는 기기 시작했고 낮잠은 오전, 오후 한 번씩으로 정착했다. 그나마 이때 글을 써야 하는데(쓰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우리 집 아이들은 내가 없어진 걸 기똥차게 알아채고 울어댄다. 완분(완전 분유)으로 키운 첫째는 한 번 자면 거의 깨지 않아서 책을 읽거나 글도 쓰기도 했는데 완모(완전 모유수유)를 한 둘째와 완모 중인 셋째는 전혀 가당치 않은 일이다.



전에는 혼자일 때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색했다. 정확히는 혼자 여행을 가서 여유롭게 해변에 누워있거나 책을 본다던가 하는 것들이 자꾸 주변인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즐기지를 못했다. 하지만 이젠 혼자임을 진정 잘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거실 창가의 해먹에 누워 아무 소리도 없는 고요함을 즐기며 혼자 갔던 발리 여행의 바닷가를 상상하는데 우습게도 애 셋을 낳고서야 진짜 자유를 갖게 된다면 더 집중하며 혼자인 시간을 1초도 어색하지 않게 잘 누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누가 나를 발리 해변 어딘가에 데려다 달라 ㅎㅎ



아 사진들은 결혼 전 마지막 혼자 여행이었던 발리에서 제가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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