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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별 Jun 03. 2021

[실실실] 7. 엄마는 다 안 그래

엄마답지 않은 모든 엄마들을 응원하며


TV 동물농장에 새끼들에게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보이는 어미개가 나왔다. 새끼들이 젖을 빨면 너무 아프니까 거기에 당황에서 경계를 하는 것이라고 전문가가 말했다. 개의 이름은 봄이. 봄이는 결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수유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전문가의 말이 내 가슴을 쳤다. “어미로서 네가 해야 할 일이라고 알려줘야 한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정도였던 것 같다. 과연 봄이는 그게 좋았을까? 봄이는 나를 4년 전으로 데려갔다.


2017년 9월, 첫째를 유도분만을 하다 12시간쯤 됐을까? 자궁문이 8,90%가 열렸다는데 감감무소식. 담당의사가 와서 보더니 아이가 다 내려왔는데 골반에 낀 상태에, 아이가 천장을 보고 누워있으며, 방금 막 태변을 쌌으니 긴급으로 수술하자고 선택하라고 했다. ‘이게 무슨 선택이야? 애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데..’


남편과 짧은 상의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한다고 말하고 간호사가 와서 무통을 뽑자마자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고 팔다리가 제멋대로 후들거리기 시작한 상태였다.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마구 산산조각 났다. 사실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삭제한 것에 가깝다. 12시간 버틴 게 억울하고 왜인지 모르게 아파서(무통으로 몰랐던 출산과정의 고통이 몰려와서 그렇다고 함) 거의 울면서 수술대에 올라가고 마취를 한 뒤부터는 쭉 눈을 감고 생각하길 거부했다. 그리고 잠시 뒤, 간호사가 내 눈 앞에 들이민 3.84kg의 빨갛고 커다란 아이를 확인한 순간 ”오... 아가..” 말하고 거의 쓰러진 채로 잠들었고 다음 날 새벽 5시쯤 깨어났다.


눈을 뜨니 트럭이 온몸을 밟고 지나간 느낌이 들었다. 하반신이 묵직하고 배에는 누가 불을 지른 것처럼 뜨거워 움직일 수 없고 입은 바짝 마르고 코에는 산소마스크가 씌워진 채였다. 아이가 궁금해 2시간 동안 보호자 침대에 코 골며 자는 남편을 간간이 불렀는데 꼼짝하지 않았고 7시가 돼서야 눈을 뜨더니 “어, 내가 마취과 의사한테 푹 재워 달랬더니 오후까지 잘 거랬는데 왜 벌써 깼어?” 한다.

 그리고 수술 마치고 내가 깨지 않아 꽤 오래 있다가 올라왔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은 호의라고 의사한테 부탁했다는데 나는 웃을 힘도 없어서 어이없어하는 동안 1시간이 흘렀고 내가 너무 궁금했던 아이가 병실로 왔다. 정말 크고 빨간 어젯밤 그 아이가 잘 씻고 순하게 누워 자고 있었다. “오.....”


겨우 몸을 조금 일으켜 아이를 가까이 대보았다. ‘내가 정말 엄마가 됐구나!’ 감상에 빠져있는데 나중에 일어나서 수유콜 받으면 내려오라는 그 말에 갑자기 승부욕이 생겼다. ‘엄마가 애를 굶길 순 없지.’  

하지만 정말 너무 아팠다. 트럭에 밟힌 것 같은 허리와 하체, 불에 덴 것 같은 배를 가지고 어떻게 걸어간다고? 아... 임신 진료 올 때마다 봤던 그 출산모들이 왜 그렇게 복도의 바를 잡고 꼬부랑 할머니 걸음을 했는지 그제야 알았다.


첫째 날은 진짜 너무 아파서 감히 일어날 생각을 못했고 마취 후유증이 올 수도 있다고 일어나지도 못하게 해서 정말 욕창이 걸릴 것 같았지만 죽은 듯 있었다. 2일째에 일어나고 싶은데 상체만 일으키려고 해도 눈물이 나고 신음소리가 절로 났지만 연습했다. 일단 일어나기-침대에 앉기- 침대에서 일어나 걸어보기-화장실까지 걸어보기 순으로 연습했다 ‘나는 엄마니까, 나는 엄마니까...’ 되뇌며. 그리고 내 흐려진 기억이 맞다면 3일째에서야 입원실을 벗어나 수유를 하러 갔다.


 수술 부위 통증을 참으며 링거병 걸린 막대를 밀며 지렁이 속도로 겨우겨우 걸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신생아실 옆 수유실로 가서 아이를 받아 아무것도 모른 채 처음 젖을 물리는데(라고 쓰고 그냥 정말 말 그대로 젖꼭지를 아기가 물었다고 읽자) 일단 성공.

‘엄마가 이걸 하려고 그렇게 연습해서 걸어왔단다 아악, 으-윽!’


갓난아기가 빠는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순간 너무 아파서 “원래 이래요?”라고 놀라며 묻던 나에게 간호사가 누가 들어도 호의적이지 않은 차가운 말투로 “안 해보셨어요?” 했다. 짜증 내는 줄 알았다.

내가 참 늙어 보였나보다. (아이 데리고 오면서 이름표 확인했으면 초산인 거 뻔히 알 텐데) 나보다 어려 보이던 그 간호사가 그땐 야속했다. 늙어 보이면 경산이고 다 능숙하게 잘하나? 자긴 낳아봤는데 저렇게 말하나... 난 아이 안는 것도 서투른데 당신은 일이니까 잘하지. 내가 어떻게 애 낳고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싶어 좀 서러웠다.

(본의 아닌 사족: 그 후로도 그 병원의 신생아실 간호사들은 입원실 간호사들보다 연차도 짧아 보이고 상대적으로 많이 불친절했다. 내가 아이 셋을 모두 같은 병원에서 낳은 동안 느낀 바다. 이젠 그저 아기 울음소리가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은 가보다 생각한다. 심지어 셋째 출산 땐 신생아실 간호사들이 앉을 곳이 마땅치 않을 걸 보고 제대로 된 의자라도 놔달라고 고객 카드에 적고 나왔다. 애셋맘의 발전이란!)


이후 같은 병원 소아과를 갔는데 한 여의사가 백일 지난 아이에게 약을 처방하길래 아기가 아직 너무 어린데 이 약을 먹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엄마! 애 처음 낳아보세요?” 하고 다그쳤다. 의사에게 혼나는 것 같아 참 머쓱했는데 후에 알고 보니 그 의사는 싱글이었다. 완전 속은 기분이었다. “선생님, 애 안 낳아보셨어요?”

 

사실 미혼이든, 출산을 안 해봤든, 남자든 다 상관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엄마로서 꾹 참고 뭐든 해야 한다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짐승도 새끼 낳으면 어색하고 아파서 화를 내는데 사람은 오죽할까..


‘봄아, 너 이제 괜찮니? 그래도 너는 좋겠다. 네가 엄마가 처음이라고 그렇게 신경 써주고 이해하는 주인과 살아서...’

‘아줌마는 이제 애 셋 낳고 이제야 좀 초산 같지 않고 조금 쿨하게 굴어. 너도 잘 지내지?’


 TV에 나온 개 덕분에 다시 깨닫는다. 모성애든 부성애든 길러지는 게 크다. 4년 전 처음 젖 물리며 아파했던 내가 그랬듯 모두가 타고나는 건 아니다.

멋모르고 “엄마가 왜 그래?”, “엄마는 다 그래.” “엄마가 다 하는거야.” 하며 강요하지 말자.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다. 아빠도 똑같다. 엄마가 더 자연스럽고 그런 건 아무래도 의도적인 후천적 교육도 있고 엄마 몸에서 아기가 나오고 뭐 각 가정마다 다양한 이유로 어쩌다 보니 엄마가 더 많이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되는 경우, 그런 거다. 아빠가 더 많이 케어한 아기는 아빠가 더 자연스럽겠지.

인생사 케바케(case by case), 사바사(사람 by 사람). 어쨌든 봄이, 땡큐.

아빠 처음 해봐서 이래저래 서툴었지만 많이 발전 중인 시어머님 큰아들과 첫째, 둘째. 나는 셋째와 뒤따라 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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