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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쌤 Nov 28. 2024

함께 걸어줄 누군가.

우산도 없이 친구와 함께 쫄딱 비에 젖었습니다.

비 오던 날.

하루종일 학교에 있었습니다. 돈도 없고 여자 친구도 없던 대학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요. 도서관은 시험에 임박하거나 숙제를 내일 바로 제출해야 하는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었습니다. 다들 그러시지 않았나요?



정말 억수같이 비가 오는데 그날따라 우산도 없던 날이 있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와 학생회실을 전전하며 하루종일 기타 치며 노래도 부르고 책도 읽고. 말도 되지 않는 철학이며 종교며 인생을 주제로 한참을 떠들었습니다. 정말 남자 녀석 달랑 둘이서 말이죠.



혹시나 비가 그칠까 하고 기다리다 결국 밤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서로 언제 집으로 갈까 눈치를 보다가, 설마 비가 그치겠지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정말 깜깜한 밤이 된 것이죠. 결국 학생회실을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 마지막 버스 시간을 염려할 수 밖에는 없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우산도 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길을 나섰습니다.

어쩌면 둘 다 그렇게 융통성도 없는지 쏟아지는 비를 정말 온몸으로 다 맞았습니다. 버스 정류장이나 구멍가게에서 우산하나 사면 될 것을 그게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결국 둘 다 머리부터 신발끝까지 물에 젖었습니다. 정말이지 철들고 이렇게 옷 입고 비를 맞아본 적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도 다 젖어 버렸지요.



타야 할 버스가 왔습니다.

옷과 온몸에 물을 잔뜩 먹은 채로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운전기사를 바롯 해 버스 안의 사람들이 다들 저와 친구를 무슨 신기한 구경이 난 듯 쳐다보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멀쩡한 대학생 2명이 우산도 없이 물에 빠진 생쥐처럼 물을 뚝뚝 흘리며 버스에 올라탔으니까요. 물론 그 당시는 물에 젖은 것보다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자체가 더 창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둘 다 어서 빨리 내려야지 하며 말없이 창밖만 내다봤습니다. 중간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생겼지만 감히 앉을 생각도 못했죠. 혹시라도 앉았다가 좌석을 온통 물에 적셔 버스에서 쫓겨날까 봐 밀입니다.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더욱 필요한 것임을.

   그대를 만나고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정하,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중-



이 시를 읽으며, 그때의 친구를 떠올렸습니다.

의 창피함을, 말도 안 되는 창피함을 함께 나눴던 친구, 말없이 함께 쏟아지는 버스 창 밖의 비를 같이 쳐다봐주던 친구. 이제는 저도 그 친구도 우산 없이, 아니 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을 일은 없겠지요.



그날 제게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쏟아지는 비를 막아줄 우산 한 자루보다는 그냥 함께 옆에 있어주는 친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순간 함께 걸어줄 누군가,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바로 그런 존재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살아가는 일이 녹녹지 않다고 느낄 때,

내 맘처럼 일이 되지 않을 때,

삶이 내게만 냉혹하게 느껴질 때,

나만 뒤처지고 있구나 느껴질 때,

함께 비를 맞던 그 친구가 생각납니다.



그런 친구가,

그런 사람이 그리운 요즘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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