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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Jun 03. 2024

인사팀에서 일해볼래요?

호텔 인턴십 이야기 (2)


백 오피스(사무직). 앞에서 보이지 않는 호텔의 사무실 뒤 편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운 좋게도 두 번째 인턴십은 B그룹 특급호텔 인사 팀의 채용 업무였다. 첫 번째 인턴을 했던 호텔과 지척인 거리에 다른 대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는 5성급 호텔이었다. 이번에도 무작정 이력서를 들고 인사 팀을 찾아갔다. 인사 담당자는 나의 막무가내정신을 의아하게 보면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서류를 들춰보았다. 나의 전공과 인턴 경험을 고려했을 때, 백 오피스의 업무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며 인사 팀 책상으로 안내해 주었다. 인턴 근무를 시작할 때쯤 해당 호텔 공채 1기가 선발되어 인사 팀에 배정된 신입 직원과 함께 동기처럼 의지하며 일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공식 홈페이지 외에 인력을 채용하는 각종 포털 사이트에 신입 사원 모집 공고를 게시했다. 호텔의 현장직, 즉 프런트 오피스는 객실, 레스토랑, 피트니스 등의 시설에서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직무를 말한다. 사무직은 호텔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지원하는 구매, 인사, 총무, 기획, 교육 등의 부서로 일반 기업에서도 볼 수 있는 직무다. (군대에 비유하자면 현장은 전투병, 사무실은 비 전투병쯤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모집 공고, 서류 검토, 면접 등의 채용 단계를 진행하면서 백 오피스에 어떤 직무들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서류에서는 지원 직무에 따른 지원 동기나 입사 후 포부 등을 통해서, 면접에서는 면접 관들의 질문이나 지원자들의 답변을 통해 직무 별로 어떤 업무를 하는지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알게 된 직무 중 하나가 ‘객실 세일즈’였다. 호텔은 객실이 가장 대표 상품이 아니던가? 객실 세일즈는 길에서 아무나 붙잡고 “우리 호텔에서 묵으실래요?”라며 방을 파는 게 아니었다. 주로 기업을 상대하는 B2B 영업이다. 기업 담당자와 협의를 통해 객실 계약 요금을 세팅한 후, 내∙외부 손님이나 출장 객들이 호텔을 예약할 때 우리 호텔에 투숙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홍보 활동을 하는 것이다. (매력적인 요금이나 부가 서비스, 객실 업그레이드를 제공하는 게 일례다.) 


그때부터 나는 객실 세일즈에 꽂혔다. 현장에서 유니폼을 입지 않아도 호텔리어답게 일할 수 있는 대표 직무. ‘호텔의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다음 스텝을 정했다. 대기업 공채로 백 오피스 중에서도 세일즈 업무를 지원하는 것.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목표가 뚜렷하니 무급임에도 불구하고 호텔 인턴 생활은 신이 났다. 호텔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열정과 특유의 씩씩함이 조직 생활에 잘 맞아 들어갔다. "공채 2기에 지원해 보는 게 어때요? 인사 팀에서 우리랑 같이 일해봅시다." 덕분에 인턴을 하고 있던 두 번째 호텔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행복한 고민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사 팀’이라는 것이 내 발목을 잡았다. 내게 인사 팀은 너무나도 경직된 조직이었다. 호텔에 대해 궁금한 것도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마냥 신이 나서 떠들 수 없는 분위기였다. 채용 업무뿐만 아니라 귀동냥으로 인사의 다른 파트에서 일어나는 인사 발령, 고과, 교육, 노무 등의 주요 결정사항을 알 수밖에 없다. 듣는 것은 많았지만 입은 무거워야 했다. 인턴 나부랭이였지만 눈칫밥 먹으며 폐쇄적인 직장인 모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교류나 식사 약속에도 제약이 있는 소속 구성원. 사실 인사팀에서 근무하고 싶었다면 호텔이 아닌 다른 기업이어도 상관없다. 인사팀은 모든 회사에 있으니까. “제안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는 현장에서 유니폼 입고 근무하고 싶어서요.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새빨간 거짓말. 그만큼 내게는 ‘호텔’이라는 게 중요했다. 일도 ‘호텔리어’ 답게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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