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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g in Houston Aug 12. 2020

소심하고 찌질하 神, 직장의 봉신

프롤로그: 직장인들의 소심하지만 확실한 복수를 돕는 봉신이 나타났다!

“딸랑, 딸랑,”

자정이 다 된 시간, 현관문에 걸어 놓은 방울이 울리자 카운터에서 졸던 알바 생이 눈을 뜬다. 


“어서 오세요. 봉마트입니다.” 


여기는 광화문 지하철 11번 출구와 시청 1번 출구 사이에 있는 24시간 편의점, 봉황마트다. 처음에는 힘차게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는 봉황의 모습을 담은 조형물과 함께 “봉황마트”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위풍당당했던 봉황의 벼슬은 모두 사라지고 흉물스러운 털 빠진 새 조형물로 변했다. 간판 이름도 봉황에서 지난 태풍에 “황”이라는 글자가 날아가 버리고 봉만 남아, 예전의 위상은 사라지고 그냥 “봉마트”로 불린다. 하지만 이곳은 대한민국 3대 언론사가 건물 옥상에 전광판을 세우고 하루 종일 분초를 다투며 총알 대신 속보를 날리며 전쟁을 하는 곳에서 그 역사를 함께한, 한마디로 프로 야근러들의 작은 쉼터이자 공동경비구역과도 같은 곳이다. 


이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은 바로 자양강장제. 첫차를 타고 출근할 때도 한 병, 야근 할 때도 한 병, 막차를 타고 퇴근할 때도 한 병, 그리고 직장상사한테도 깨졌을 때도 한 병씩 마시니 편의점 앞에는 자양강장제 빈병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나는 이 편의점의 숨은 주인이자, 소심하고 찌질하 神, 직장의 봉신 박봉신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 신전에서 신도의 숭배를 받는다면 나는 이곳 편의점이 신전인 셈이다. 직딩들이 편의점에서 고픈 배를 달래거나 직장 상사의 눈치를 피해 잠시 한숨을 돌리기 위해 이곳을 찾아와 빡침이 담긴 뒷 담화를 나눌 때 힘을 얻는 직장인들의 수호신, 봉신이다. 나는 직장인들의 울분으로 얻은 힘을, 직장인의 소심하지만 확실한 복수를 돕는데 사용한다. 


나는 현생에서 이곳 봉마트의 단골 손님으로 하루에 열병도 넘는 자양강장제를 먹으며 첫차 타고 출근해서 막차라도 타고 집에 가면 그날은 운이 좋은 날로 여기던 직장인이었다. 그리고 결국 이 마트에서 자양강장제를 사고 나오는 길에 과로사로 사망했다.


쓰러졌을 때 내손에는 미처 따지 못한 자양강장제 한 병이 들려 있었다. 멀쩡히 사무실에 앉아 일하던 내가 이 음료 하나도 딸 힘없이 쓰러지다니 누구를 위한 야근이고, 누구를 위한 일이었던가. 회한과 울분이 치솟아 올랐을 때 봉황마트의 문을 열고 마트 로고가 새겨진 조끼를 입은 염라부장이 나타났다.

 

“자네 재능 기부하지 않겠나?”


죽어라 일하다가, 정말 죽었는데 재능기부라니. 귀신 볍씨 까먹는 소리라는 내 표정에 염라부장이 말했다. 


“아니면 지금 바로 환생해서 또 열심히 을로 살며 일하다 또... 이렇게 살다가던지?”


자양강장제로 모자란 잠을 다음날로 미루며 일하다 죽어서 영원히 깨지 못하는 잠을 자고 있던 내 모습을 가리키는 염라부장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살면서 처음으로, 아니 죽어서 겨우 날린 주먹이었는데 염라부장은 내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당장 일할 수 있겠지?”


“네에?”


“이제부터 자네를 소심하고 찌질하 神, 직장의 봉신으로 임명하겠네.”


가슴이 타들어갈 같은 고통에 눈을 뜨니 나는 어느새 염라부장이 입었던 마트 로고가 새겨진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 가슴에는 “봉황 마트 점장 박봉신”이라는 명찰까지 달려 있었다. 이건 뭐지? 내 이름은 ... 내이름은! 어라 내이름은? 내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심지어 무슨 일을 했는지도 기억나는 건 단 하나 야근을 하다가 자양강장제를 사고 이 마트에서 나오던 길에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뿐. 


마트 앞에 주차 된 벤츠에 올라타며 염라부장은 말했다.


“딱 백 명이야. 자네처럼 직장에서 갑질 당해 울화병 생긴 직딩 딱 백 명을 도우면 다음 생엔 자네가 원하는 갑으로 태어나게 해주지. 어때? 괜찮은 재능기부지?”


“잠깐만요! 왜 하필 전가요?”


“인내상.”


“네?”


“오랜 직장 갑질 생활을 인내한 자네한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내 염라부장 생활을 통틀어 자네처럼 화를 꾹 참고, 온갖 갑질을 견뎌낸 인재는 조선의 역사에서도 없었네.”


“그냥... 욕을 하세요!”


“믿고 가네. 자네가 할 일은 이따 알바생이 오면 설명해 줄 거야. 나는 불금이라 이만!”


붕붕. 묵직한 엔진 소리를 남기며 그렇게 염라부장이 사라졌다. 내 손에 남은 건 내가 먹지 못하고 손에 쥐고 쓰러진 자양강장제 한 병 뿐.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말이 좋아 직장의 봉신이지 이건 그냥 부우웅신이잖아!”


나는 소심하고 찌질하 神, 직장의 봉신이다. 나의 목표는 갑질에 한 맺힌 직장인 백 명의 원한을 해결해주고, 그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갑으로 환생하는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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