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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g in Houston Aug 27. 2020

소심하고 찌질하 神, 직장의 봉신

제1화 황구와 마고!

<간추린 지난 이야기>


야근과 철야에 지쳐 자양강장제를 사러 봉 마트에 들어선 나는 그대로 쓰러져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황망한 눈으로 미처 마시지 못한 자양강장제를 쥐고 쓰러진 내 모습을 보고 서 있을 때 염라 부장이 다가왔다.  


“자네 재능 기부하지 않겠나?”
“아니면 지금 바로 환생해서
또 열심히 을로 살며 일하다가 또…
이렇게 자양강장제로
모자란 잠을 다음날로 미루며
일하다가 죽어서
영원히 깨지 못하는
잠을 자던지.”
“딱 백 명이야.
자네처럼 직장에서
갑질 당해 울화병 생긴
직딩 딱 백 명을
도우면 다음 생엔
자네가 원하는 갑으로
태어나게 해주지.
어때? 괜찮은 재능기 부지?”
“이제부터 자네를
소심하고 찌질하 神,
직장의 봉신으로 임명하겠네.”


그렇게 나는 봉신이 되었다



제1화 : 황구와 마고


나는 생전에 미처 마시지 못한 자양강장제를 쥐고 염라 부장이 떠난 자리에 서 있었다. 세상에 염라 부장이 벤츠를 타고 서울 한복판을 돌아다닌다니. 전설에 고향에서 본 저승과 너무나 다른 거 아냐? 가마는 아니더라도 말은 타야지. 


“생각하는 거하고는. 

 지금이 조선시대냐?  

 그럼 저승사자는 검은 도포에

 갓 쓰고 다녀야겠네?”


날카로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발 뒤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설마? 지금 고양이가 말을

 한 거야? 

 역시…”

나는 고양이를 품으로 안아 들었다. 


“니가 혹시 염라 부장이 말한

 그 아르바이트생이니?”


“제발 그러지 말자. 

 누가 꼰대 아니랄까 봐 

 그렇게 전형적이냐?”


빨간 머리로 염색한 교복 입은 고등학생이 다가와 고양이를 빼앗아 들었다. 핏기 없이 하얀 얼굴에 유독 입술만 빨간 묘한 분위기의 키가 큰 소년이었다. 아직 솜털이 가시지 않은 얼굴에 이제 막 목젖이 나오기 시작하는, 소년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딱 중간의 모습이었다. 


“잘생겼지?”


“뭐?”


“이 길냥이 말이야. 

 누가 마트 쓰레기 봉지를 

 뜯나 했더니 범인이 

 이 녀석이더라고. 

 그때부터 마트에서 

 키우고 있지. 

 애 이름은 마고, 

 나는 황구…”


“푸헷… 황구? 

 백구 친구 누렁이 부를 때 

 그 황구?” 


그때였다. 고양이를 안은 소년의 발차기가 가슴팍을 향해 날아왔다. 강한 파동이 가슴을 중심으로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우당탕. 충격으로 붕하고 떠오른 몸이 마트의 쓰레기통 위로 몸이 떨어졌다. 머리에서 손님들이 먹다 버린 라면 사리와 국물이 흘러내렸다. 나를 매섭게 노려보는 황구의 주위로 파지직 작은 스파크가 일어나며 사방으로 뻗은 빨간 머리가 흔들거렸다. 


“봉신 말고 붕신이 되고 싶으면 

  얼마든지 말해.”

“아니요. 괜찮습니다.”


야옹. 마고가 혀를 날름 거리며 황구의 손등을 핥았다. 마트로 들어가기 전 한번 더 나를 노려보는 황구의 눈빛에 몸이 저절로 움찔거렸다. 죽어도 아픈 건 아프구나. 어라? 아프다고? 그럼 나 정말 죽은 거 맞아?


“똑같아. 죽어나 사나 아픈 건. 

 죽어서 벌 받아 지옥 갔는데  

 안 아프면 돼?”

“그럼, 여기가 지옥?”


봉 마트 문을 열며 황구가 나직이 말했다. 


“아직은… 

 지옥 같은 이승이지. ”


딸랑. 현관문에 달린 방울이 울리며 봉 마트 문이 열렸다. 



황구는 불량스러운 외모에 반해 꽤나 성실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흥얼거리며 빗자루와 대걸레로 바닥을 쓸고 닦고, 총채로 진열장의 먼지를 털어내는 모습은 일을 하기보다 마치 즐거운 취미생활을 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카운터에서 숨 쉴 때마다 황구의 매서운 발차기가 남긴 찌릿한  고통을 느끼며 황구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겨우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  


“저기… 황군, 뭐 잊은 거 

 없어… 요?”


“!”


황구는 총채를 들고 나를 향해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뭐야? 왜 또!?”


황구는 또 맞을까 봐 두려움에 질린 내 얼굴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삼각김밥.”


“뭐?”


“옳은 지적이야. 자정이 되면 

 삼각김밥 유통기한이 지나서 

 폐기해야 하는데 내가 깜빡 잊었어.”


황구는 우유를 담았던 플라스틱 통을 들고 즉석식품 코너로 가서 삼각김밥을 회수했다. 

‘뭐야. 진짜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이야? 왜 아무런 설명 없이 자꾸 편의점 일만 하는 건데. 내가 직장의 봉신이면 넌 뭐 저승사자나, 마고는 도깨비 정돈돼야 하는 거 아냐? 왜 이렇게 현실적인 건데!’라고 가슴팍에서 마음의 소리들이 용 솟음 쳤지만, 몸은 마음보다 상황 파악에 빨랐다. 나는 셔츠를 잡아당겨 속살을 살펴보았다. 나이키 신발 자국 그대로 빨갛게 부풀어 올라있었다. 나이키 도장이 찍힌 근육은 없이 앙상한 가슴팍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죽었어도 숨 쉴 때마다 느껴지는 이 가슴팍의 고통은 현실이다. 분명 일이 끝나면 무슨 말이 있겠지. 

즉석식품 코너의 유통기한 확인이 끝나고, 냉장고에 음료수를 채워 넣는 황구를 보니 하품이 났다.  죽었는데 아프고 이제는 졸리기까지 하다니, 설마 이거 꿈이야? 그래 차라리 자버리자. 꿈에서 자면 현실에서 깨겠지. 나는 엉덩이만 살짝 기댈 수 있는 카운터 간이의자에 앉아 마고를 안고 눈을 감아버렸다. 잠에 빠져 아득히 멀어지는 의식 속에 “야옹” 마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딸랑. 딸랑. 

“어서 오세요. 봉 마트입니다.”


“삼만 이천 오백 원입니다. 

 적립이나 할인 카드 있으세요?”


“택배는 저기 키오스크에서 

 중량 재서 오시면

 라벨 붙여드릴게요.


잠깐 졸았을 뿐인데 눈을 떠 보니 손님들로 마트가 왁자지껄했다. 황구는 빠른 손놀림으로 포스 두 개를 오가며 계산을 하고 물건을 담았다. 


“일어났냐? 

그럼 이제 일 좀 해야지?”


“어, 아니, 네.”


나는 얼떨결에 손님들이 줄을 선 빈 포스기계 앞에 서  섰다. 손님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인상 쓴 얼굴로 휴대전화로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바코드 기계를 손에 쥔 순간 내 귀에 사람들의 울분이 들려왔다. 


“맥과장, 오늘도 야근하자고 

  맥도널드 가자고 하겠지?”


“연차 수당 안된다고 

 휴가계 내고 출근하라는 게 

 말이 되냐?”


“오티 때 분명 9시 출근,

  6시 퇴근 이랬는데 

  왜 아침 회의를 

  8시에 하는 거야?

  대체 몇 시에 출근하라고?”


“퇴근할 때 내일 출근해서 

 보고서 보자는 게 

 밤새라는 거야?


“금요일 퇴근길에 

 ‘내일 봐요.’ 하면 

 주말에도 

 출근하라는 거지?”


“나 회의 잡혔어. 

 12시 반에.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인데

 점심 먹지 말고 준비 하란 소리야?


그때 욱신거렸던 가슴팍에 뜨거운 기운이 돌면서 아픈 느낌이 사라졌다. 셔츠 안을 손으로 잡아들여다보니 빨갛게 나이키 신발 도장이 찍혔던 앙상했던 가슴에 상처가 씻은 듯 사라졌다. 그리고…


“아직 퇴근 못했어. 인계를 

 안 받아주는데 어째. 

 난 그냥 편의점이야. 

 24시간 일 하는 거지.”


“내 가슴에 근육이 생겼어! 

 오 마이갓!”


반 칠십 평생, 아무리 운동을 해도 나오지 않던 가슴 근육이 잘빠진 간고등어 가슴에 찰싹 붙어 있었다. 놀란 나는 셔츠를 벗어 올렸다. 자신의 차례에 전화를 받으며 에너지 바, 캔커피, 껌을 카운터에 올려놓던 여자 손님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다가 내 벗은 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까아아악! 너 뭐야?”


"저... 저요. 

 그러니까 저는..."


나는 직장인들의 울분으로 힘을 얻고, 소심하지만 확실한 복수를 돕는 직장의 봉신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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