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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사 key Aug 12. 2020

06. 학교에서 상처 받고 학원에서 치유 받고?

 김교사는 민종이 어머니와의 상담 때마다 심해지는 민종이의 거짓말과 폭력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거짓말로 모두를 완벽히 속일 수 있다 믿어요. 가정과 학교에서 거짓말의 심각성과 문제점을 확실히 알려줘야 합니다.” 
민종이 어머니는 오늘도 학원 이야기다.
“선생님 말씀 듣고 매일 가는 영어학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영어학원에서는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행동을 보이지 않는데요. 보통 아이들 정도의 장난이 가끔 있긴 하지만요.”
 학원의 이야기만으로 아이의 문제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선 안 된다는 김교사의 말이 이어지고 상담은 그렇게 교사, 학부모 모두에게 찜찜함만 남긴 채 끝이 났다. 
 다음날 민종이 어머님은 김교사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난 뭐 지금까지 선생님께 서운한 게 없는 줄 아느냐? 얼마나 참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되려 어제 그런 말씀만 하시니 너무 화가 나 아이에게 분풀이하고는 속상해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서운할 일들은 이렇다. 
 1. 지난달, 다니는 수학학원 선생님이 연락을 주셨는데 학원에 온 정후 무릎에서 피가 철철 나 치료해 주셨단다. 물어보니 학교에서 다쳤는데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냐 물으니 선생님이 괜찮다고 그냥 가라셨단다. 덧붙이는 말씀이 요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단다. 학원에서 민종이답지 않게 집중도 잘 안 하고 조금 예민해져서 친구와 다툼이 있을 뻔했단다. 
 2. 민종이한테 너 요즘 학원에서 태도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학교가 재미없고 학교 선생님이 날 미워해서 그러는 거란다. 

 뭔가 대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생각지 않으시나요? 학부모와 교사 두 사람이 상담을 통해 얻고자 한 건 무엇이었으며, 문제는 해결되었나요? 누구의 잘못이라 콕 짚어 말할 수도 없지만, 확실한 건 두 사람 모두 도움이 될 무엇도 얻지 못했다는 겁니다. 아이의 변화, 성장, 개선과 같은 결과를 기대하긴커녕 진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셈이죠.

다시 위 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학교 담임교사는 학교생활 속에서 우려가 되는 민종이의 행동을 어머니께 전달하였습니다. 민종이 어머니는 문제행동을 인정하지 않으셨죠. 근거는 학원 선생님과의 대화입니다.      


 문제점1 -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학원 선생님은 나름의 언어로 민종이의 변화를 어머니께 전달했던 겁니다. 1번에서의 내용은 분명 거짓일 가능성이 큽니다. 잘 모르는 사람도 피가 철철 나는 아이를 두고 그냥 지나치진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 반 아이가 먼저 다친 상황을 알려왔는데 그냥 가라 할 수 있었을까요? 조금만 물러나 생각해보면 거짓말이 늘고 있다는 담임선생님 말을 입증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문제점 – 학원 선생님과 아이 말에 숨겨져 있는 뜻을 읽지 않았다.

 굵은 글씨 속 ‘민종이답지 않게조금이란 단어는 직설적 표현을 순화시켜 주는 중화제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돌려 말한 거지요. ‘요즘 민종이가 예민하게 굴어 친구와 다툼이 있곤 합니다.’는 말 대신 어머니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걱정을 드러낸 겁니다. 더하여 최근 학원에서 보이는 문제는 학원 탓이 아닌 학교의 문제라고 은연중 선을 긋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지요.

2번 대화에서 이는 더 확실해집니다. 학원에서 태도가 왜 그러냐는 엄마의 다그침에 아이는 학교가 원인이라 말합니다. 학교가 재미없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다고요. 이는 아이의 학교생활에 뭔가 문제가 있단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아이는 엄마의 추궁에 (그게 핑계이든 변명이든 진실이든) 주저 없이 학교라는 원인을 댈 수 있었겠죠. 아이 나름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현준이는 2학년이다. 과제 수행 때마다 시작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린다. 활동을 조금만 해도 힘들다며 안 하려 든다. 그래도 쉬는 시간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고, 활기찬 아이다. 자신감을 높여주고 끈기와 인내를 길러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한 달여 지도하며 나아지는 모습을 보니 보람도 느껴진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현준이는 기초학력이 많이 부족했다. 1학년 단계의 한 자릿수 덧셈에도 애를 먹었고 어휘력이 부족하여 글에 대한 이해는 물론 글쓰기는 두 줄을 넘기기 어려웠다. 하기 싫으면 꾀를 부리는 현준이의 생활적 습관에다 기초부족이라는 학습적 문제까지 더하여지니 모든 일에 흥미가 없고 시작이 두려운 것이다.
4월 학부모 상담에 현준이 아버님께서 와주셨다.
친구들과의 원만한 학교생활을 이야기 나누고 이어 문제행동을 말씀드렸다. 아버님 역시 현준이의 산만함과 꾀부리기, 엄살 피우기 등을 언급하며 호응까지 해주셨다. 아버님의 이러한 협조는 상담이 긍정적으로 흘러가게 한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내친김에 아이의 기초학력과 관련된 대안을 제시하려 다음 말을 꺼냈다.
 “현준이가 수학에서...”
 “맞아요. 선생님, 현준이가 저리 산만한데 굉장히 똑똑하지요? 학습지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 두 분이 서로 만나신 적도 없는데 똑같은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머리가 너무 좋고 이해가 빨라서 꾀를 부리기도 한다고. 똑똑한 아이 중에는 그런 애들이 있다네요. 학습지 선생님은 작년에 영재성 검사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 하더라고요.”   

 문제점 – 사탕을 너무 많이 먹었다.

 현준이 아버님은 마음을 열고 상담에 임해 주셨습니다. 이렇듯 아이의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직 시하면 해결책 찾기도 한결 수월하지요. 아이의 긍정적인 변화 또한 빠르게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걱정 없던 상담에 찬물을 끼얹은 건 학습과 관련된 담임교사와 부모의 상반된 진단입니다. 현준이 아버님의 진단 근거는 학습지, 학원 선생님의 의견 및 평가였죠. 저학년일수록 이런 경우는 빈번합니다. 싸잡아 모든 학습지, 학원을 비난할 수 없으나 이들 중엔 ‘칭찬’을 가장한 ‘착각 조장’을 남발하기도 합니다. ‘칭찬’으로 어르고 달래서 아이와 부모를 붙들고 가는 거지요. 아이도, 부모도 그것을 진실이라 착각합니다. 지나치고 과장된 칭찬은 여러 부작용을 낳습니다. 

‘아이들은 칭찬에 춤추는 고래도, 당근에 흔들리는 당나귀도 아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진정으로 존중받는 것. 부모의 조건 없는 관심과 믿음이다.’

EBS에서 제작한 <학교란 무엇인가>에 소개된 후, 이제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칭찬의 역효과입니다. 특히 초등학교. 그중에서도 저학년은, 수치화된 평가를 학교 내·외부적으로 받아 볼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인심 쓰듯 고평가를 아끼지 않는 사교육을 만나면 어느 순간 눈과 귀가 닫히게 되는 거죠. 이는 결국 달콤한 사탕을 이 썩는 줄 모르고 계속 받아먹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최초 교사는 악역을 자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학습 결손 보충이 빠를수록 유리하단 건 자명한 사실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결손 된 학습은 누적됩니다. 결정적 시기조차 놓치고 마는 거지요. 


 문제점 – 학교와 학원을 단순 비교한다.

 고학년 교실에선 간혹 수업시간, 몰래 학원 숙제를 하는 아이들이 있지요. 심지어는 학교 숙제는 안 해와도 학원 숙제는 쉬는 시간을 포기하고라도 끝내기 바쁩니다. 이유를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이러합니다. 

“학교 선생님은 안 때려도 학원 선생님은 때리잖아요.”

“우리 학원 선생님 완전 무서워요.”

심지어 때리고 무섭게 대하는 학원 선생님일수록 학부모는 더 믿고, 지지하기까지 합니다. 부모와 학교 선생님이 못하는 걸 해주는 능력자라 여기기까지 하죠. 아이 앞에서도 무한신뢰를 보내며 학원 선생님의 체벌을 정당화합니다. 학생 인권은 마땅히 보장되어야 하지만, 도 넘는 요구는 학교가 통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율마저 앗아갑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은 또 학원에서 충족하려 하죠. 자연히 아이들도 혼란스럽습니다. 학생 인권은 똑같이 보장되고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학원에서는 괜찮은 것이 학교에서는 안 된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아이의 성적이 오르면 학원 덕, 떨어지면 학교 탓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학교와 학원의 특수성과 여건 차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러한 모든 걸 무시한 채 교과성적 등의 일시적 결과만을 두고 아이 앞에서조차 학교를 불신해서는 안 됩니다.


    <소통 key>

  1. 듣고 싶은 말만 듣지 말고 들어야 할 말을 찾아 듣자.

  2. 어떤 게 진짜 내 아이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인지 구별하자.

   인성교육과 생활지도는 학교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3. 학교에서의 문제를 학원선생님과 상담하지 마라.

   책임은 학교에면책은 학원에 주는 계기를 제공할 뿐이다.

  4. 순간의 위안은 눈을 멀게 하지만순간의 속상함은 눈을 뜨이게 한다

  5. 불편한 대화가 때론 불행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6. 학교와 학원은 단순 비교될 수 없는 다른 두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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