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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사 key Aug 21. 2020

간사한 감사

회식장소로의 이동을 위해,

차 안에서 옆 반 선생님을 기다리는 key교사.


상담이 길어지나?

어제 있었던 아이들 간 주먹다짐으로

옆 반 상황이 심상찮다.


종일 사건 해결하느라 고군분투하셨다던데,

일은 어찌 잘 풀리고 있으려나?

한 시간 전쯤 가해학생 어머님으로 보이는 분이

옆 반으로 들어가셨는데...


이야기가 길어지려나?

계속 기다려? 올라가 봐?

   


 

"죄송~!"

짧은 인사와 함께 조수석에 몸을 싣는

고상한 나의 옆 반 샘은

고생한 표정까지 데려와 싣는다.


"고생 많았죠?

에휴, 정말 무슨 일이래요?

어떻게... 정리는 잘 됐고요?"


"그래도 양쪽 분 모두 도를 잘 지켜주셔서

... 근데... 애들이 말이 자꾸 달라....

어제 전화할 땐... (문자 중) "


이내 시원스레 폰을 내려놓는다.


 " 죄송요, 지금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오늘따라 정신이 참 없네요."


"당연하죠, 일단 숨 좀 고르고 계세요.

출발할게요."


막 교문을 벗어나려는데...


"으악~~~"


고상하다는 뜬금 이유로도

나의 존경을 한껏 받는 옆반 샘이,

‘오늘 왜 이러신대?’

의아함을 가득 품은 나의 눈빛도 등진 채

머리를 싸잡고 계속 포효 중이다.


"저... 무슨 일...

결국 학폭으로 가는 건가요?"


"미안하데, 저기에 차 좀 세워주세요."


잠시 후, 고상한 교사가 쓰윽 내밀어 보이는

휴대폰 메시지.

[문자]

OO어머니

 선생님, 오늘 수고 많으셨죠? 그래도 저희의 입장을 이해해주시고,  배려해 주셔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추후 동일한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약속받고, 학폭은 열지 않는 걸로 할게요. 선생님도 맘고생 많으셨을 텐데 편히 쉬시길요.


옆반 샘 (답장)

어머니, 사합니다!


;;;;;;;;;;;;;;;;;;;;;;;;;;;;;;;;;;;


풋, 상황은 파악했는데...  

에이~ '당연히 오타려니 하시겠죠.' 위안은 던지는데...

결정적 상황에 따뜻한 손길을 건네 주신 어머니께

큰 결례를 범한 것 같은지

그렇게 옆 반 고상한 교사는, 점점 파리해져 간다.


정신없던 방금 전, 마침 온 문자에 넋 놓고 답한 모양이다.


근데 왜 굳이 느낌표까지 붙이셨대?

(이 와중에 key교사 호기심)

 굵고 짧은 막대기 닮아 답도 참 굵고 짧다.

(놀리는 건 잠시 보류)


잠시 후, 문자 알림.


"어떡하죠?"

"얼른 봐봐요. 별 거 아닐 거예요.

다 알지 뭐~ 아무렴 간사하다로 해석하셨을까..."


사이좋게 나와 머리를 맞대고 본 문자의 답은 이러했다.


OO어머니

 선생님도요^^


센스쟁이 어머니ㅋㅋ


뜻밖의 유머는

뜻밖의 치유를 낳는다.

 

그날 회식은 유쾌했고

호로록 밥도 잘 넘어갔다는

옆 반 key교사의 증언.

 

씻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톡이 울린다.

"key샘, 오늘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죄송하고 민망하네요.

좋은 밤 되시고 내일 봬요."


난 주저 없이 답을 날렸다.


"이런 간사한 교사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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