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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사 key Aug 26. 2020

복원된 꿈

진부하지만 '나'라는 인생의 주인공도

꿈꾸던 시절이 있었고,

남의 것을 잘 탐하지 않는 성격에도

탐이 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우연히

'책 쓰기'라는 세 글자가 박힌 문자를 받고

기억의 조각들은 과거의 나를 맞추어냈다.


치열했던 고등학교 시절,

딱히 인생의 쓴맛 본 적 없고

1등은 아니어도 그 언저리는 두리번대며

경쾌했던 나의 일상 속에


누구나 겪는 소소한 아픔,

누구나 아는 소소한 사연,

태어나보니 가지고 있던 긍정 에너지는

나를 위로하고  누군가를 위로하며

그렇게 세상이 만만하던 그때의 나.


고3. 밤 11시가 넘은 심화반 교실에는

30명의 학생이 여전히 남아

면접 대비 '꿈 발표'를 하고 있구나.

내가 너무도 좋아했던

여전히 따뜻할 네모 머리의 국어 선생님이 나를 부른다.


"다음, key!"


여기에 있던 우등생들은 누구나가 원하는 대학과 직업을 꿈꾸었고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너라면 충분히' 함께 응원도 하고

경쟁심에 바짝 긴장도 하고 있었지.


"전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 한 마디 했을 뿐인데,

"오~~~~~~~~~~~~"

선생님까지 날 너무도 멋지단 듯 쳐다봐 주시다니.

어? 이게 그렇게 대단할 일인가?


세속적이지 않은 꿈이란 이유만으로도

작가는 친구들의 경쟁상대가 아니었기에

더 힘껏 마음껏 응원해 주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더 신이 난 넌, 한껏 떠들어대고 있구나.

가만히 더 두었다간 작가가 되어 세계평화에까지 이바지할 듯한 너.

스스로를 겨우 진정시키고 마무리하는 너의... 아니, 나의 꿈 발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서 최고의 박수갈채를 받은 그날.

너무도 가슴이 뛰었다.

'key작가'



내 첫 제자들은 어느덧 사회인이다.

초등 5학년과 신규교사였던 우리는

나란히 사회인과 사회인.


우연히 집 앞 카페에서 그때의 제자를 만났다.

연락이 닿는 몇몇 첫 제자들도 잘 모르겠다던 그 아이.

너무도 반가워, 선 자리에서 끝없이 안부를 물어댔지.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근데 선생님, 아직도 선생님이세요?"

"뭐? 그럼 내가 뭐하냐?"

"아니, 그때 선생님이 10년까지만 교사하실 거라고... "

"풋, 뭐? 신규 치기 보소."

"아녜요. 엄청 멋졌어요. 아직도 기억나요.


'선생님은 10년 후엔 작가가 되어 있을 거야.

무책임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게 아니고,

그렇기에 40년 쏟아부을 열정을 10년에 농축해 너희에게 쏟아부을 거란 이야기지.

난 그렇게 교사생활을 할 거야. 그리고 보여줄 거야. 선생님 보며 따라 올 너희들에게.

꿈이란 건 꾸는 게 아닌 이뤄가는 거란 걸, 직업은 시작과 끝이 같을 필요 없다는 걸.'


... 뭐 이런?"


웃음도 민망함도 아닌, 와락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았다.


"... 아직도 꿈꾸는 중이야. 왜냐면... 수명이 연장 됐잖아.

10년 보다 좀 더 늦어도 괜찮겠더라고."

"근데 선생님은 선생님 잘 어울리는데..."

"그런 말 하지 마, 작가인 날 만나보고 그때 이야기해"

그 아이가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음을 알았기에

그렇게 서둘러 유쾌하게 마무리했다.

돌이켜보면  그날 난,

나에게 이 이야기 좀 들어보라 하고 싶었던 건지도.


6학년을 함께 했던 나의 후배는

교직 3년 차에 1학년을 맡아 다시  나와 함께가 되었다.

고학년을 찰떡같이 주무르며

주고 받고 맛깔스레 요리해 대던 그녀는

유독 1학년에 쭈뼛대며 자신 없어했다.


저학년은 적성이 아니라며

두려움으로 움츠려 시작하더니

그해 유난히도 앓아대던 후배가 안쓰러웠던 것도 잠시,

역시나 나날이 적응해가며 제법 웃음을 보이기 시작했다.


1학기가 끝나고,

대견한 술 한잔을 건네며

"이럴 줄 알았어. 엄살은~ 이렇게 멋지게 해내잖아!"


... 나의 진심은 그녀에게 무엇보다 쓴 독주였나 보다.

갑자기 오열을 하던 그녀.

당황과 무안이 뒤섞여 있는 날 보며

"언니, 나 진짜 올해 인생 위기였어.

몇 번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나 몰라. 매일 밤마다 울며 잤어.

너무 학교 가기가 싫어서"

아이들에게 곧잘 장난도 치며, 반 자랑에 빠지지 않고

자기 반 아이 자랑, 새로 찾은 수업방식에 열을 올리던 나의 후배는

사실 밤마다 진실의 자아 앞에 무너졌었나 보다.


2학기는 그녀에게 날개가 달린 것만 같았다.

"언니, 언니! 너무 사랑해. 너무 고마워.

너무 좋아. 이제 애들이 너무 예뻐.

언니 말이 맞아.

언니 옆에 있어서 너무 좋다.

언니가 써 주던 편지들 보며 얼마나 울고 감동했다고...

언니 언니..."

대놓고 애교를 부리는 성격도 아닌 나의 후배는

하루하루 탐나게도 날아올랐다.


교사들이란...

너무도 예쁘고, 너무도 고맙고, 너무도 다행이어서...


우리 교실에 모여 수업 관련 작업을 하던 중,

컴퓨터를 유난히도 잘 다루는 그녀가 말했다.


난 아직도 내 길을 모르겠어.

어떻게 하다 보니 교사가 됐고,

어쩌다 보니 나름 잘해가고도 있는데

난 컴퓨터 관련 일이 너무 하고 싶거든.

가슴이 뛴다고.

... 아직 안 늦은 거 맞지?


"애야, 5년 차까진 우리 모두 같은 고민을 한단다.

그래도 사표는 넣어 두거라."

농담 삼아 던진 말 반. 그 뒤에 던진 나의 말 반은...

너의 꿈에 대해, 너의 빛남에 대해,

너의 멋짐에 대해, 너라는 사람이 보여주는 가치에 대해,

그런 것들에 대한 그런 말.


젖어들 듯 경청해 주던 넌 내게 불쑥 물었다.

"언니 꿈은 뭐였어?"

"나? 멋쩍게도 작가"

작가란 꿈은 왜 꼭 앞에

'어울리진 않지만', '부끄럽지만', '황당하지만', '터무니없게도'...

이런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는 용기 내어 뱉어내지 못하는지...


별다른 답을 하지 않던 나의 후배는

다음 날, 링크된 주소를 보내왔다.


'클릭'


교직원 작품 모집


...  "뭐냐?"

"언니, 언니 꿈을 응원해."

피식, 싱겁게 웃으며 난 오늘 마무리해야 할 업무 파일을 다시 열었다.

그렇게 또 한 번, 내 꿈을 '휴지통'에 넣고서.




휴지통을 비우지 않아 다행이다.


그러다 어느 날 울린 문자는



그 세 글자는...

휴지통에 들어 간

학창 시절의 꿈, 제자가 찾아와 준 꿈, 후배가 일깨워 준 꿈을

다시 복원시키게 했다.


어느 날은 우연이었고,

문자는 운명이었으며

꿈은 바로 나였다.


복원된 나.


key...


내 이니셜 key는 이번에도 이렇게 스스로를 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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