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독남 외동아들, 사촌 하나 없는 양가 하나뿐인 손자.
한 아이를 알기 전, 이러한 사실을 먼저 알게 된다면
수 십가지의 편견이 떠오르며 숨이 턱 막힐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건 ... 너의 이야기다.
외동이 늘어나면서 각종 통계자료와 교육서, 경험을 통해
제법 오래 전부터 외동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기 시작했고,
그 정의는 이제 지극히 상식수준의 정보가 되었다.
'이기적이고 사회성이 떨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외동에 대한 선입견.
편견인 듯 아닌 듯 자연스레 인정되는 진실같은 풍문.
처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날.
첫 날 생활에 대한 상담 전화 온 선생님께 내가 다짜고짜 물었던 말도
"혹시 너무 자기밖에 모른다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하진 않을까요?"라니...
전화 너머로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이 시기 애들은 다 이기적이죠."
이러고도 내가 교사란다.
유치 전문가 유치원 선생님 앞에서는 그냥 유난히 무지한 엄마여서 참 다행이다.
그 한마디가 어찌나 따뜻하고 위로가 되던지.
이것도 자격지심일까?
"이거 내거야." 한 마디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고
"내가 먼저 말할거야." 자기 말을 속사포로 재잘 거리는 귀여운 모습에도 걱정이 함께하고
이러다 멀쩡한 애 잡아대는 엄마가 될까 그것도 무섭다.
"티 없이 맑아요. 자기 생각에 주저함이 없어요."
칭찬의 말을 들어도,
"눈치가 없어요. 자기 생각만 주장해요"
라는 말로 굳이 해석해보며, 예방주사를 놓는 고장난 엄마가 될까 겁이 난다.
결국, 혼자인 네가 문제가 아니라
혼자인 널 기르는 내가 문제인 것을...
너의 이름에 들어가는 '시'자는 한자로 베풀시(施)다.
베풀어라, 베풀어라... 늘 네 귓가에 심어대느라
우리 아이 배 잘 부풀고 있는지 살펴보지 못한 듯도.
외동이라 응석받이란 소리 들을까,
쓸데없이 칭찬과 사랑에 인색했던 건 아닌지.
내 아가, 배는 잘 부풀고 있었니?
정작 '베풀시(施)'를 심어야할 곳은 '엄마란 이름 속'이었을런지.
형제가 없어 외로운 게 아니라
엄격한 엄마 때문에 외로웠던 건 아닐까.
요즘시대 형제란,
빵 한개를 둘이서 나눠 먹는 게 아닌
두 개의 빵을 하나씩 들고 즐겁게 함께 먹는 거일텐데.
양보보다 즐거움을 먼저 가르쳐주었어야 했다.
유난히 친구를 좋아하고,
여행을 가도 "누구네랑 가요?'를 먼저 묻는 널 보면
외롭다 눈물을 그렁대는 널 보면
때로 죄인같아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람 좋아하는 널 보면
파릇한 사람내음에 코가 시큰해져
그게 또 엄마는 참 좋더라.
혼자여도 같이 가면 되는거란다.
앞에 뒤에, 그리고 네 옆에 누군가 너처럼 혼자 걷고 있거늘
은은하게 다가가 손 닿는 짝이 되어주렴.
둘이 셋이 가는 누군가를 보면
"함께 가자"
진하게 다가가 팔짱 끼는 감초도 되어보렴.
편견은 반례를 통해 깨는 거란다.
네가 곧 그 반례임을.
그 과정은 닥달도 채근도 엄함도 아닌
유쾌함과 따뜻함과 다정함이란 걸 기억하길.
혼자인 아들에게.
1. 혼자여서 좋은 점을 찾기 보다 혼자여도 좋은 사람이 되렴.
2. 혼자여서 나쁜 점을 찾기 보다 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둘이 되어 줄 줄 아는 사람이 되렴.
3.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항상 경청하렴.
하지만 모든 사람이 너의 모든 말을 경청할 수만은 없다는 걸 명심하렴.
4. 눈치 보지 않되, 눈치 있는 사람이 되렴.
5. 다른 사람에게 너의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줄 필요는 없단다.
하지만 최소한 용기는 줄 줄 아는 사람이 되렴.
6. 경쟁은 나쁜 게 아니란다. 경쟁에 내몰렸을 때,
집에서와 다른 냉혹함에 실망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집착하지도 마렴.
경쟁도 결국 배우는 거란다.
7. 외롭다는 생각이 들때면, 누군가를 외롭지 않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하렴.
8. 혼자이기에 너에겐 더 많은 나눌거리가 있단다.
9. 혼자 남을까 무서운 널 위해, 오늘부터 운동을 시작하마.
10. 그래도?
음... 지금 동생이 생긴다면, 너의 놀이 상대가 아닌 키워야 할 대상이란 걸 기억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