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burn out To best self (2018-2021)
대학교 1, 2학년을 다녔던 나는 한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했다.
나름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한다. 그 덕에 배운 것도 느낀 것도 많았다.
웃기지만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1년간 다녔던 그 회사를 그만두고, 2학년 2학기에 중도 휴학을 했다.
나 혼자서는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다고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휴학했지만, 사실 딱히 뭘 제대로 한 게 없었다.
휴학할 때는 다 계획이 있었다.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나만의 프로젝트를 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스타트업 CEO들을 인터뷰하러 다니려는 계획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너무나 지쳐있었다. 거기다 돈이 없으니 당장에 돈을 벌 수 있는 것들을 했다.
고깃집에서 주 6일 풀타임으로 일해보기도 하고, 과외도 해보고, 단기 알바들도 나가보고 했다. 하지만 금세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지난 1년간 학업과 창업일을 병행했던 것이 이제 막 성인이 된 내가 버티기에는 꽤나 무리가 되었고, 나의 무능에 대한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히 할 줄 아는 게 없을 나이인데, 눈은 너무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근차근 한 걸음씩 내딛으면 될 것을, 욕심부리며 조급하게 달려가다 지쳐 쓰러져버렸다.
그렇게 입대 전까지 일어서지 못했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잡생각들을 떨쳐내기 위해 매일 집에서 게임만 했다.
친구들도 잘 안 만났다.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이렇게 무력해질 수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학창 시절 모든 시간을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것에만 몰두하다가, 그렇게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상태는 더 심각해졌다.
영화도 책도 글도 그 어떤 자극 요소도 내 곁에 두지 않았다.
새롭게 동기부여가 되면 분명히 나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때의 나는 자신감이 바닥을 찍었던 시기에 살았다.
어린이날 전날이었던 5월 4일, 이제는 어린이가 아니라서 놀이공원 대신 군대에 가야 했다.
군대에 가기 정말 싫었다.
다행히 입대 당일에는 내 처지를 체념하고 받아들여서 괜찮았지만, 입대 신청을 하기까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젊은 나이에 무엇인가 멋진 것을 이루고 싶었던 나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입대 신청을 해야 했다. 이렇게 군대에 가버리면 나의 20대 초반은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쓰레기처럼 사느니 군대라도 다녀오는 게 낫겠다 싶어서 미루고 미루다 입대 신청을 했다. 주변 친구들은 이미 입대한 후였다.
군에 입대하는 것이 정말로 시간이 아까웠고, 이 상황이 극도로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군 생활을 마치기 15일도 안 남은 지금, 내 20대 초반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발전했던 시기는 놀랍게도 군대에 있을 때이다.
군에 있으면서 군생활을 열심히 했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위해 열정적으로 살았다고는 자신한다.
모든 자투리 시간과 개인 시간을 나의 발전에 투자했다.
정말 운 좋게도 후방 부대에 자대 배치를 받고, 개인 시간 보장 수준이 육군 최고의 부대였다.
입대 후 반년 간은 책에 빠져 살았다. 일주일에 두 권 이상 읽으면서, 서평을 썼다.
친구의 권유로 그 서평들을 모아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운 좋게도 한 번에 합격했고, 이후 마음에 드는 책들은 브런치에 서평으로 남겼다.
글로써 나는 다시 마라톤의 출발선에 똑바로 설 수 있었다.
다시 나를 채워가는 시간을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
이후에는 글쓰기를 잠깐 내려놓고, 이런저런 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미적분학, 반도체공학, 미분방정식을 공부하면서 머리를 깨우고, 영어 공부도 시작했다.
하루하루 공부하는 습관을 잡아가다 보니, 드디어 프로그래밍에 다시 손댈 용기가 생겼다.
가장 자신 있지만, 나를 무력감에 빠지게 만든 주범인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그 어떤 공부보다 즐거웠다. 역시 나는 프로그래밍을 해야 했다.
그러던 와중 다시 친구의 권유로 창업경진대회를 나가면서, 다시 창업에 대한 공부도 시작했다.
이때 불이 붙기 시작했고, 또 이때 운이 좋게도 부대에서는 나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이전에는 경시했던 것들을 겸손한 자세로 다시 공부했다.
또 우연한 일로 다른 친구와 함께 창업을 위한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베스트 셀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1년 반이 걸렸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좋은 기회와 영감을 주고, 나는 그것들을 잘 잡았다.
나는 지금도 매일매일 한 걸음씩 걷고 있다.
다시 목표도 잡았다.
하지만 그때처럼 너무 멀리 보지 않는다.
목표는 목표로 두고, 현재에 충실히 살아갈 뿐이다.
꾸준함은 모든 것을 이기고, 하루하루에 집중하다 보면 분명히 내가 지금 아득히 보는 것들을 이뤄낼 수 있다.
괜히 욕심부리면서 두 걸음씩 걷지 않는다.
조금씩 보폭을 늘려가면서 천천히,
한 걸음씩.
* cover image source: Jonathan Klok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