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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B May 23. 2021

이퀄스 Equals

파아랗게 번지는 뜨거운 감정

습관처럼 자기 전 넷플릭스, 왓챠 메인 화면을 훑다가 홀린 듯이 본 영화. 개봉했을 때 당시 두 주연 배우 모두 호감이긴 하지만 포스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냥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왜 그랬을까. 최근에 봤던 얼마 되지 않는 영화들 중 가장 재미있게 봤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내용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마음이 울렁거릴 정도. 

배우 캐스팅부터 조명, 대사, 연출까지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다. 이미지 찾다가 다른 영화 후기를 몇 개 봤는데,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듯싶지만.. 보통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영화라 크게 놀랍지도 않다. 


불필요한 감정, 에너지 낭비를 전혀 하지 않는 미래가 배경인지라 모든 등장인물들의 의상도 같고 미니멀한 건물과 딱딱한 도시 분위기로 특별한 소품이나 미술적인 연출은 찾기 어려웠으나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 시작해보는 글.



조명


보통 색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할 때 푸른 계열의 색은 이성, 지성, 슬픔, 우울의 색으로 설명된다. 반대로 붉은색은 정열, 열정, 감정, 사랑의 색으로 설명된다. 뻔해 보일 수 있지만 영화 속에서 그러한 감정의 변화들이 조명으로 표현되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시릴 만큼 푸르고 하얀색으로 표현된다. 푸른 세상 속을 살아가던 사일러스에게 붉은빛의 기운이 번지기 시작한 순간이 있다. 건물에서 떨어진 동료를 본 니아의 작은 떨림을 목격한 뒤 우주선 출발 장면은 생중계해주는 야외 광장에서 니아를 바라본 순간 온통 푸르던 광장은 분홍빛으로 물든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밀려오는 격한 감정 변화를 긍정하기 시작한 두 인물을 중심으로 영화의 시작과는 완전히 다른 따뜻한 색감이 표현되어있다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감정 통제 오류로 다양한 감정, 특히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사일러스와 다른 감정이 억제된 동료들과의 차이 역시 조명으로 표현된다. 감정 통제 오류에 양성반응을 보였다고 이야기한 뒤 니아의 뒤를 쫓던 사일러스를 눈치챈 팀장이 사일러스에게 경고의 이야기를 할 때의 장면에서 이 차이가 확실히 보인다. 정확히 사일러스를 중심으로 번지는 붉은 조명은 온통 푸른 세상 속에서도 약하지만 부드럽게 퍼져간다. 



팀장과의 마찰 이후 서로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말하는 니아에게 너의 옆에서 모른척할 수 없다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순간 사일러스의 모습에 붉은 조명이 비춘다. 순간적인 조명의 변화는 니아가 먼저 자리를 떠나고 난 뒤에도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장소의 변화가 재미있는 점은 사일러스가 양성 판정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 니아에게 당신 역시 감정 통제 오류를 앓고 있지 않냐고 추궁 아닌 추궁을 할 때의 장소와 같은 장소라는 점이다. 



이 당시의 니아는 감정 통제 오류를 앓고 있음에도 사일러스의 말에 부정하며 그에게 선을 긋는다. 사일러스 역시 평범하고 이성적인 모습으로 니아에게 질문한다. 이런 둘의 모습 뒤로는 푸른 조명만이 있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색의 조명을 사용했다는 것은 분명 조명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두 사건을 전후로 두 인물의 감정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이 추측에는 힘이 실리게 된다. 

그렇다면 특히 사랑에 대한 감정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는 이성을 의미하는 푸른색과 사랑을 의미하는 붉은색의 조명만이 사용되는가? 그렇지만은 않다. 



감정 통제 오류 검사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만난 감정 통제 오류 2기 판정을 받은 조나스와의 대화 장면에서는 다른 색의 조명이 등장한다. 붉은색과 푸른색, 노란색, 초록색의 다양한 색들이 두 인물 뒤로 번져있다. 두 인물은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감정 통제 오류를 앓고 있다. 푸른색이 이성, 붉은색이 감정이라는 이분법적인 의미가 아닌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모두 다 다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만약 이 다양한 색들이 모두 감정이라면. 푸른색 역시 어떠한 감정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감정'이라는 것은 느끼는 게 되지 않는가? 음. 푸른색이 차가운 '감정'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그 감정밖에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감정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하나밖에 알지 못해 그것이 진실이고 정답이라고 믿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 통제 오류는 다른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 진다. 다양한 감정이 뿜어져 나와 스스로 그것을 다스리는 능력을 기르게 되는 주인공들과 다르게 한 가지 감정이 다른 감정을 집어삼켜버렸으니.



푸른 세상 속에서 붉은빛을 내보내던 사일러스는 니아를 잃었다는 생각에 그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억지로 잠재워버린다. 니아를 향한 사랑의 기억만을 간직하고 더 이상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 사일러스는 그럼에도 니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기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에서 주목할 점은 역시 조명이다. 다시 감정을 억제하는 차가운 이성만이 남은 사일러스와 감정의 변화를 그대로 느끼는 니아의 차이는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는 두 인물을 따라 번지는 조명으로 표현되었다. 




구도


사일러스가 감정 변화를 겪기 전후의 차이는 카메라에 담기는 사일러스의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영화 첫 장면인 출근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 속 사일러스는 카메라의 끝부분에 위치하거나 가운데일지라도 얼굴을 정확히 보기 어려운 풀샷으로 찍힌다. 



니아의 감정 동요를 목격한 뒤 집에 돌아온 사일러스 역시 혼란이라는 감정을 경험한다. 본인의 감정을 어느 때보다 가까이 느끼게 된 사일러스의 얼굴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다음 날 출근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일러스의 모습은 앞서 이야기 한 영화의 첫 장면과 비교했을 때 그 차이가 확연히 보인다. 샤워를 하는 사일러스는 영화의 첫 장면 화면의 모서리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화면 가운데 표정이 보이는 가까운 위치에 있다. 

사일러스의 감정에는 관심이 없는 누군가의 먼 시선과 같던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의 감정이 담긴 눈빛과 표정을 가까이 보게 되는 장면으로의 변화는 사일러스가 감정의 변화를 겪으면서 느끼는 혼란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한다. 

카메라 구도의 이러한 변화는 감정을 억제하게끔 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모습과 감정이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그의 모습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혼란의 감정을 마주하는 사일러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일 것이다. 


카메라 구도와 함께 카메라 흔들림 역시 사일러스의 혼란을 잘 나타낸다. 고정되어있던 카메라가 가장 처음 흔들린 장면은 사일러스가 감정 통제 오류로 치료소에 끌려하는 한 커플을 목격한 장면이다. 이 장면 이후 두 번째로 카메라가 흔들리는 장면은 건물 위에서 떨어진 동료를 목격한 장면이 된다. 사일러스가 감정 통제 오류 양성 판정을 받고 난 뒤에는 카메라가 흔들리는 빈도수가 급격히 증가한다. 




호박벌


"기체역학으로 보면 이 벌은 날 수 없어. 근데 벌은 그 원리를 몰라. 그래서 날 수 있지." 

실제로 호박벌은 날개가 몸에 비해 작기 때문에 몸을 공중에 띄울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작은 벌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날게 된다. 다른 벌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과학적으로, 이론적으로 날지 못한다는 한계를 미리 생각하는 순간 벌은 떨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날개를 진동하지 못할 것이다. 

호박벌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자신의 숨겨진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감정을 억제해야 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일러스와 니아가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영화 내용에 더 맞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니아는 호박벌을 유리컵으로 가둔다. 길이 막힌 호박벌은 유리컵 벽을 기어오른다. 그리고 유리컵을 뒤집어 세상으로 통하는 틈이 생기자 호박벌은 다시 날아오른다. 감정을 억제함을 강요받고 감정이 질병과 죄가 되는 작은 유리벽 안에 살던 사일러스와 니아는 사랑이라는 틈을 느끼게 되는 순간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오르게 된다. 




사소한 몇 가지

1. 이름


영화의 배경은 감정이 억제된 미래사회이다. 개인의 감정은 허용되지 않고 감정의 변화를 겪는 이들을 감정 통제 오류라는 병명으로 치료받게 한다. 영화 속 세상에서 감정의 억제만큼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노동력이다. 영화 속 개인은 사회의 중요한 노동력으로 평가받는다. 공동체의 어떠한 목표를 위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모든 이들은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각자 정해진 근무지로 향한다. 동료가 건물 위에서 떨어져 자살한 장면을 목격한 이들은 대체 노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무미건조하고 차가운 말을 내뱉을 뿐이다. 

개인이 단순히 하나의 노동력으로만 평가받는다는 설정은 인물들의 ID카드로도 알 수 있다. 근무지 문 앞에서 손목을 찍으면 삽입된 ID카드가 읽히면서 개인 정보 창이 뜬다. 이름과 직장명. 직업. 근무지가 사진과 함께 보이게 된다. 사진과 이름을 제외한 나머지 개인정보가 직장과 관련되어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름과 이름 옆 ID 번호이다. 처음에는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것인가 싶었지만, 성별, 직장, 나이대를 기준으로 여러 인물들의 ID를 비교해봐도 전혀 연관점이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름이다. 등장인물들은 이름과 ID 번호만을 가지고 있을 뿐 성이나 가족관계와 같은 흔하디 흔한 개인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한 단어로 이루어진 이름과 이름 옆에 각기 다른 숫자들. 어쩌면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을 구별하기 위한 숫자가 아닐까 싶다. 개인의 개성이나 존재를 긍정해주는 것이 아닌 하나의 노동력으로 사용하는 사회라면 이름이라는 것은 서로를 호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부여하는 것일 확률이 높다. 수많은 노동력들에게 각기 다른 이름을 지어주는 수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이 맞다면, 사일러스는 '사일러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 중 618429877번째 사람이 되는 것이다. 



2. 인류 대전쟁과 인간 존재 의미

사일러스와 니아가 태어나기 한참 전 지구는 인류 대전쟁으로 99.6%가 폐허가 된 지구에서 남은 생존 지역 역시 반도국과 선진국으로 나누어져 버리게 된다. 사일러스와 니아가 사는 곳은 선진국이다. 선진국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반도국은 폐허 건물이 가득한 원시 지역이다. 반도국에 사진 사람들은 과거 인류 인자를 가진 결함인이며 감정 통제 오류를 가지고 있다. 선진국의 사람들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노동력을 중요시한다. 구체적으로 그 목적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우주여행으로 'TK41' 행성으로 이동하여 '인간의 존재 의미'를 찾는 것이다. 정말 TK41 행성으로 가면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인간 존재 의미에 대해 찾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찾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전쟁으로 엉망이 된 지구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 올린 빌딩 숲과 규칙들 속에서도 아직 이들은 이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답은 오히려 먼 우주가 아닌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인간은 다른 이들을 향한 자신의 변화하는 감정과 타인의 애정을 느끼면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는다. 공동체의 단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잊고 기계처럼 움직이면서는 존재 의미를 절대 찾을 수 없다.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어떤 존재를 위해 살아있음에 감사하지만 동시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두 인물은 아마 선진국 사람들이 평생 찾을 수 없을 진실을 손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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