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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Dec 01. 2023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상투적인 인사말이라도 해야 할 때는 해야죠.  

"いつもお世話になっております."

'항상 신세 지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 재직 당시, 

현지 관계자와의 전화, 이메일 소통 시에 박제돼 있던 첫 문장이다. 

뚜껑을 열어보면 딱히 신세 지고 있는 것도 없고, 심지어 어떤 때는 내가 상대의 간곡한 부탁에 대한 피드백을 줄 때도 있는데 위 문구는 변함이 없었다.


마지막 문장도 마찬가지다.


"いつものご協力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항상 협조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소 거추장스러운 인사말이라고 여겼던 적도 있지만 그때의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 탓에 

여전히 나는 업무적으로 접하는 모든 사람들과 이러한 문구를 포함해 소통을 이어나간다. 

한 사람과의 반복된 소통에서도 예외는 없다. 

 

기계적인 문구이다 보니 내 진심이 과연 어느 정도 반영돼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제외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상투적인 문구의 효과를 명확히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상대의 실제적인 협조를 얻기가 수월해진다. 

상대와 나 사이의 과거의 데이터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기 때문이다. 

여태 한 번도 도움을 준 적 없는 상대는 이러한 문구들로 나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을 갖는다.

도와준 적이 없는데,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은 대출을 받은 셈이다.    


또 어떨 때는 상대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상대의 무능과 비협조라는 불쾌한 상황에서는 메일에도 날이 서있을 수밖에 없다. 

날카로운 문장은 상대의 감정을 베이게 한다. 그리고 그 화살은 부메랑이 되어 어김없이 돌아온다. 

때문에 일단 '항상, 고생 많으십니다', '항상, 협조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을 쓰게 되면 나도 모르게 

상대가 나를 위해 애썼던 부분에 대해서 은연중 곱씹어 보게 되면서 부드러운 표현을 고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셀프 진정 효과가 있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세 가지 인사말을 마법의 문구라고 칭하고 싶다.

진심이 있던 없던 인사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지는 못해도, 적어도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있어 기대 이상의 진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점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는 낯선 상대일수록 효과가 더 크다.  


누구나 밥 먹듯이 쓰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글쎄.. 

40년 이상을 살아본 내 경험으로는 이런 표현을 잘 쓰는 사람들은 많이 보지 못했다. 


미안해야 할 상황에서 미안하다는 말 없이 어물쩍 넘어가거나,

고맙다고 해야 할 상황을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고,   

분명 처음 만났는데 그 흔하디 흔한 '안녕하세요'를 하지 않은 경우들을  

훨씬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00 교수가 mbti 검사를 하고 싶다고 하니 연락해 보세요" 


시작부터 명령이었다. 

내가 mbti를 해줘야 할 의무라도 있던가? 

나의 시간과 나의 전문성을 왜 다른 사람이 함부로 활용하는 거지? 내 허락도 없이? 


갑의 요구이기에 일단은 수용한다. 

최소 한 번은 그냥 넘어가자 주의다.  


"네, 연락해보겠습니다" 


씁쓸한 마음으로 00 교수에게 격식을 갖춘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인사말과 내 소개를 포함해 편하신 일시를 여쭙는 내용이었다. 

혹시나 무례한 뉘앙스가 있을까 싶어 웃음 이모티콘도 고민 후 추가했다. 

부탁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누가 봐도 내가 어려운 부탁을 하는 상황 같았다. 


"제게 파일을 보내주시고 그 내용을 줌으로 해주시지요?" 


8줄에 달하는 내 문자에 대한 심플한 답문이었다. 




전화번호부에 등록되어 있지 않는 사람과의 첫 소통이었지만 그 흔한 인사말도,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에 대한 미안한 표현도 없었다.  그저 맡겨둔 것을 찾는다는 당연하고도 무미건조한 뉘앙스였다. 

갑자기 너무 하기 싫어진다. 


교수들의 특권의식으로 매도하지는 않으련다. 

내가 접한 다른 교수님들 중에는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다. 


상상이지만 아래의 답문을 받았더라면,, 

아무리 무례하고, 귀찮은 부탁이었더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응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선생님도 바쁘실 텐데 이런 부탁을 드리게 됐네요.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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