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건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나는 안 해!'였다.
말보다는 글이 편해서이기도 했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얼굴이 노출된다는 부담이 가장 컸다.
그렇게 브런치, 블로그와 같은 텍스트 기반의 플랫폼을 나의 정체성으로 삼고
부단히 업로드를 해왔다.
하지만 노력의 절대적인 양도, 마케팅 스킬도
해당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사람들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위해 프리랜서가 된 지도 3년이 훌쩍 넘었다.
새삼 놀랍다.
반신반의로 '도전'한 일이었다.
꽤 오랫동안 손가락만 빨지도 모른다며 짝꿍에게 괜한 으름장을 놓기도 했지만,
사실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자기 확신 부족에서 비롯된 소리였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어찌어찌 아등바등하는 과정에서 다행히 마통을 만들지 않아도 될 정도의 밥 벌이는 할 수 있었다.
잘 나가던 사업도 정리한다던 시기에, 사업자를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하지만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 선택한 프리랜서였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난 여전히 '갑의 그늘'에 있다.
출퇴근만 하지 않을 뿐, 타인이 쥐고 있는 목줄에 의존하는 결국은 또 다른 형태의 피동적인 삶이라는 사실이
나를 낙담시켰다.
위기는 기회를 만든다고 했던가.
이쯤에서 또 다른 대안을 찾아야만 한다고 느끼고 있다.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나만의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쥐어짜고 쥐어짜고 쥐어짰다.
투자는 젬병이고, 재취업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고, 스마트스토어를 해서는 내 인생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게다가 요식업은 '장사의 신'을 너무 본 탓인지 결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일찌감치 선을 그어둔 상태였다.
결론은 하나였다.
결단코 '나는 안 해'라고 외쳤던 유튜브에 대해서 '그냥 해볼까?'라는 커다란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 나이 먹고 뭔들 못해. 일단 뭐라도 해봐야지'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채널부터 만들고 보라는 유튜브 교재의 가르침에 따라 계정부터 팠다.
언제나처럼 '내 채널이 엄청 유명해졌을 때'라는 단 꿈에 젖어들었다.
'부읽남' '런업' '셜록현준'처럼 내가 구독하는 유투버들의 닉네임을 되뇌며 나 역시도 사람들에게 불리기 좋은 이름을 정했다.
이름을 정하고 나니 휑한 대문이 마음에 걸렸다.
미리캔버스에서 여러 디자인을 참고해서 배경 이미지를 만들어 업로드했다.
이 과정에서 수 십 번의 업로드, 삭제, 수정, 재업로드가 반복되었다.
책에서 분명 그런 것들에 힘 빼지 말라고 했는데, 영락없이 초보가 하는 실수 매뉴얼을 따르고 있었다.
하지 말라는 걸 해서 초보일지도. (ㅎ)
나름 채널이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나니,
이제는 비어있는 동영상 콘텐츠가 마음에 걸린다.
여기서부터는 '완전 초보' 보다는 조금 발전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콘텐츠'를 위해서는 기획 단계에 온 심혈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표를 해놨으니,
기어코 첫 영상까지 올려야만 한다.
이 글은 내 다짐을 확고히 하기 위한 일종의 서약서인 셈이다.
시작은 늘 설렘과 두려움이라는 아찔한 감정을 동반하지만,
루틴이 되는 순간은 결국 또 '나 자신과의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그 길을 걸어보려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끈기 하나는 있는 편이니, 그래도 계속 해보자 싶다.
누가 그랬던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됐다면, 더 하라는 뜻입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