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남자들은 매년 같은 실험을 반복한다. ‘서류 봉투 머리 가리기’ 프로젝트다. 3초 정도 햇빛은 피하는 듯싶지만, 곧 얼굴은 구워지고 팔은 저린다. 효과? 제로.
여성들은 양산을 든다. 우아하게, 효율적으로, 그리고 현명하게. 그런데 남자는? “양산 쓰면 체면 깎인다”는 이상한 논리로 태양과 맞서 싸운다. 결과는 땀범벅, 그리고 무늬 없는 팔근육 자랑. 며칠 전, 아내 양산 아래에 슬쩍 숨어 걷다가 깨달았다. “왜 남자 양산은 없는 거지?”
“모자 쓰면 되잖아”라는 아내의 조언은 듣기 좋지만, 현실은 달라. 모자는 머리만 가린다. 양산은 내 얼굴, 어깨, 그리고 체면까지 보호한다. 모자와 양산은 비교 자체가 불공평하다.
치마도 마찬가지다. 시원하고 편안하다. 그런데 남자는 입지 않는다. “반바지 있잖아”라고? 그건 어디까지나 운동용, 혹은 휴양지 전용이다. 사무실이나 거리에서 반바지를 입으면, 남자는 곧바로 ‘개혁적 패션 도전자’로 분류된다.
치마가 불편하다고? 계단에서 신경 쓰이고 범죄 위험도 있다고? 남자가 치마 입으면 이 걱정은 반으로 줄어든다. 몰래카메라 찍어도 법과 동네 시선이 즉각 응징한다. 치마 입은 남자에게 누가 감히?
결국 문제는 옷이 아니라 고정관념이다. 남자니까 치마 못 입고, 양산 못 쓴다는 이상한 체면과 자존심. 그런데 세상은 다르다. 스코틀랜드 남자는 킬트를 입고, 남인도 남자는 룽기를 입으며 당당히 걷는다. 미국에선 남자 치마 전문 디자이너까지 등장했다.
남성들이여, 이제는 슬슬 현실과 화해할 때다. 양산 쓰고, 치마 입고, 땀과 체면 사이에서 현명하게 살아보자. 시원함은 덤이고, 남성성은… 그저 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