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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과 쑥

by 문용대


난데없이 단군 신화 속에서나 등장하던 까마득한 옛이야기 마늘과 쑥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하긴 지금이 바로 마늘과 쑥이 가장 푸르러 보이는 계절이 아니던가. 그 푸르름 속에 담긴 씁쓸한 맛과 질긴 생명력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마늘과 쑥. 그것은 한낱 식물이 아니다. 고대로부터 인내와 정화, 그리고 생명의 상징으로 우리 곁에 머물러온 존재이다. 단군 신화에 따르면,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를 원하자 환웅은 쑥과 마늘을 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이것만 먹으라고 했다. 호랑이는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갔지만, 곰은 끝까지 인내하여 아름다운 여인 웅녀가 되었다. 이 서사는 혹독한 시련을 거쳐야만 비로소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인간의 근원적인 깨달음을 담고 있다.


곰은 왜 하필 마늘과 쑥을 먹어야 했을까. 어쩌면 마늘의 강렬한 매운맛은 짐승의 야만적인 본능을 억누르는 고통의 은유였을 것이고, 질긴 쑥은 현실의 쓴맛을 감내하며 인간적인 성찰로 나아가는 인내의 상징일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정화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기꺼이 그 쓴맛을 받아들였다.


이 두 식물은 놀랍게도 의학적으로도 인간에게 이로운 존재다. 마늘의 알리신은 강력한 항균 및 항바이러스 작용을 해 몸의 독소를 제거하고, 혈액순환을 돕는다. 쑥은 따뜻한 성질로 몸을 정화하고, 특히 여성 건강에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쓴맛과 매운맛을 참고 먹어야 하는 두 식물은 결국 인간의 몸을 이롭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고통스러운 인내의 과정이 결국에는 새로운 생명과 건강을 불러온다는 진리를 보여주듯 말이다.


한 정치인이 말하는 마늘과 쑥


나는 난데없이 회자된 두 사람의 악수를 보며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야당 대표와 여당 대표, 정치적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순간, 그것은 단순히 한 번의 인사가 아니다. 한때 “악수는 사람과 한다.”라고 말하며 상대방에게 날카로운 칼날을 겨누었던 여당 대표. 그리고 그에게 "당 대표 되고 나서 마늘과 쑥을 먹었다. 아직 100일이 안 됐다."는 뼈 있는 농담을 건넨 야당 대표. 이들의 만남은 그 어떤 정치적 선언보다도 강렬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악수는 원래 평화와 신뢰의 상징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상대방에게 무기가 없음을 보여주며 평화의 의지를 다지는 행위에서 시작됐다. 오른손을 내밀어 ‘나는 당신을 해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악수는 화해와 합의를 의미하는 보편적인 행위가 되었다. 오랜 갈등이나 대립 끝에 악수를 하는 건 이제 그만 싸우고 함께 가자는 조심스러운 약속의 의미를 담는다.


두 사람의 악수 또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야당 대표가 "마늘과 쑥을 먹었다"라고 말한 것은 마치 단군 신화 속 곰이 쓴 마늘과 쑥을 씹듯, 정치적 반대자와 손을 맞잡는 행위가 자신에게도 쉽지 않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인내의 과정이었음을 넌지시 말한 것이다. 이는 곰이 짐승의 본능을 버리고 인간이 되려 했던 것처럼, 서로의 날 선 감정과 과거의 대립을 인내하며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쓴맛을 참고 나아가는 길


두 사람의 악수는 단순한 정치적 쇼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대립을 용인하고 미래의 협력을 기대하는, 상징적이고도 복잡한 의식이었다고 생각해 본다. 그들의 악수는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과거의 짐승 같은 갈등은 이만하고, 이제는 인간적인 관계로 나아가자." 야당 대표의 발언에는 과거에 대한 불편함의 표현과 동시에 관계 변화에 대한 기대가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그리고 여당 대표는 과거 자신의 발언을 스스로 뛰어넘어, 화해의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양당 간의 관계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려는 의지를 보였다고 본다.


정치적 반대자와의 악수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쓴 마늘과 쑥을 먹는 것보다 더 쓰디쓴 경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고 손을 맞잡았을 때, 나는 그 안에서 짐승의 본능을 버리고 인간으로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두 사람의 용기를 본 듯하다. 그 용기는 결국 그들 자신에게도,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쓴맛을 참고 먹어야 하는 마늘과 쑥이 결국 인간의 몸을 이롭게 하듯, 두 사람이 불편함을 참고 악수를 하는 행위 또한 결국 서로에게 이로운 결과, 즉 더 건강한 정치와 사회를 위한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쓴맛을 이겨내고 푸르게 솟아나는 마늘과 쑥처럼, 우리 정치에도 낡은 대립을 넘어선 새로운 성찰과 화해의 기운이 깃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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