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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만큼의 변화

변화를 위해서는 당위와 명분이 필요하다.

'왜'를 인식하고, '이유'에 대한 공감이 느껴져야 움직인다. 

변화의 이유와 변해야 하는 상황을 인식하면, 다음 단계는 이전과는 다른 이행만이 남는다. 선택의 문제다.

명분이 약하거나 이유에 온전히 동의가 되지 않을 땐, 변화를 위한 선택으로 연결이 어렵지만 그 흐름에 올라타 보면 다른 게 보일지도 모른다.


변화는 생존 때문이기도 하고, 가능성의 확장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가능성의 확장으로 변화의 움직임이 만들어지면 좋겠으나 ‘변화하지 않으면...’이라는 절박감이 계기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변화를 벅찬 시작으로 마주하게 되는 이유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이를 통해 성장 가능성을 넓혀왔다면 달라질 무언가에 대한 설렘의 기대가 크다.

반면, 변화의 빠른 속도에 밀려 어쩔 수 없었다는 인식이 크고, 변화를 위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이 손실을 줄이는 기준으로 삼는 경우라면 변화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게 일상이 된다.


변화와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그 속도에 가속도가 더해진다. 기울어짐도 경사가 급하다. 

가속도에, 급경사에 놓여 있으면 공감할 이유보다는 당위가 강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즉 생존에 밀린 변화의 결과에 주목하게 된다. 

속도와 과거 경험에 비추어 예상되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어야 생존력이 강화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례 없이 빠른 속도라고 하나 일상을 둘러보면 변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 더 많다. 

도로나 건물은 멈춘 듯하고, 달라진 모습은 잘 안 보이며 고정된 벽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늘 마주하는 일상 공간에서 만나는 변화는 하루에 몇 미리 정도 자란다는 머리카락처럼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늘 그곳에서, 같은 시선에 익숙해져 있다면 변화할 이유는 없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공간이나 난생처음 가 본 공간을 지금의 일상 공간과 비교하면, 그 변화의 정도와 속도에 놀라게 된다. 속도는 시간과 거리를 필요로 하니 변화의 속도를 체감하려면 얼마나 걸렸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변하지 않거나 변하려 하지 않은 것들, 변화로 인식한 것만큼만 대응한 것에서는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차이를 느끼려면, 그 느낌을 변화로 체감하려면 ‘필요한 만큼'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 변화해야 한다. 

'원하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은 비교의 틀에서 벗어나 있게 하고 흔들리지 않을 지향을 명확히 하며 나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원하는 만큼'의 수준은 나만이 알고, 나만이 정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사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이유를 만들어 내는 생각이다. 

변화를 즐길 수 없고 변화에 끌려 다니며, 늘 그 속도가 빠르다고만 느낀다.


여전히 큰 과제가 남아있다. 

관심을 갖고 흐름을 살펴, 다름이 만들어 낼 차이에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해진 시기다. 

외부의 변화에 더 큰 변화로 잘 대응한다 해도 앞으로 또 다른 변화 요인이 만들어 내는 명분과 당위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당위와 명분이 충족되어야 움직일 수 있다면, 인식하고 동의해야 하는 하나의 단계가 더 만들어져야 하고, 움직임의 방향과 폭과 속도도 비교해 챙겨봐야 한다. 

따라가는 움직임과 그로 인한 속도는 앞서 오는 변화의 파도에서 벗어나기가 늘 힘들다. 


방향을 먼저 정하고 곧게 바라보며 스스로 움직여 당위와 명분을 흩뿌리며 주도해 나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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