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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Mar 02. 2022

아이에게 남들처럼 비싼 인형을 사주지 못한 부모의 선택

일본 시즈오카에서 본 덩굴 인형



3월 3일은 일본에서 '히나마츠리(雛祭り)' 라고 부르는 중요한 날이다. 딸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기원하는, 일종의 '여자아이들을 위한 어린이날'이라고 할까. 어른들은 축하와 소망의 마음을 담아 아이들에게 알록달록한 치라시 스시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한 달 전부터는 '히나닝교雛人形' 라고 하는 인형을 꺼내어 집안을 장식하기도 한다. 


곰인형이나 토끼 인형과는 달리, 귀여움이나 사랑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듯한 히나 인형. 가격이 비싸 일본 거주 외국인들에게 문화충격을 안겨 주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값어치는 보통 1) 인형 장식에 얼마나 특별한 공이 들어갔는가 2) 인형 제단이 얼마나 높은가에 따라 좌우되는데, 오며 가며 구경한 바로는 100만 원부터 1000만 원이 넘는 인형까지 가격대가 만만치 않다. 내 주변에서는 보통 1~3단 사이의 인형 제단을 100~400만 원 선에서 장만하는 것 같다. 





서민인 내 입장에서 헉 소리 나는 가격이기는 하지만 이 문화를 불필요한 허례허식이라 비판하고 싶지는 않은 이유는,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서구식으로 획일화되기보다는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값지게 여기고 그것을 지켜 나갔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에 정원과 대문을 장식하는 일에도, 핼러윈데이에 코스튬을 구입하고 파티를 여는 일에도 시간과 비용과 정성이 든다. 남의 나라 명절도 살뜰히 챙기는 마당에 일본 사람들이 자신의 명절을 챙기는 것을 내 기준으로 재단해 좋니 나쁘니 입을 열고 싶지는 않다. 전통과 허례허식 사이에서 적정 선을 찾아가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물론, 누군가가 "외국인이라도 일본에 살면 일본 문화를 따라야지. 제대로 된 인형 제단을 장만해서 우리의 방식으로 네 딸의 미래를 축복하렴." 하면 피곤해지겠지만 말이다. (다행히도 내게 자식이라곤 아들 한 명뿐이다.)

어쨌든 나에게 히나마츠리란, 관찰하기 흥미로운 문화이면서도 '초기 자금(?)이 많이 들긴 들겠다' 싶은 날이다. 


지금 시대야 대도시에서 미니멀한 형태로 살아가는 가정이 많고, 여기에 발맞추어 적당히 형식을 갖추면서도 의미를 되새길만한 컴팩트한 히나 인형이 많이 나온다. 마론인형, 디즈니 등 다양한 캐릭터와 콜라보 한 제품도 있어 인형을 취향껏 선택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과거에는? 히나 인형 선정과 구입에 공을 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의 미래 행복을 간절하게 소망한다는 의미이며, 인형 제단의 값어치로 아이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증명하거나 가족/이웃 간에 미묘하게 경쟁을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몇백만 원에서 몇천만 원까지 넘나드는 제단을 척척 사는 집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하기 어려운 집안도 있다. 한두 푼이 아니니 대부분의 평범한 집안에서는 부담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럴 때의 부모 마음은 어떨까? "우리 형편에 맞게 작은 히나 인형을 장만해서 축하해 주자." 하는 집안도 있겠고, "딸의 미래 행복을 위한 거라는데, 눈 딱 감고 남부럽지 않은 걸 사자. 우리 애 인형만 초라하면 안 되잖아." 하는 집안도 있었을 것이다. 

"딸자식 멋들어진 인형도 못 사주고..." 하며 자책하는 부모, "반드시 부자가 되어서 아이 물건만큼은 가격표 안 보고 사주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다짐하는 부모도 있을 수 있다. 


반면 전혀 다른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히나 인형? 그게 뭐라고. 우리가 만들면 되지!" 하는 사람들이다.


취재 차 갔던 시즈오카현 이나토리(稲取) 지역 어른들이 그랬다. 그곳에서 나는 히나노야카타(雛の館) 라는 작은 예술관에 방문했는데, 히나 인형 덩굴 장식을 전시하는 공간이었다. 

'인형 제단이 아니라 덩굴이라고?'

인형 덩굴이란 대체 어떻게 생긴 물건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말 그대로 인형이 실에 주렁주렁 매달려 덩굴식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모빌 같기도 하고, 소품 같기도 한 인형 덩굴이 전시실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취재를 돕기 위해 나온 직원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부터 히나 인형 제단은 아주 비쌌어요. 신분제도가 있던 더 먼 과거에는 부유하고 지체 높은 사람들의 소유물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여윳돈이 없어서 제단을 사기 어려웠어요. 그렇지만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마음만은 똑같잖아요?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히나 인형을 직접 만들어서 실에 달아 장식했어요. 

인형은 주로 어머니가 만들었지만 이웃 사람들이 낱개의 인형을 만들어 선물해 주기도 했어요. 마을 사람 모두의 소망이 담긴 거죠. 여기에 쓰인 천은 모두 각 가정의 자투리 옷감입니다. 하지만 기모노를 만들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 귀한 천인 것만은 분명하지요. 

인형 제단 살 돈이 없어 시작된 일이지만, 이제는 이것이 특별하고 독특한 문화가 됐어요. 만약 마을 사람 모두가 고민 없이 값비싼 인형을 구입했다면 우리는 이런 멋진 전시를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이나토리 사람들의 신선한 선택에 입이 떡 벌어졌다. 실에는 지금까지 봐오던 히나 인형과는 달리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인형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는데, 그 모습 하나하나가 무척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가마니 쥐(俵ねずみ)는 가마니에 든 쌀처럼 먹거리가 풍족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와 더불어, 열심히 일하는 쥐처럼 세상에서 자신의 쓰임을 찾아 성실하게 살아가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세모 모양의 인형은 약을 종이에 넣어 삼각형으로 싼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라는 뜻이란다. 눈이 붉은 토끼는 액운에 맞서는 의미. 거북이는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했다. 인형 하나하나에 부모로서의 소원을 불어넣은 것이다. 


달려 있는 인형의 종류는 비슷비슷했지만 같은 '쥐' 라 해도 모두 달랐다. 집집마다 표현하고 싶은 모양, 선택하는 천의 종류가 제각각이니 말이다. 부모가 히나 인형의 '소비자'가 아니라, '창작자'로 한 발 나아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과연 예술관에서 전시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덩굴은 내가 봐온 그 어떤 히나 인형 제단보다 아름다웠다. 마음에 전해 오는 울림도 쇼핑몰에 전시된 인형 제단을 볼 때와는 달랐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행복을 바라는 날'이라는 히나마츠리 본연의 의미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과는 다른 문화 속에서 성장했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릴 적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선생님은 준비물로 '낱말 카드'를 준비해 오라고 했다. 알림장을 본 엄마는 커다란 가위를 가져와 슥슥 종이를 잘랐다. 그런 다음 나에게 알려주고 싶은 낱말을 차근차근 골라 써넣었다. 

며칠 후 카드를 들고 학교에 가 보니 친구들은 모두 서점에서 산 빤질빤질한 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다. 쉽게 구겨지지 않게끔 깨끗하게 코팅된 카드. 손이 다치지 않도록 모서리는 둥글게 잘려 있고, 낱말 옆에 그림까지 그려져 있는 카드였다. 나는 생각했다. '아, 저런 카드를 팔기도 하는구나.' 


엄마가 왜 카드를 사서 준비해 주지 않았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첫아이 양육이라 그런 카드를 판다는 사실 자체를 몰라서였을 수도 있고, 매달 정해진 생활비 안에서 살림을 꾸리다 보니 준비물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엄마는 신문 광고 전단지를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메모지가 필요하면 잘라 쓰고,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하면 스케치북 대신 꺼내어 주던 사람이니 그럴 가능성도 농후하다. 


어쨌든. 엄마의 낱말카드를 본 선생님은 이나토리에서 덩굴 인형을 본 나만큼이나 신나 했던 기억이 난다. 

무언가를 사기는 쉽지만 정성 들여 만들기는 힘든 거라고. 서점에서 파는 낱말카드는 학생 한 명 한 명이 아는 낱말과 모르는 낱말이 뭔지 모른 채로 다 똑같이 찍혀 나온 거지만, 민지가 갖고 온 카드는 엄마가 민지가 하는 말과 쓰는 글을 잘 관찰했다가 '이 말도 배웠으면' 하는 말을 담은 거라고. 사려고 해도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카드이고, 여기 적힌 낱말을 잘 익혀 나가면 앞으로 국어 실력도 쑥쑥 늘 거라고 말이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수많은 낱말에 대한 이해나 어휘력이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떻게든 글을 쓰고 책도 낸 걸 보면 선생님 말씀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렇다. 고급 낱말카드 세트(?) 를 가졌다고 해서 고급 낱말을 쓰는 어른이 된다는 보장도 없고, 종이에 매직으로 쓴 낱말카드를 가졌다고 해서 앞으로 살아가며 빚어낼 말과 글이 볼품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히나 인형 덩굴도 그렇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아이를 위해 마음 다해 만든 물건. 바코드가 없는, 그리하여 값어치가 얼마인지 측정할 수 없는 물건. 하지만 그 물건의 가치가 몇백만 원짜리 인형 제단보다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인형 덩굴을 선물받은 딸의 미래가 인형 제단을 선물받은 딸의 미래보다 반드시 불행하다고도 할 수 없다. 아이의 행복을 기원하는 진심의 무게만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전부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력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 모두 다 함께 가난해지자는 뜻은 아니다. 그저, 각 집안의 '경제 사정' 이 흘러넘칠 정도로 부유하지 않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다는 의미다. 부모가 태도로 보여주는 사랑과, 가격으로 측정되지 않는 마음속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아이가 아들이라는 이유로 나는 히나마츠리나 히나 인형의 세계로부터 한 발 떨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히나 인형' 은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허리를 휘게 할 정도로 비싸 등골 브레이커라는 별명이 붙은 옷, 천만 원에 달하는 유아 외국어 전집 등등. 아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소지품이며 교육 상품은 1단, 3단, 5단, 7단, 108단에 이르기까지 층계처럼 나누어져 있다. 제단을 파는 사람들은 말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아이의 미래에 관한 것이잖아요. 아끼지 말고 좋은 거 하나 장만하세요." 

하지만 그 말에 동참해 모두가 108단짜리 히나 인형 제단을 갖게 된다면, 사람들은 기어이 1080단짜리 제단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이 아이의 더 크고 확실한 행복을 기약하는 방법이라 믿으며. 


출산을 망설이는 내 친구들은 이 '또 다른 히나 인형'의 수와 종류가 너무 많아 아이를 낳기 무섭다고 한다. 히나 인형 제단을 하늘 높이 쌓아 올리며 '이 정도는 해야지', '이렇게 해야 아이가 행복하게 잘 자라지' 하는 사람들 속에서 아이 키울 생각을 하면 막막하다는 것이다. 

무척이나 공감 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미 아이를 낳아 버린 나는 망설이기에는 한참 늦어 버렸다. 그런 내게 일본 작은 마을에서 열린 덩굴 인형 전시와, 전시를 보며 떠오른 과거의 기억은 부모로서의 내면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 내가 가진 것 안에서 아이를 키워도 괜찮다는 사실. 

- 하다못해 종이에 쓴 낱말카드를 쥐여줘도 아이들은 잘 자란다는 사실. 

- 108단짜리 인형 제단으로 아이의 행복을 기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나도 아이에게 그것을 줄 필요는 없다는 사실. 

- 오히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상황과 기준에서 아이의 행복을 기원할 때, 그것이 귀중하고도 새로운 문화가 된다는 사실. 

- 단,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애정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초보 엄마는 이 모든 사실을 고운 실에 꿰어 간직해 본다. 

히나마츠리를 맞아, 세상 모든 아이들의 행복을 기원하며.







+덧)

이 전시에서 또 하나 놀라웠던 부분이 있다. 벽면에 달려 있는 커다란 그림이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전시를 인상 깊게 관람한 미대 학생이 자신의 감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란다. 학생은 그것을 졸업 작품으로 제출했고, 졸업 전시회가 끝난 후에 이곳 전시관에 기증했다. 예술관은 그 그림을 전시의 일부로 수용했다. 전시는 더욱 풍성해졌다.  


(아이 양육과는 무관한 이야기이지만) 나도 최근에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누군가가 내 책을 읽고 쓴 리뷰를 볼 때 그렇다. 책을 읽고, 내용에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더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표현해 주시는 분들을 볼 때. 나는 그분들이 내 책의 의미를 넓히고 부족함을 채워 주시는 것 같은, 소비나 쇼핑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채움'을 느낀다. 블로그나 브런치 글에 달아주시는 댓글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세계가 뒤틀려 있을 뿐, 인간은 본디 자신이 지닌 재화만큼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진정 어린 교류와 따스함 속에서 삶의 만족을 얻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여러모로 참 감명 깊었던 전시관. 뭔가를 쉽게 까먹어버리는 성격이라! 이 기억과 이 기분이 날아가기 전에 어서 글로 붙잡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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