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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Jul 04. 2022

CCTV없는 유치원에서의 3년

카메라를 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여름방학이 가까워 온다. 이번 방학이 끝나면 아이는 또 얼마나 자라 있을지. 초등학생이 되어서 맞는 내년 방학은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하며 지금 이 순간의 아이 얼굴을 더 오래, 천천히 바라본다.


시뽀는 티끌 하나 없이 맑고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5세 인생에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없지야 않겠지만, 아직은 큰 좌절이나 슬픔이나 절망을 겪은 적이 없다. 가족과 이웃, 선생님, 친구들의 부모님 등 주변 사람들은 아이에게 하나같이 우호적이다.

'나쁜 사람'의 존재도 알지 못한다. 알고 있는 악인이라고는 호빵맨에 나오는 세균맨이나 울트라맨에 나오는 괴수 정도가 전부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자신을, 자신의 친구들을 아끼고 소중히 대한다고 생각한다. 참 좋~을 때다 ㅎㅎ


하지만 온정과 사랑으로 가득한 지금의 상태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엄마 품에 안기거나 아빠 손을 잡고 놀이터에서 만나던 아이들은 점차 보호자의 시각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할 테다. 좋은 벗과의 친밀한 관계는 삶에서 가장 가치로운 경험이 되기도 하겠지만, 뒤틀린 사람과의 일그러진 관계는 아이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힐 것이다.


또래들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다. 어떤 어른들은 아이들까지 범행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 어른은 때론 교육 시설 내부에 있는 사람이다. 원생들에게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일삼는 원장, 급식에 정체불명의 이물질을 넣는 교사, 장애 아동 보호시설에 근무하며 자신이 보호해야 할 아동을 추행하는 직원 등. "그렇게 아이가 싫으면 왜 그 직업을 택하셨어요? 차라리 다른 일을 하지 그러셨어요."라고 하고 싶은 사건이 한국과 일본을 가리지 않고 주기적으로 보도된다. 안타깝게도 양국 모두 아동학대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양육자는 불안하다.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딘가에 아이를 맡길 땐 CCTV가 있는 기관을 찾는 경우가 많다. 혹시 큰일이 닥쳤을 때 증거가 되어줄 것은 영상 화면뿐이니까. 사람에 대한 불신을 기계로라도 해결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사각지대 하나 없이 빼곡하게 CCTV를 설치하는 것만이 아이들을 더 나은 세상에 살게 하는 방법일까?" 하고.






양육자로서 느끼는 내 자식의 안전에 대한 불안과 누군가의 인권이 부딪히는 지점. 그 지점에 CCTV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누군가'란 선생님이기도 하고, 같은 반 아이들이기도 하다. CCTV의 존재 가치는 그 화면에 찍힌 모두를 잠재적 가해자로 여길 때 성립된다. 이들 중 누구 하나가 문제 행동과 가해 행위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하지만 시뽀 성장의 절반을 도맡아주고 있는 선생님과 20명의 친구들은 잠재적 가해자라기보다는 동반자이자 조력자에 가까운 존재다. 이들을 뉴스에 나오는 무서운 사건의 가해자와 성급히 동일시할 수는 없다. 

나에게 물었다. 아이 성장의 첫 단추를 함께 꿰는 이 사람들을 어디까지 감시해야 마음이 놓일 것인가? CCTV는 정말 필수인 걸까?


좀처럼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CCTV가 있어도 여전히 불안하다"라고 호소하는 친구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찾아왔다. CCTV가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지만 여전히 의심스럽고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화면만 녹화되고 소리는 녹음되지 않더라는 것.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아이에게 신체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아이를 말로 조롱하거나 괴롭힐 수도 있어 불안하다고 했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언어폭력을 잡아내기 위해 가방에 녹음기라도 달아 보내고 싶다고 하는 그를 보며 CCTV가 서로를 신뢰하게 하기보다는 새로운 불신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약한 감시는 더 강한 감시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장치를 설치해야지만 서로를 온전히 믿고 살아갈 수 있을까.


문득 이웃한 나라인 중국이 떠올랐다. CCTV를 통한 국민 감시와 범죄 예방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헌법이 보장해야 할 인권과 프라이버시의 가치가 한없이 추락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우리가 CCTV를 비롯한 장치에 점점 많은 자리를 내어주고 그 영역이 끝 모르고 넓어진다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더욱 안전하고 인간다운 곳이 될까? 최소한의 안전 보장을 위해 들인 장치가 더 많은 영역까지 침범해 들어와 서로의 존엄을 해치지는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그 우려는 얼마 전 안산에서 일어난 일을 보며 더욱 짙어졌다. 2021년 10월, 안산시는 육아 안심 사회를 만들고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어린이집 CCTV에 AI를 접목해 관리하겠다는 방안을 내어 놓았다. 이름하여 '안심 어린이집 시스템'. 어린이집 CCTV에서 아이 얼굴 표정을 포착해 부정적인 감정을 감지하고, 이를 잠재적 아동학대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하여 해당 내용을 관련 기관과 양육자들에게 자동 통보하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기술 발전이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헉 소리가 났다. 시뽀의 하루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니 나 역시 영락없는 잠재적 아동학대범이었기 때문이다.

온종일 울었다가 웃었다가 짜증 냈다가 징징댔다가 키득댔다가를 반복하는 아이. '싫어싫어병'에 걸려서 오만 게 무조건 싫다고 우는 시기도 있었고, 요즘은 "네 장난감은 니가 치워야 되지 않을까?" 하면 "싫어~ 귀찮은데~" 하며 얼굴을 찡그린다. 자는 것도 싫어한다. 잘 시간이라고 하면 울상을 짓는다.


분명 부정적인 감정이긴 한데, 부정적인 감정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아이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더라도 알려줄 건 알려주는 것 역시 어른들의 의무니까. 그 의무를 행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동 방임이 되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아이들을 방긋방긋 웃게만 해주면 그게 좋은 양육인 걸까. 아무튼 그 AI가 우리 집에 있다면. 나와 핫서방은 아동학대 가해자로 낙인찍혀 어딘가로 잡혀갈 것이 뻔했다 ㅎㅎㅎㅎ


다행이라 해도 될까. 이 시스템을 2023년까지 모든 어린이집에 적용할 예정이었던 안산시는 인권침해에 대한 반발에 사업을 중도 폐기했다. 'CCTV의 유용함, 기술에 의한 인간 통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가?'에 대해 안산 시민과 교육자들이 내린 답이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그 답이야말로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의 모습에 더욱 가깝다고 생각한다.


만약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CCTV 감시와 통제가 필수라고 한다면, 이를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모든 가정에 설치해야 공정하다.

2020년 아동학대 가해자 비율을 보면 부모가 77.5%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아동학대 대부분이 가정에서 일어나는 셈이다. 양육자들이 교육기관에 "아이 안전을 위해 CCTV 설치는 필수입니다"라고 주장하려면, 국가가 양육자들에게 "모든 가정에 CCTV를 설치해 모니터링 하겠겠습니다." 라고 요구하더라도 기꺼이 응해야 맞다. 그러나 가가호호 거실에 CCTV를 달자고 하면 과연 몇 명이나 수긍할 수 있을까? "그건 너무 과한데요." "그 방법 말고는 없을까요?" "다른 대안을 찾아봅시다."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것이다.


평범한 부모인 우리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처럼, 어쩌면 아이들 당사자도 CCTV를 달가워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학폭 문제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보다 중고교가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는데, 전국 중고등학교 모든 교실에 CCTV를 달아 학교폭력을 예방하자고 하면 교실에서 생활하는 당사자인 청소년이 얼마나 동의할지 모르겠다. 어린이도 마찬가지.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일거수일투족을 녹화하는 건 미래세대를 보호가 아닌 감시 속에서 성장하게 하는 것과 같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며 나는 CCTV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CCTV 설치 결사반대! 있는 CCTV 다 뜯어내서 버리자! 까지는 결코 아니다. 다만 CCTV가 있다고 해서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고, 없다고 해서 기본이 갖추어지지 않거나 질 떨어지는 교육기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시뽀가 3년째 다니고 있는 유치원은 CCTV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그런 유치원에 어떻게 아이를 보내는지. 어른에 의한 학대나 친구에 의한 폭력이 발생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유치원에 강하게 항의를 넣어서 지금이라도 CCTV를 달아달라고 해야 하지 않는지 말이다.


일단, 핫서방과 나는 유치원생 아이들끼리의 몸싸움은 양쪽 보호자가 개입해 CCTV를 판독하며 시시비비를 가릴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시뽀네 유치원뿐만이 아니다. 인근에 있는 대다수의 기관에서 아이들 트러블을 양육자에게 보고는 하되 '누구와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리지 않는다. 뉘 집 애가 그랬는지를 통보하는 과정에서 양쪽 부모가 개입을 하고, 다툼이 커지고, 두 아이는 사이가 좋아질 기회를 영영 잃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속상하더라도 교사의 지도력을 신뢰하고, 아이들이 이 경험을 통해 화해하는 법을 배우리라 믿으며 천천히 기다린다. 핫서방의 표현에 의하면 유치원은 ABC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경험'을 하기 위해 다니는 곳이다. 그러니 시뽀가 누구한테 물리거나 머리를 뜯겨 왔다 하더라도 CCTV 열람과 증거 자료 수집까지는 필요 없다.


작은 다툼이야 그렇다 쳐도 아이들 사이에서의 성추행이나 교사에 의해 일어나는 큰 범죄는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개방적인 기관에서는 사고가 일어나기 어렵다. 아이 유치원에서는 양육자 참여가 CCTV의 자리를 대신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CCTV 강화의 대안이 열린 어린이집이라고 말하는데, 이 기관도 열린 유치원에 가깝다. 양육자들이 유치원에 자연스럽게 드나들며 화면이 아닌 두 눈으로 아이들 생활을 보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사각지대도 학대도 없다. 모든 어른이 모든 아이의 보호자가 된다.

단점은... 일본 유치원은 애가 아닌 부모가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라는 거. 그렇지만 보호자와 교사가 교육의 주체로서 교류하고 협력하며 학대나 범죄를 예방한다는 점에서는 열린 어린이집, 열린 유치원만 한 방안이 없다.

급식실은 운동장을 향해 큰 창을 내어 놓았다. 조리실에서 쓰는 재료가 신선한지, 양이 적절한지, 어떤 음식을 어떻게, 누가 만드는지 모두가 볼 수 있다. 매일 아이를 데려다주거나 데리러 오면서 주방 위생상태와 급식의 질을 절로 확인하게 된다.


교육자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지 않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예를 들면 이 유치원에는 아이들이 활동하는 사진을 찍어 올려주는 서비스가 없다. 사진 좀 찍어서 올려 달라고 요청하는 양육자도 없다. 그 시간에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CCTV 설치보다 더 훌륭한 사고 예방책이기 때문이다.

운동회나 소풍 같은 특별한 날에는 유치원 측에서 전문 포토그래퍼를 모시고, 양육자는 원하는 사진이 있을 경우 '촬영 노동'에 대한 합당한 비용을 내고 사진을 구입한다.

아이 머리를 묶어 달라거나 아침을 굶었으니 개인적으로 챙겨 보낸 간식을 먹여 달라는 요청도 하지 않는다. 교육자가 제대로 된 휴식시간도 없이 다양한 요구와 장시간 노동을 떠안으며 저임금 상태에 놓여 있을수록 아이를 학대할 확률이 높다. 교사가 안 들어도 될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어야 한다.


교육도 상품의 일종으로 여겨지는 시대라서 그런 걸까. 양육자와 교사의 관계가 고객과 서비스업 종사자의 형태가 되어 가는 것 같다. 돈을 낸 고객으로서 교사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양육자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다. 그래서 유치원 측에 CCTV 설치를 강하게 요구하기 조심스럽다. 내 아이의 학대 예방을 위해 다른 누군가의 권리를 가벼이 여기는 건 아닌지 조금 더 숙고할 시간이 필요해서다.


말 나온 김에 또 하나. 우리 애가 언제나 착하고 선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유치원에서 누구에게 당하고 올 가능성만큼이나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도 동등하게 열어 놓고, 다른 누군가를 가해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교육한다. CCTV가 필요 없는 교육 환경은 남들이 뚝딱 만들어서 선물해 주는 게 아니라, 각 가정에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CCTV 없는 유치원에서의 3년은 생각보다 좋았다. CCTV가 없어도 될만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모든 양육자와 교육자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다고 유치원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가 완전히 없어지겠는가?" 하고 물으신다면,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생활하는 기관이 CCTV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잘 굴러갈 수 있도록. 그곳에서 교사와 아이들이 서로의 권리를 지켜주는 긍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치를 당연시하기 전에 이런 면 저런 면을 고루 살피고 다듬어 봤으면 좋겠다.


고심 끝에 CCTV를 설치하는 선택을 하더라도 교육기관 CCTV 설치가 절대적으로 당연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CCTV를 사용하더라도 서로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이 유치원을 떠나 또 다른 기관에 들어가고,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맞이할 때도 잊지 않고 싶을 뿐이다.


아이를 왜 CCTV 없는 기관에 보내는지 누군가 또 물어올 것이고. 나는 한두 마디 말로는 답할 수 없어 차라리 입을 닫을 지도 모른다. 그 질문에 대한 긴 답을 이 글로 정리해 갈음해 본다.




사진 ::: 본문 내용과는 크게 관계없는, 어린이날을 맞아 만든 아이 점심 도시락 ㅎㅎㅎ




2022년 1월

새로운 개인주의 사용설명서

<이럴 거면 혼자 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를 출간했습니다

배우자, 자녀, 원가족, 이웃, 친구, 동료.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라는 개인을 지키면서도, '너'라는 개인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개인주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6174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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