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과천에서는 매년 9월 정도에 축제를 한다. '과천공연예술축제'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이름은 조금씩 바뀐 듯 하다. 내가 꽤나 과천에 오래 살았어서 이 행사도 십 수년째 보고 있기는 한데, 그 성격이 계속 바뀌는 것 같다. 처음에는 순수 예술 축제로, 정말 뭔가 행위예술을 하시는 분들부터 인형극 하시는 분 등등 조금은 마이너한 분들을 모셔다가 행사를 하더니, 뭔가 시 예산이 많아졌는지 점점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재작년에 자우림이 오더니, 작년에는 성시경이 왔다. 성시경 때만 해도 공연장에 사람이 하도 많이 나와서 '와.. 과천 사람 전부 다 튀어나왔나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정말 과천 30년 넘게 살았는데 그렇게 사람 많은 거 처음 본다고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올해의 게스트는 무려 싸이였다. 세상에, 싸이라니!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월드스타 싸이가 이런 조그만(?) 도시에 직접 온다고? 처음 들었을 땐 '거의 대학 축제급으로 과천축제가 커지는구나..'싶었다.
난 작년의 경험 덕분에 올해는 정말 과천 사는 고양이 새끼까지 다 나오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올해는 일부 좌석에 추첨제까지 도입할 지경이었다. 행사 당일이 되자, 난 안전사고 위험 때문에라도 애기를 데리고 저길 가야되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내 아들은 시끄럽고 조명 번쩍거리는 공연을 정말 싫어했다. 그래서 작년 성시경 때도 엄마한테 안겨서 제대로 보지도 않다가 돌아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주변에 사시는 아버지, 어머니가 자리까지 잡아놓고 나와보라고 하시니 안나가 볼수가 없었다.
행사 순서상 싸이의 공연은 당연히 맨 마지막이었다. 다른 가수분들의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열심히 준비하신 그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주변 사람들 모두 '이 공연 언제 끝나나.. 얼른 싸이 보고 싶은데..'라는 눈치가가 역력했다. 시장님의 폐회선언까지 끝나자 비로소 싸이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난 싸이라는 가수가 흥과 에너지로 유명하기 때문에 히트곡을 부르면서 강렬하게 등장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굉장히 차분하게 등장하더니 일단 무대 상태, 사운드 체크부터 진행하기 시작했다. 몇 번에 걸쳐 요구하고 수정하는 모습을 보니 굉장히 세심하고 섬세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싸이 정도 되는 가수가 요구하는데 안해줄 수도 없지 않은가?
무대 체크가 끝나자 그 다음으로 관객들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핸드폰으로 사진찍고 동영상 찍지 말고 내 공연을 온전히 즐겨달라. 난 조건부 공연을 하기 때문에 관객들의 반응이 좋으면 좋은 만큼 더 열정적으로 공연을 하겠다... 대강 그런 내용이었다. 그런 오리엔테이션(?)을 5분 정도 하고 나서 비로소 제대로 된 공연을 시작했다.
난 싸이 정도 되는 가수면 4곡 정도.. 많아야 5곡 정도? 부르고 돌아갈 줄 았았다. 내 기억에 작년 성시경도 앵콜 포함 5곡 정도 하고 갔다. 그런데 싸이의 공연은 정말 좀 과장해서 끝도 없이 이어졌다. 누가 뭐래도 그의 최고 히트곡인 '강남스타일'이 나오자 말 그대로 사람들이 전부 다 뛰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우리 어머니도 앞으로 나가서 반응을 하실 정도였으니까.. 앞에 있는 사람은 애기를 무등까지 태우고 뛰어서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했다. 강남 스타일 이후에도 챔피언, 예술이야.. 등 2~3곡을 더 하고 싸이는 물러갔다. 도합 10곡 정도는 한 것 같으니, 대중들이 알만한 그의 히트곡은 전부 다 나온 셈이다.
공연 도중에 싸이는 '과천에서 공연을 할 때 폭우로 공연을 중단했어야만 했는데, 그 때 과천시에서 너무나 헌신적으로 도와주셔서 보답으로 뭔가 해드릴 게 없느냐 라고 물었더니 9월에 열릴 과천축제에 나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오늘 출연하게 된 거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따지자면 싸이가 오늘 축제에 그렇게 열정을 쏟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보답 차원에서 과천시에 출연을 약속한 것 뿐이고, 그저 하던 대로 설렁설렁 공연 하고 돌아가면 될일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10곡 넘게 자신의 히트곡을 모두 들려주는 '제대로 된' 공연을 했다. 제대로 돈을 내고 공연을 보자면 족히 몇 만원 어치는 될 법한 것이었다. 거기 모인 사람이 만 명이 넘었으니, 수억원 수준의 수익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출연료로 얼마를 받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왜 그가 이런 조그만 도시의 축제에 와서 그렇게 열심히, 열정적으로 공연을 했을까? 해답은 하나밖에 없다. 그가 이러한 공연, 무대를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이다. 무대에 올라서 춤추고 노래를 불러야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가 77년생이라고 하는데(자기 소개에서 25년차 가수라고 했다), 그럼 우리나라 나이로 47세다. 이제 5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아무리 그가 관리를 잘했다고 해도 젊었을 때처럼 격렬한 춤을 소화하는 데 점점 무리가 올 정도의 나이다. 하지만 10곡의 히트곡을 부르는데 그다지 무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물론 그의 수많은 무대 경험에서 나오는 완급조절 덕분에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의 공연을 보면서, 진정으로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이 진짜 성공에 근접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말처럼, 하루에 8~10시간을 소모하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얼마 되지 않는 휴가나 주말에만 행복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진짜 행복하다고 보기 힘들다. 돈을 벌기 위해 하루 8시간 이상을 억지로 일하는데, 과연 그 사람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도 이 직업을 근 15년 넘게 지속하다 보니 솔직히 때론 지겹기도 하고 타성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재미가 느껴지지 않을 때도 많고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싸이는 25년 넘게 가수 생활을 지속하면서도 강한 열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힘이고, 사람들은 그 열정과 에너지를 보기 위해 공연을 찾는다. 그의 공연에서 그의 저력은 그런 '즐기는 마음'에 있다는 걸 느꼈다. 나 역시 그런 열정, 에너지, 즐기는 마음을 찾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