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는 섬을 일주할 수 있는 가장 메인 도로인 1번 국도가 있는데 섬을 둥글게 돌기 때문에 링 로드라고 부른다. 우리는 너무 빡빡하지 않게 무려 11박 12일을 빌렸고, 여느 다른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대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보기로 했다. 사실 많은 관광객이 남쪽을 위주로 다닌다고 한다. 아마 지나다 보면 또 노하우가 생기겠지...
여행 시작 전에 가장 중요한 식료품 공급을 위해 마트엘 들렀다. 물가는 확실히 비쌌지만 전날 들렀던 캠핑장에서 다른 여행객들이 떠나기 전 남긴 물품들을 여럿 챙길 수 있었다. 특히 적은 양이지만 꼭 필요한 조미료들이라던지 반쯤 남아 있는 잼이나 파스타라던지 굉장히 많은 종류를 수집할 수 있었고, 그래서 우리의 구매 목록은 야채나 고기 등 신선 식품 위주로 고르게 되었다. 셋 중에서 D가 요리를 거의 전담했는데, 원래도 해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서울에서 출발할 때 라면 수프며 여러 가지를 준비해 오기도 했었다. 오죽하면 떠나기 전날 미니 밥솥을 끝까지 챙길까 말까 고민했었으니... 아무튼 여러 끼니들을 고르는 건 전적으로 D에게 맡기고 Y와 나는 간식이나 주전부리 등을 고르는 데 집중했다. 물론 그렇게 만족스러운 건 사실 없었고 가격도 비쌌지만, 우리는 적당히 타협하고 본격적인 링 로드 남쪽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아이슬란드의 풍광은 자연이 갓 빚어놓은 것 같은 곳을 달리는 기분이 든다. 화산 활동으로 불쑥불쑥 솟아오른 산의 비탈로 돌들이 쏟아진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면, 중간중간 빙하기에 만들어진 얼음 역시 그대로 방치되어 눈에 뒤덮여 있는 모습이 태반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화산 활동으로 인한 연기들까지... 생물이라고는 달리는 차들 외에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편이었고 수도를 벗어나 달릴수록 대부분 이끼와 바닥에 붙어 자라는 풀들, 그리고 중간중간 목장에서 방목하고 있는 것 같은 말들이 보였다. 아마 거센 바람과 낮은 기온으로 키 큰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곳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도 군데군데 작은 숲을 만들려는 노력은 보이긴 했었다.
우리는 경치를 즐기며 이동하다 시금치를 곁들인 치즈 파스타로 점심을 해결하고 온천 개울이 있다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편도 한 시간 정도?라고 적혀 있는 리뷰를 믿은 게 잘못이지... 굽이 굽이 들어가는 계곡을 넘어가면 또 다른 계곡 사이로 이어진 길이 이어졌고, 감기 기운이 있던 나는 헐떡거리며 기침하다 폐가 찢어지는 고통이 들어 몇 번씩 걸음을 멈추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걸어가는 것이 힘든 것과는 별개로 살짝 눈이 내리던 경치는 그저 황홀했는데, 아마 내가 자라고 다녔던 곳에는 이렇게 식물들이 땅에 붙어서만 조금씩 자라며 완만한 경사를 지녔지만 거대한 언덕들이 없어서일 것이다. 이곳은 그저 지각 활동 후 풍화 작용이나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황량한 외계의 행성 같았다.
한 시간 반 정도 걸었을까... 우리는 드디어 온천을 하는 장소를 발견했다. 중간중간 십자 모양으로 서 있는 간이 칸막이에서 서둘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우리는 뜨거운 냇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은 찬 공기 속에서 놀랍게도 아주 적당히 뜨거웠고, 눈가루를 맞으며 개울에서 온천을 하는 기분은 매우 특별하고... 편안했다. 다시 일어서서 먼 길을 더 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여러 해야 할 것들을 잊고 그저 그 순간에 머무르는 것이 그저 행복하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손 끝에 닿는 부드러운 이끼들,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의 웃음.
따뜻한 곳에서 훨씬 더 있고 싶긴 했지만 해가 지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할 것 같아 우리는 저녁노을이 지려고 하기 조금 전에 다시 길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은 그나마 내리막이라 차가운 공기도 조금 덜 헐떡거리며 내려올 수 있었고, 역시 원근감을 지워 버린다고 해야 할지,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기지 않는 아름다운 황량함을 뒤로하며 우리는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두 번째 잠을 위해 길을 나섰다.
아이슬란드에서 소위 차박을 하려고 하면 캠핑장이나 차박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이 없는 곳에서만이 가능했다. 대부분의 관광지 주차장이나 일반 주차장은 차박이 허용되지 않아 가능할 만한 곳을 찾아야 하는데, 둘째 날은 바닷가 등대 앞에 차를 대고 잠을 청했다. 차는 지붕을 확장하면 아래에서 말고 위에서도 잘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는 구조였는데, 첫날 두 사람이 먼저 위에서 자서 오늘은 내가 위에서 자겠다고 했고 이것은 거대한 잘못이었다...
침낭에 몸을 구겨 넣고 잠을 청하던 나는 거대한 바람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위쪽은 텐트 천으로 확장되는 구조였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곳은 체감 영하 10도에 육박했었고, 차량의 난방 시스템도 계속 위쪽의 바람 탓에 열기를 빼앗겨버리니 차 전체가 냉동고 같은 상태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부들부들 떨며 새벽에 일어난 나는 이를 딱딱거리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바깥에는 윙윙거리는 세찬 바람과 함께 오리 소리 같은 새들의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내려가서 못 자겠다고 sos를 칠지 계속 고민하다 새벽이 왔고, 그전부터 조금씩 나빠지고 있던 감기는 그 밤 이후로 아주 큰 몸살이 되어 이걸 어떻게 계속 여행하지 할 정도로 고민이 되었다. 그나마 차 안에 있을 땐 조금 나은데 바람 부는 밖만 나가면 미친 것 같은 기침과 콧물이 쉼 없이 몰려나왔다. 아마 찬 공기에 대한 알레르기 종류 같은 것이겠지... 내가 기억하는 밤 중 가장 추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