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정말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구나.'
몇 번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의아해졌다. 분명 몇 개월 전의 나는 힘들게 끝나버린 연애와 의지할 수 없는 가족을 비관하며 내가 기댈 곳은 아무 데도 없다면서 문득문득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사람이었는데? 내 삶의 초점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향하게 한 후부터 그런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되었던 것 같다.
20대부터 30대 후반인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내 삶을 과거로 돌리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언제나 현재, 지금이 나에게는 최고의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았을 때 현재 내 모습이 크게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밑 빠진 독에서 허우적 대던 과거의 삶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내가 가진 것들에 너무나도 감사하게 된다. 나의 삶을 좀 먹는 과거의 여러 관계들로부터의 단절을 선언하고, 더 희망적인 미래의 삶을 꿈꾸기로 결정한 뒤부터 내 삶에 만족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30대 후반까지 싱글로 살며 여러 경험을 하는 지금과 같은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한다면?'
놀랍게도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전자를 택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모습에 나도 꽤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결혼을 해서 귀여운 아이가 있는 행복하고 평안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누누이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답변이 머릿속에 팝콘처럼 자동적으로 떠오른 이유를 생각해 봤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의 내 삶이 나에게 너무 가치 있다는 것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인생을 함께 만들어나갈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너무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 제주 국제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마음이 맞는 외국인 동료교사들과 다음 주말에는 어디를 가서 놀고, 방학 때는 어디로 여행을 갈 건지 계획을 세우는 지금의 삶이 너무나 재미있다. 이 맛을 보지 않았다면 한국 사회가 정해놓은 그 인생의 숙제를 아직도 끝내지 못한 나의 부족함을 탓했겠지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이상 이것이 얼마나 나에게 가치 있는 삶인지에 더 큰 무게를 두게 된다. 그리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 다시 한번 뇌리를 스쳤다.
'너 공립학교로 돌아갈 수 있어?'
이것도 단 번에 NO. 놀라웠다.
나는 기간제교사로든 정교사로든 언제든지 공립학교에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2018년 의원면직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가능하지만 그게 머리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로 싫은 것이 될 줄은 몰랐다.
그 이유 또한 명확했다.
첫째로, 여기서는 필요 없는 행정업무가 없다. 물론 1-5학년 국어, 사회를 매일 5시간씩 가르친다는 것이 너무 버거워서 첫 해에는 울면서 학교에 다녔던 것 같다. 이 말은 일주일에 25차시의 수업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퇴근해서도, 주말에도 노트북을 열고 수업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일을 왜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한 준비였기 때문에, 즉 목적이 명확했고 내가 그 목적에 동의하기 때문이었다. 공립에서의 행정업무는 90% 이상 내가 볼 땐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 직,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들이 전혀 아니었다. 24살 교직에 첫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승진에 관한 노선을 명확히 했다. '나는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일들에 시간을 쏟고 싶지 않기 때문에 승진과 관련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둘째로, 관리자(교감, 교장)가 우리의 웰빙을 중요시한다. 8월에 시작하는 새 학기를 준비하는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있던 회의에서 관리자들이 말했다.
"주말은, 방학은 너희의 것이야. 누군가가 전화해서 그것들을 방해할 수 없어."
주말이며, 방학이며 정말 긴급한 일이 아닌 이상 교감도 교장도 여행을 떠나 있기 때문에 서로 그 기간은 전혀 터치하지 않는다. 한국 공립학교에서는 7,8년 전 학부모의 전화에 시달리다 못해 투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나에게 동료교사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급한 일이 생기면 어떡해요.'
도대체 초등교사가 방과 후 또는 주말에 학부모의 연락을 받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아이들 간의 문제가 생겼어도 그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야 자초지종을 물을 수 있고, 체험학습을 간다고 해도 교사가 학교에 가야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다. 그 가정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 가정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교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같은 교사인데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이야기하는데 하물며 학부모나 외부인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까지도 교사 개인번호 공개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데 국제학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셋째로, 상담교사나 학습부진이 있는 학생들을 도와주는 Learning Support의 역할이 크다. 한국 학교에서는 상담도 담임교사가, 학습부진 지도도 전적으로 담임교사가 맡는다. 상담교사가 있긴 하지만 각 학교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역할이 국제학교보다 훨씬 수동적이다. 요즘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한국 공립학교 담임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면 그 원인은 결국 이 모든 것들을 혼자 떠안다가 놓아버리게 되는 데 있는 것 같다. 30명 가까운 아이들의 인생을 통째로 떠안게 되는 것. 그리고 그와 함께 그들의 학부모까지도 모두 오롯이 혼자 상대해야 하는 부담감과 그에 수반하는 각종 일들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의 수준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당연히 단점들도 존재한다. 10년 동안 공교육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이곳이 학교라는 이름을 가진 사기업이라는 사실을 자꾸만 잊어버리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결정들에 어김없이 놀라고 있다. 결국 교육을 통한 돈벌이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공립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내 인생극장에는 되감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