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시대에 음반을 산다는 것
‘오, 요새도 CD를 사는 사람이 있구나. 왜 모으세요? 휴대폰으로 들을 수 있는데’ CD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고 이야기하면 자주 듣는 말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속으로 조금 난감해진다. 내게는 음반을 사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적당한 정도의 대답이 될지 고민이 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누구든 눈이 반짝이고 수다스러워지기 마련. 나라고 그런 두근거림을 피할 수 없기에 아주 편한 사이가 아닌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더욱 긴장하곤 한다. 그래서 대답 전 매번 상대에게 들키지 않도록 숨을 고른다.
간단히 압축하자면 소유욕이다. 갖고 싶은 것, 손에 쥐고 싶은 것에 대한 욕구. 누군가는 그 욕구가 멋진 옷을 향할 것이고 누군가는 자동차를 향할 수도 가전제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것 중 하나가 나에게는 음악이다. 오히려 음악의 비가시성이 어릴 적 나의 소유욕을 자극했다. mp3로도 컴퓨터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대였음에도 그렇다.
음악은 여타 물성이 있는 것들과는 달리 귀로 밖에 만나지 못하는 매체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음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는 제외하기로 한다) 다르게 생각하자면 보거나 만지지 않아도 되고 어디에서나 듣는 행위만으로 접할 수 있다. 한 달에 1만 원 남짓한 금액이면 언제 어디서나 음악의 세계를 무한으로 확장할 수 있는 세상이다. 굳이 한 장에 1만 5천 원에서 2만 원이 넘는 CD나 혹은 그 보다 비싼 LP를 사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창구가 도처에 널려있다. 그렇기에 음반을 수집한다는 걸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물성을 가진 것들을 소유할 때 오는 경험들처럼, 음반을 사면 가져본 적 없을 때는 알아도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된다. 쥐고 있으면 먼저 앨범을 감싸고 있는 케이스가 보인다. 딱딱한 플라스틱 케이스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종이 커버나 혹은 두꺼운 책자 형식을 하고 있는 디자인도 있다. 안을 열면 당연히 CD가 반겨준다. 이 CD디자인들도 앨범 커버만큼이나 각양각색이라, 새로운 음반을 열기 전에는 항상 마음이 잠시 일렁인다. 종종 기대하지 않고 개봉한 음반에서 너무나 멋진 디자인의 CD가 튀어나올 때는 마치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도 든다. 어떤 케이스는 내용물이 열자마자 바로 보이지 않게 되어있는 경우도 있어서 한 단계를 더 거쳐야 하기도 한다.
부클릿이라고 하는 가사집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대부분 가사가 있는 음반들을 모아 왔기에 놓치지 않고 펼쳐보곤 한다. 일러스트에 공을 들인 앨범은 가사와 함께 매 장마다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아티스트의 사진이 많아 마치 미니 화보집처럼 구성된 부클릿도 있다. 아이돌 앨범들은 주객이 전도되어 오히려 이런 화보집과 같은 부클릿이나 포토 카드를 갖기 위해 음반을 대량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크레딧도 빼놓을 수 없다. 디자인이 잘 된 책이나 포스터를 누가 디자인한 것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처럼 음악도 그렇다. 일부러 관심을 갖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무리 자주 듣는 음악도 누가 작곡, 작사했고 또 어디에서 녹음과 믹싱을 했는지, 앨범 커버를 만든 디자이너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부클릿에는 대부분 이런 정보들이 모두 적혀있다. 그러니 음반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음악을 소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음반을 만들어낸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작은 세계를 만나는 것과 같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또 한 번 왜 음반을 사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음악은 만질 수가 없잖아요. 보이지 않으니까… 손으로 만지고 싶어서 사요’. 보통이라면 이렇게까지 감상적인 대답은 피했겠지만. 그날은 서울의 밤하늘과 양화대교를 가로지르는 자동차 안에서 받은 물음이었다. 음악을 만질 수 있다면 여전히 그 방법이 음반을 소유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책꽂이에서 네모난 플라스틱을 꺼내어 반짝이는 CD로 음악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