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의 목적은 장기근속자의 선별이다.
모든 글은 목적에 맞게 쓰여야 한다.
목적에 맞지 않는 글은 글자뭉치에 불과하다.
자기소개서의 작은 목적은 자기를 소개하는 것이고, 큰 목적은 기업 채용 과정에 합격하는 것이다.
작은 목적을 이루더라도 큰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의미가 없으니, 큰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큰 목적인 채용 합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 채용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요즘 대기업들의 채용과정은 길고 다채롭다.
필자는 인적성, 서류전형, 1차 면접, 영어 면접, 2차 면접을 거치며 과정이 참 화려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대학시절 들었던 인사관리 수업 교수님은 자기가 삼성 채용과정을 만들었다며 매 수업마다 자랑하고는 하셨다. 돈도 잔뜩 받았는데, 뭔가에 투자했다가 다 날리셨다고,,,
긴 채용과정을 만들고 실시하는 것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다.
왜 기업들은 돈과 시간을 잔뜩 들여 이토록 길고 복잡한 채용과정을 만드는 것일까?
"잘난 사람을 뽑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영웅주의, 혹은 능력주의에 몰입되어 있다.
집단이 잘 되기 위해서는 잘난 사람이 영입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정말 강하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잘난 나를 뽐내는 글로 생각하곤 한다.
어떻게든 내가 가진 스펙과 장점을 조금이라도 더 나열하려 글이 화려해진다.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건희 회장님의 말씀도 있었으니 실제로도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닐 것이다.
다만 기업 채용의 목적은 절대 "잘난 사람 뽑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물론 기업도 기회가 된다면 잘난 사람을 뽑는다.
같은 조건에서라면, 영어/중국어를 하는 사람보다 영어/중국어에 일본어까지 되는 사람을 뽑는다.
하지만, 잘난 사람을 뽑는 것은 채용의 작은 목적이다.
채용의 큰 목적은 기업에 잘 적응하여, 오래 일 할 사람을 뽑는 것, 다시 말해 장기근속자를 뽑는 것이다.
근무자가 이탈하면 기업은 큰 비용이 든다.
당장 퇴직자에게 퇴직금을 주어야 하고, 채용 과정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남아있는 직원이 빈자리를 채워 추가로 근무해야 한다. 고연차 구성원의 추가근무수당은 장난이 아니다.
채용 자체도 비용이 든다.
'22년 조사에 따르면, 신입사원 1명 채용하는 데에 평균적으로 32일의 시간과 1,27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이 소요된다고 한다. (사람인, 기업, 직원 1명 채용에 평균 32일, 천만 원 이상 든다! | 취업뉴스 - 사람인 (saramin.co.kr))
직원이 자주 바뀌는 기업은 업무가 전문화될 수 없다.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는 인원이 자주 바뀌는 편이 아님에도, 실전(...)되어버린 계약서와 고문서가 한둘이 아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일반적인 대졸 신입사원이 업무에 투입되려면 18~26개월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적어도 신입사원이 2년 이상 근무하며 업무에 숙달되어야 업무 노하우가 계승되는 셈이다.
감성적으로도 같이 일하던 동료가 회사를 떠나면 업무효율이 떨어진다.
어제까지 친하게 같이 일하던 양반이 다른 회사로 간다니, 싱숭생숭하야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사람인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4곳이 직원 연쇄 퇴사 현상,
이른바 '이직 전염' 현상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경제적으로도, 업무에 있어서도, 회사 분위기에도 기업은 근로자가 장기근속해야 이득이다.
채용에서 아무리 잘난 사람을 뽑아봐야 금방 나가버린다면, 뽑지 않는 것만 못하다.
매번 새로 사람을 뽑아야 할 때마다 1,270만 원을 써야 하는데, 몇 번이고 신입사원이 떠난다면...
내가 사장이라면 HR 담당자를 찾아가 멱살을 쥐고 흔들 것이다.
이 자식이 우리 회사를 망하게 하려는 산업 스파이가 아닐까..?
장기근속의 중요성이 두드러진 요즘은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적응 프로그램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부하 직원의 근속 여부가 임원들의 고과에 반영되기도 한다.
그만큼 직원의 장기근속은 중요하고, 채용의 최우선 목적은 장기근속자의 선별이 된다.
우리는 이제 기업의 입장에서 채용의 최우선 목적은 우수한 인재의 선발이 아니라 장기근속자의 선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사실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자기소개서의 최우선 목적은 나의 우수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당 기업에서 장기근속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내가 지원 기업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면 내가 우수하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자기소개서에 포함되는 스펙은 내가 우수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직무 수행에 문제없이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스펙이 되어야 한다.
내가 직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한 스펙을 가지고 있다면, 직무와 상관없는 스펙경쟁은 필요 없다.
하지만, 내가 지원 기업과 어울리지 않고 직무를 수행하기에 스펙이 충분하지 않다면
자기소개서를 쓰기 전에 스스로와 스펙을 더 정비해야만 한다.
이렇게만 자기소개서를 준비한다면, 취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채용의 목적을 명심하면서 쓴 자기소개서는 그렇지 못한 자기소개서와 크게 다르다.
[기존 글]
A 회계법인은 감사 분야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회계법인으로, 글로벌 매출 1위와 최근 3년간 감사보고서 감리 지적이 0건을 달성하였습니다. 최고의 회계법인인 A 법인에서 능력 있는 감사 전문가로서 근무하고 싶습니다.
지원동기는 정말 작성하기 어려운 항목이고, 쓰다 보면 지원하는 회사의 좋은 점을 나열하게 된다.
하지만 "이 회사가 정말 좋아서 지원합니다."는 절대로 좋은 지원동기가 될 수 없다.
당신은 우리 회사에서 열심히 오래 일하기에 충분한 직무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은 우리 회사의 비전/미션과 적합한 가치관을 가지고 지고 있는가?
이 지원동기는 지원자가 회사에 잘 맞는 사람인지, 장기근속할 수 있는 사람인지 전혀 알려주지 못한다.
[수정본]
A 회계법인은 감사 분야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회계법인으로, 글로벌 매출 1위와 최근 3년간 감사보고서 감리 지적이 0건을 달성하였습니다. 저는 B 기업 재경팀 인턴으로 근무하며 OO 계좌를 검토하는 업무를 했었고, 감사 업무 경험을 쌓으며 감사 근무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감사 전문인 A 법인에서 능력 있는 감사 전문가로서 성장하고 싶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많이 개선되었다.
지원자의 경험을 적음으로서 지원자가 회사와, 특히 직무에 지원하는 사유를 적어 원활하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채용의 목적이 잘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장기근속자를 선별하는 과정임을 아느냐 못하냐는
취업 준비 기간을 크게 좌우한다.
이번 글에서는 딱 하나만 기억하자.
항상 글의 목적을 명심하자.
글의 목적을 계속 상기하는 일은 글이 막힐 때마다 길을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