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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ug 26. 2024

첫 발을 디디며......




60을 넘어서고 이제 더 이상 나에게 무슨 큰 변화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저 살아온 대로 내가 원하는 걸음으로 하루하루 무탈하게 채워가는 것이 바람이라면 바람이었다. 그랬던 것이 퇴직하기 전, 전쟁 같은 37년 직장 생활의 마무리를 앞두고 커다란 무대를 내려오는 배우의 마음이 그럴까? 이제는 모든 힘을 빼고 한적한 길가의 이름도 없는 들 풀처럼 살고 싶었다. 

그래서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조용한 곳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막상 입주 시기가 다가오자 현실적인 문제로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독신을 주장하던 큰아들이 갑자기 결혼을 선언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내가 분가(?)를 하게 되었다. 





© armand_khoury, 출처 Unsplash




머리로만 생각하는 로망과 막상 부닥치는 현실은 언제나 괴리감이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처음 맞아보는 자식의 결혼과 맞물려 나는 그동안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앞두고 있다. 그것은 마치 난생처음 혼자 떠났던 여행처럼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막연한 기대가 뒤섞여 있다. 

남편은 몇 년 전, 시어머니가 사고로 다치고 나서 경기도 고향으로 올라가 함께 생활하다가 올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시골에서 지내고 있다. 그에게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 부모 형제와 함께 한 추억이 배어 있는 곳이며, 문밖을 나서 소리 높여 이름을 부르면 아직도 정겹게 대답하는 고향 친구들이 있으니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일 것이다. 





© bel2000a, 출처 Unsplash




그러나 나에게는 억지로 뿌리를 내리려고 애쓰는 이방인의 타향 같은 곳이었다. 평생 이기적이었던 남편은 늘그막에도 여전했다. 난데없이 그는 시골로 가서 함께 살기를 원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제는 더 이상 용을 쓰며 적응하고 어느 것과도 애써 조율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일에도 때가 되면 정년이라는 것이 있듯이, 사람 간의 관계에도 힘을 빼고 싶은 때가 있는 것 같다. 

젊어서부터 막연히 생각했다. 내 역할을 다 하고 나면 언젠가는 나만의 삶을 살고 싶었다. 모든 인연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놓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중학생 때 꿈꾸었던 마추픽추를 가는 데 40년이 걸린 것처럼 나의 독립도 몇 년 모자라는 40년이 걸렸다.  





© wwarby, 출처 Unsplash




나는 지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이 땅 끝을 향해 걸어가는 마음이다. 어쩌면 그 끝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 평생 겪어보지 못한 두려움에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설렘은 새로운 것에 맞닥뜨렸을 때마다 분명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넉넉한 보수 같은 성취감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걸음을 뗀 아기처럼 잡고 있던 모든 이의 손을 놓고 혼자 걸어가 보려고 한다. 그 과정을 나의 성장 일기처럼 또박또박 적어 가며 또각또각 걸어가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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